상단영역

본문영역

게이, 드랙퀸 허리케인 김치, 서울을 걷다

하이힐을 신고, 메이크업을 하고, 가발을 쓰고, 제 드랙퀸 캐릭터인 허리케인 김치의 모습을 하고 서울 도심을 누비기로 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 길거리 공연(이하 퍼포먼스)이라고 부르는 분들도 계시고 일인 시위라고 보시는 분도 있으신데, 호칭은 무엇이 되었든, 제가 이를 통해 추구하고자 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성소수자가 한국 사회에도 존재함을, 그리고 어떤 장소에도 존재할 수 있음을, 그리고 당당하게 존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둘째, 본인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며 답답해 하고 또 외로워하고 있는 성소수자분들께, 그들이 혼자가 아님을, 성소수자의 권리증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 히지양
  • 입력 2016.04.11 13:15
  • 수정 2017.04.12 14:12

광화문에 위치한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우아함을 뽐내는 허리케인 김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포스트는 게이, 드랙퀸, 허리케인 김치, 그리고 서울에 관한 포스트입니다. 게이, 드랙퀸, 허리케인 김치, 서울 - 이 단어들은 저를 설명하는 단어들입니다. 저는 게이이고, 때로는 허리케인 김치라는 이름의 드랙퀸이며,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이 한국의 수도인 도시의 이름이라는 사실은 알고 계시리라 생각되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저는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즉 게이입니다. 게이문화 안에는 드랙퀸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데, 이 개념은 한국에서는 아직 다소 생소한 개념입니다. 가장 쉽게 설명을 하자면, 영화 헤드윅(원제: Hedwig and the Angry Inch)의 여장을 한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 일종의 드랙퀸의 모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게이 남성들이 주로 공연을 목적으로 여장을 하되, 과장된 화장을 하거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첨가해서 그냥 여장과는 차별화 해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것이 드랙퀸 문화라고 보시면 됩니다. 드랙퀸 중에도 아주 여성스럽고 예쁜 드랙퀸, 수염을 그대로 지닌 남성적인 드랙퀸, 레이디 가가 못지않게 괴이한 의상을 즐겨 입는 드랙퀸 등 수많은 종류의 드랙퀸이 있으며, 그 종류와 스타일에 있어서는 어떠한 한계도 없습니다.

게이 남성들은 자신의 드랙퀸 캐릭터에게 드랙 네임을 부여하는데, 저의 경우 그 드랙 네임이 '허리케인 김치'입니다. 자, 여기까지 읽으신 내용이 이해가 되셨다면, 그리고 더 읽으실 구미가 당기신다면 당신은 이제 본론으로 넘어갈 준비가 되신 것입니다!

허리케인 김치로 변신하기 위한 메이크업 중에 찍은 셀카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커밍아웃(성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행위)을 하고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예술가인 아버지와 진보적인 마인드를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나, 성 정체성은 물론, 여러 면에서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인정받고 가족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행복한 케이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자라나면서 성소수자인 제 스스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가족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살아가고 있지요.

하지만 저는 제 케이스가 얼마나 운이 좋은 케이스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는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활동, 운동 등을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상황에 놓인 성소수자들을 보고, 또 그들에 대해 듣는 것도 많습니다. 제 경험으로 보아, 현재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들의 경우 행복하고 당당한 삶은커녕 커밍아웃조차 못하고 평생 진짜 자기 모습을 숨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며, 심지어 그러한 삶이 힘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많이 보았습니다. 또, 가족에게 성소수자임을 밝힌 뒤(혹은 들킨 뒤) 집에서 쫓겨나 보호소나 친구집을 전전하며 하루 하루를 노숙자와 같이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수도 너무나도 많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물론 금전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기부 활동도 하고 있지만, 큰 그림을 볼 때, 사회에 변화를 불러오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질문을 던진 후 며칠 후, 저는 발 벗고 서울 한복판으로 나섰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하이힐을 신고 나섰습니다.

