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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삼성중은 단 한 건의 선박도 수주하지 못했다

  • 김병철
  • 입력 2016.04.11 06:56
  • 수정 2016.04.11 06:58
ⓒGettyimage/이매진스

"그 때는 길거리 다니던 강아지들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어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국내 거대 조선소가 자리한 경남 거제시.

조선경기가 최대 호황을 누렸을 때인 1990년대말과 2010년대 초까지 거제시민들 사이에서 떠돌던 우스갯소리다.

별천지로 불렸던 거제 분위기를 말해주는 이야기는 더 있다.

"식당에 밥 숟가락만 놓으면 매출이 올라갔다."

"가게만 열면 옷들이 날개 달린 듯 팔렸다."

"전국의 소매치기와 꽃뱀들이 거제로 몰렸다."

대우조선이 위치한 거제시 장승포에서 만난 50대 중반의 대우조선 한 간부는 과거 좋았던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있을 때에도 대우조선이나 삼성중은 월급이 깎이지 않고 그대로 나왔다. 적어도 거제에서는 IMF가 없없다."

그랬던 거제 양대 조선소 임직원들 표정이 싹 바뀌었디. 회사마다 천문학적 규모의 적자가 거론되고 딴나라 이야기로 들렸던 감원, 구조조정 이야기가 목전에 왔다. 일부 소리없이 진행되기도 했다.

갑자기 밀려든 위기설에 거제시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최대 호경기를 누리던 요식업계와 부동산 업계도 전업, 사업축소 등 대책에 분주한 모습이다.

최근엔 해양플랜트 부문의 추가 수주없인 임시직 중심으로 무려 2만명이 실직할 것이란 우려까지 노조가 제기해 거제 경제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15년 정도 지속되던 호황은 옛 이야기로 끝나는가.

세계 조선 시장이 호황을 누렸던 1990년대말 이후 양대 조선소에는 한 기당 1조원에 이르는 해양플랜트를 비롯해 각종 선박 수주가 잇따랐고 선박 인도일에 맞추기 위해 거제 외부에서 기술자들이 팀을 이뤄 속속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금융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고 전국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 등이 펼쳐지는 등 건국 이래 최대의 경제적 위기가 몰려 왔을 때에도 거제는 끄덕 없었다.

조선소 한 간부는 "2012년까지는 거제 경기가 좋았다"면서 '옛날이 좋았다'를 몇번이고 되풀이했다.

대우조선이 있는 옥포와 장승포 일대 유흥업소는 밤마다 불야성을 이뤘다.

거제에는 외국 명품 브랜드가 잇따라 들어왔다.

조선소 근로자 부인들은 명품 브랜드 가방이며 옷을 앞다퉈 구입했다고 한다.

두 회사가 실적이 좋을 때에는 시도때도 없이 보너스를 직원들 손에 쥐어줬다.

두 조선소가 잘 나갈 때 직영과 하청, 임시직 등 8만여명에게 지급된 한달 급여만 4천억원이 훨씬 넘었으니 대단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덕분인지 거제시는 다른 지역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발전을 거듭했다.

거제시 부동산 가격도 수직 상승곡선을 그렸다.

연봉제 전환으로 퇴직금을 중간정산했을 때도 한꺼번에 수천억원의 현금이 근로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래서 아파트 등 부동산 가격이 덩달아 뛰었다.

마땅한 투자처가 없었던 거제에서 양사 근로자 및 협력업체 직원들은 땅을 매입하거나 아파트 등 부동산을 사들였다.

실제로 거제의 과거 경제 지표는 그 어느 도시 못지 않게 좋았다.

2006년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는 3만3천달러에서 이듬해와 2008년 4만달러선으로 올라섰다.

2008년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시기였지만 거제시의 GRDP는 상관이 없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탓이었는지 2009년 1인당 GDRP는 잠시 3만4천달러선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 회복세를 타기 시작해 2012년에는 4만3천달러까지 치솟았다.

이 때 경남도 1인당 GDRP 2만3천달러의 거의 배 수준이었다.

2013년에는 5만달러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당연히 전국 최고 수준이었고 국내 1인당 GDRP의 배에 이르는 경제수준을 자랑했다.

2012년은 조선경기가 최고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 이후에도 얼마간 거제지역 경기는 식을 줄 몰랐다.

소리없이 찾아온 불황

그런데 2014년들면서 저유가에다 세계경제 침체가 겹치며 조선업에도 불황이 닥쳤고 거제 경기는 위축되기 시작했다.

9일 밤 옥포 유흥가에서 만난 50대 한 경찰관은 "과거 밤시간 옥포 유흥가는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흥청망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소비심리가 많이 위축돼 밤거리가 썰렁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네온사인은 더욱 화려해지고 자극적이 됐지만 유흥업소를 찾는 발걸음은 훨씬 뜸해졌다는 게 그의 말이다.