하이힐을 신고 서울 한복판에 나선 첫날, 서울 시청 광장 앞에서

하이힐을 신고, 메이크업을 하고, 가발을 쓰고, 제 드랙퀸 캐릭터인 허리케인 김치의 모습을 하고 서울 도심을 누비기로 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 길거리 공연(이하 퍼포먼스)이라고 부르는 분들도 계시고 일인 시위라고 보시는 분도 있으신데, 호칭은 무엇이 되었든, 제가 이를 통해 추구하고자 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성소수자가 한국 사회에도 존재함을, 그리고 어떤 장소에도 존재할 수 있음을, 그리고 당당하게 존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둘째, 본인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며 답답해 하고 또 외로워하고 있는 성소수자분들께, 그들이 혼자가 아님을, 성소수자의 권리증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허리케인 김치로서 하루 정도 길거리에 나서보고 힘들어서 포기하거나, '이 정도면 나는 할만큼 했다'라고 자족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려 세 시간이 걸리는 메이크업이지만, 신고 도심을 누비기에는 너무 발이 아픈 하이힐이지만,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일주일간 꾸준히 해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가 소화한 일주일간의 스케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3월 29일 화요일: 서울 시청 광장, 명동 (시청 광장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게 될 의미 있는 장소인데, 동시에 이에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들이 수시로 시위를 벌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3월 30일 수요일: 강남

3월 31일 목요일: 총신대학교 (이 날은 총신대 강당에서 동성애에 반대하는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4월 1일 금요일: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DDP)

4월 2일 토요일: 홍대 클럽에서 열린 드랙퀸들과 성소수자들을 위한 미트마켓 파티 (The Meet Market Seoul)

4월 3일 일요일: 휴무!!!

4월 4일 월요일: 경복궁, 서울 시청 광장

한국인과 관광객들이 모두 많이 찾는 쇼핑의 중심지 명동에서

가수 싸이 덕분에 이제는 전 세계가 알고 있는 그곳, 강남에서

반동성애 콘서트가 주최되고 있던 총신대학교 측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과 성소수자를 지지해주는 서포터들의 학교 출입을 막고 있는 모습

출입은 저지당했지만 총신대 앞에서 여전히 우정과 결의를 나눈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과 성소수자를 지지해주는 서포터들

총신대학교에 막 도착한 허리케인 김치, 활동가 박에디

퍼포먼스 장소는 서울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 혹은 뜻 깊은 의미가 있는 곳 위주로 선정되었습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총 6일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이중 4일은 혼자서 도심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아무래도 낮 시간에 해야 빛이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쉬울 뿐더러, 점심시간을 끼고 퍼포먼스를 진행해야, 회사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도 점심을 먹으러 나와 저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요, 이 때문에 학교나 직장을 다니는 대부분의 지인들은 저와 같이 다녀주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3월 31일 같은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늦은 오후 시간대에 퍼포먼스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다른 많은 지인들, 인권 활동가 및 운동가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날은 기독교 학교인 총신대학교에서 반동성애 콘서트가 열린 날인데, 사전에 공개된 콘서트 포스터에서 동성애를 죄악인 것처럼, 그리고 에이즈의 근원인 것처럼 표현해 온라인에서 이 콘서트와 관련해 이미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의 이러한 처사에 불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 가운데에는 인권운동가이자 저의 친구인 박에디양, 섬돌향린교회의 임보라 목사님, 열린문공동체 교회의 목사님(성소수자를 포용하고 성소수자에게도 평등한 사랑을 주시는 교회들도 많답니다), 지나가다가 어떻게 이 행사에 대해 듣고 감사하게도 성소수자 입장을 지지해주러 오신 성소수자가 아닌 서포터분들 등등 많은 분들이 계셨습니다. 긴 실랑이와 경찰의 개입 끝에 총신대의 반동성애 콘서트에 대립되는 의견을 가지고 모인 이들은 학교 내부 대신 정문 앞에서 의견을 표명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볼 때 범죄율도 낮은 국가이고, 길거리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국가도 아니기 때문에, 겁 없이 서울 곳곳을 드랙퀸의 모습으로 누리고 다닌 저이기는 하지만, 같은 생각을 가진 많은 분들이 곁에 있었던 이 날은 더욱 든든하고 안전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기분이 든 것은 허리케인 김치뿐만 아니라 많은 드랙퀸들과 성소수자들이 한데 모여 공연과 음악, 춤을 즐기는 파티였던 4월 2일의 미트마켓 파티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허리케인 김치

미트마켓 파티의 주최자이자 작년 퀴어문화축제의 공연자였던 드랙퀸 쿠시아 디아멍(Kuciia Diamant)과 허리케인 김치

경복궁에서 한국 전통 의복인 한복 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퍼포먼스를 펼치는 허리케인 김치