옥포에서 만난 40대 대우조선 직원은 "월급이 급격히 감소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경기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전망 탓에 돈 씀씀이를 줄이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거제시 고현동 야경

또다른 대우조선 직원은 "과거 경기가 좋았을 때에는 신혼부부나 새 집을 산 직원들이 집들이를 자신의 집에서 성대하게 했다"며 "지금은 집들이를 잘 하지 않을 뿐더러 하더라도 동네 음식점에서 간단히 하고 만다"고 말했다.

동네 분위기도 나빠지고 있다고 대우조선과 삼성중 직원들은 얘기한다.

거제 경기가 좋지 않고 향후 전망도 나쁘다는 얘기가 연일 언론에 나오면서 거제시민 전체가 불안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들어 거제지역 분위기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대규모 적자를 낸 대우조선과 삼성중이 신규 수주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사는 수조원대의 적자를 낸데다 그동안 집중적인 투자를 해 온 해양플랜트 사업이 흔들리고 있는 탓이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누적 매출액은 15조71억원, 영업손실은 2조9천372억원, 당기순손실은 3조3천67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중은 1조5천억원대의 적자를 회계장부에 남겼다.

거제의 문제는 바로 해양플랜트 수주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동안 양사가 심혈을 기울여 투자해 온 해양플랜트 프로젝트의 수주 잔고가 바닥을 향해가고 있지만 새로운 수주 협상은 진행되는 게 없다.

대우조선과 삼성중은 올들어 단 한 건의 선박도 수주하지 못했다.

두 회사가 나란히 한 분기 내내 단 한 건의 선박도 수주하지 못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다.

대우조선 노조 현시한 위원장은 "과거 수주 협상이 진행될 때에는 노조도 힘을 보태 수주를 완결지었다"며 "하지만 현재는 진행되는 수주 협상이 없어 노조가 사측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우울해했다.

대우조선과 삼성중은 "하반기 해양플랜트들이 잇달아 선주들에게 인도되면 수주 잔량이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며 "추가 수주가 없으면 내년부터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우조선·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 노조·삼성중 노동자협의회에 따르면 양사가 올해 안 인도할 예정인 해양플랜트는 모두 14기다.

대우조선이 9기, 삼성은 5기다.

대우조선의 경우 현재 수주를 받아놓은 해양플랜트는 모두 18기로 9기를 올해 안으로 인도하면 9기만 남는다.

이들 해양플랜트도 내년 중 모두 인도되고 추가 수주가 없는 한 해양플랜트 사업은 중단될 수 있다.

24기 수주를 받은 삼성중공업에선 5개를 올해 안으로 인도하고 나면 19기가 남는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수주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적어도 거제 조선경기는 당분간 회복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우조선, 삼성중 양사는 물론이고 협력업체들도 긴장하고 있다.

하반기부터 해양플랜트 물량이 빠지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근로자들이 속출하게 될 것이라는 게 양사 노조 및 노동자협의회의 주장이다.

대우조선 노조와 삼성중 노동자협의회는 거제를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하고 나선 상태다.

고용노동부는 조선업종 전체를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침울한 거제

연일 이런 내용들이 전파되면서 거제 전역이 어수선한 분위기에 빠졌다.

장승포의 이름난 한 음식점 사장은 "최근 손님이 뚝 떨어졌다"며 "거제는 물론 서울 등 외지인들의 발걸음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국내 경기 전체가 좋지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거제시 경기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외식을 즐기는 시민들이 크게 줄어든 분위기라고 말했다.

외국 명품 판매점은 속속 간판을 내렸다.

밑반찬을 제대로 내놓지 않는 음식점은 파리를 날린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한지 오래다.

지난해 우후죽순 식으로 분양됐던 유명 브랜드 아파트들은 '미분양' 홍역을 치르고 있다.

조선소에 취직에 돈을 벌려고 몰려들던 싱글족을 대상으로 호황을 누렸던 원룸들도 보증금 및 월세 하락과 임대난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제의 각종 경제지표는 여전히 양호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2014년까지 실업률은 1%대로 완전고용 상태다.

고용률도 2010년 57.9%에서 2014년 63.2%로 높아졌다.

제조업체 수도 증가하고 있다.

인구·음식점은 오히려 늘고 있다.

지난해 말 거제시 인구는 25만5천828명으로 2014년 말 24만8천287명에 비해 3.0% 증가했다.

일반음식점 역시 지난해 말 3천764개로 2014년말보다 10.5% 늘었다.

거제상공회의소 한 관계자는 "경제지표는 후행성을 띠기 때문에 요즘의 비교적 양호한 통계는 과거치"라며 "앞으로가 문제"라고 말했다.

거제시 관계자는 "경제지표상으로는 여전히 거제 경기가 종전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오고 있다"면서 "하지만 양대 조선소들이 추가 수주를 하지 못하고 수주 잔량이 줄어든다면 경제지표도 나쁜 쪽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아 옛날이여"란 탄성이 잇따르는 거제에서 전 분야에 걸친 구조조정이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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