시청 광장에서 퍼포먼스를 마치며 느낀 소감과 인삿말 간단하게 담은 영상

수일에 걸친 퍼포먼스가 끝날 즈음에는, 3시간짜리 화장과 소위 말하는 '킬힐', 그리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해야 했던 동선 탓에 몸이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안전요원, 경찰 및 반대세력의 개입이 있던 탓에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만약 이 고생을 하고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한 거지?'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면 아마 저는 분명 심하게 낙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내린 결론은 '힘들긴 했어도 너무나 보람찼고 교훈이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미디어에서 늘 말하지요. '많은 아시아권 국가들이 여전히 굉장히 보수적이다. 특히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서 한국은 아주 뒤쳐져 있다'. 그리고 심지어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나 외국인들도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유럽 많은 국가와 미국에서는 합법화된 동성결혼이 한국에서는 수십년은 더 걸려야 이루어질 것이다' 혹은 '한국에서 동성결혼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제가 직접 두 발로 뛰면서 두 눈으로 본 한국은 달랐습니다. 제 주변 친구들을 봤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은 이미 오픈된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며, 성소수자 문제에 있어서도 거리낌이 없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나이가 있으신 중장년층의 경우에는 정말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예전에는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감이 옵니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시고 미소를 지으며 저와 대화를 이어나가시던 아주머니, 제게 손가락질하며 상스러운 말을 내뱉는 종교인에 대해 혀를 끌끌 차고는 제게 힘내라고, 멋있다고 말해주시던 아저씨, 저를 향해 엄지를 척 치켜세우고 지나가시던 할아버지와 같은 분들은 제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고 제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셨습니다. 젊은이들은 물론이거니와 나이가 있으신 분들 중에도 이렇게나 열린 생각을 가진 분들, 성소수자를 지지해줄 준비가 된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제가 집안에만 있었더라면, 게이클럽에만 다녔더라면 몰랐겠지요.

제가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 많은 만큼, 이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한국 사회에도, 나아가 세계에도 조금이나마, 어떤 방식으로던지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허리케인 김치 복장을 한 저를 만나고 집에 가신 분들이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허리케인 김치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해 줌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들을 기회가 생기고, 많은 분들이 찍어가신 제 사진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간접적으로나마 눈으로 볼 기회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많은 한국인 성소수자 분들이 '한국은 너무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 보수적이라 캐나다, 미국이나 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분들께 그 나라들의 성소수자들이 지금과 같은 권리와 자유를 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싸움을 하고 피를 흘렸는지를 알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물론 제가 누구에게 한국을 떠나지 말고 남아서 싸워라, 피를 흘려라, 라고 강요할 수 없으며 강요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퍼포먼스를 함으로써, 그리고 제가 퍼포먼스를 통해 경험한 것을 공유함으로써, 우리나라도 변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는 싶습니다.

명동에서 허리케인 김치와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퍼포먼스 기간 동안 제가 실시간으로 허리케인 김치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셀카와 짤막짤막한 비디오를 올렸었는데요, 아주 폭발적인 조회수와 댓글수에 깜짝 놀랐습니다. 사진과 비디오를 보신 분들이 페이스북으로, 이메일로, 문자로, 혹은 직접 만나서 감사와 응원의 메세지를 너무 많이 보내주셔서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일주일간 한다고 말을 해 놨는데 중간에 힘들어서 관두고 싶어도 정말 너무 많은 분들이 지켜보고 계셔서, 아...차마 중간에 관둘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일주일 버틴 건 지켜보신 분들 탓...아니, 응원 덕분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랑을 전파하려고 퍼포먼스를 시작했던 건데 오히려 제가 많은 분들께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된것 같습니다. 제 일주일간의 여정의 일부분이 되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허리케인 김치가 사진 속에서 늘 들고다니던 포스터가 궁금하셨던 분이 계실까봐 그 포스터를 보여드리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또 뵈어요!

작년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장소 사용허가 문제를 두고 기독교 집단과 경찰을 상대로 마찰이 계속되던 상황에 글쓴이가 디자인한 풍자적인 포스터

퍼포먼스 기간에 제가 촬영한 모든 비디오와 사진들은 제 웹사이트나 허리케인 김치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보실수 있습니다. 또한 저의 다른 퍼포먼스나 작품 활동에 대해서도 제 웹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제 웹사이트: www.heezyyang.com

허리케인 김치의 페이스북 페이지: www.facebook.com/hurricane.kimchi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게이 #드랙퀸 #허리케인 김치 #하지 양 #동성애 #서울 #사회 #라이프스타일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