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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는 정말 약골이었을까? | 수족관 벨루가 줄초상의 진실

2013년, 벨로는 두 살 되던 해에 러시아에서 우리나라로 수입됐다. 벨루가는 생후 20개월이 될 때까지 어미 곁에서 살며 모유수유를 한다. 즉, 바다에서 포획되었을 때 벨로는 어미젖을 떼지도 않은 젖먹이였던 셈이다. 수족관이 완공될 때까지 강릉에 있는 송어양식장에 1년 7개월을 갇혀 있다가 2014년 '북극해'에서 '잠실'로 영구이주를 했다. 그 이후로는 높이 7.5미터의 원통형 수조에서 살았다. 한 번에 수심 20미터 깊이까지 잠수하는 벨루가에게는 욕조나 다름없는 크기다. 야생에서 벨루가는 수온에 따라 이주하는 계절에는 시속 10킬로미터로 무려 2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헤엄친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수조를 아래위로 자그마치 27만 번을 헤엄쳐야 하는 거리다.

  • 이형주
  • 입력 2016.04.09 05:52
  • 수정 2017.04.10 14:12
ⓒ연합뉴스

지난 2일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벨루가(흰고래) '벨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벨로가 죽은 지 이틀 되던 지난 4일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을 찾았다. 동료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은 벨루가 두 마리는 좁은 수조를 돌고 있었다.

아쿠아리움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관람객들로 붐볐다. 아이들은 동그란 머리 위로 물을 뿜는 벨루가를 보고 연신 '귀엽다!'를 외쳤다. 젊은 연인들은 셀카봉을 높이 들고 벨루가가 등 뒤로 지나가는 순간을 스마트폰에 담기 바빴다. 거대한 '동물사체'로 변해 냉장고에서 부검을 기다리고 있을 벨로를 생각하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4일 촬영한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벨루가 수조. 두 마리만 남아 헤엄치고 있다.

죽은 벨로는 정말 '약골'이었을까?

죽은 벨로는 다섯 살이었다. 아직 몸이 다 자라지도 않은, 사람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어린이 정도의 나이다. 롯데월드는 벨로가 '유독 면역력이 약해 평소 감기 등 잔병치레가 많았다'고 했다. 과연 벨로는 태어날 때부터 '약골'이었을까?

2013년, 벨로는 두 살 되던 해에 러시아에서 우리나라로 수입됐다. 벨루가는 생후 20개월이 될 때까지 어미 곁에서 살며 모유수유를 한다. 즉, 바다에서 포획되었을 때 벨로는 어미젖을 떼지도 않은 젖먹이였던 셈이다.

수족관이 완공될 때까지 강릉에 있는 송어양식장에 1년 7개월을 갇혀 있다가 2014년 '북극해'에서 '잠실'로 영구이주를 했다. 그 이후로는 높이 7.5미터의 원통형 수조에서 살았다. 한 번에 수심 20미터 깊이까지 잠수하는 벨루가에게는 욕조나 다름없는 크기다. 야생에서 벨루가는 수온에 따라 이주하는 계절에는 시속 10킬로미터로 무려 2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헤엄친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수조를 아래위로 자그마치 27만 번을 헤엄쳐야 하는 거리다.

게다가 이 좁은 수조에서 수컷 벨리, 암컷 벨라와 함께 살았다. 수컷 고래는 성적 성숙기가 되면 서로를 공격하는 성향을 보인다. 한 수조에서 두 마리 이상의 고래류를 사육하는 경우 개체간의 싸움으로 다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힘센 놈에게 괴롭힘을 당하는데도 몸을 피할 공간조차 없는, 그야말로 '궁지에 몰린 쥐' 신세나 다름없다.

지난해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수컷 두 마리가 암컷을 공격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관람객의 증언이 보도되기도 했다. 여수의 수족관에서도 수컷 벨루가 두 마리가 암컷을 공격해 암컷을 격리 수용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도 없는 환경. 이런 환경에서 과연 면역력이 강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동물들은 몇 마리나 될까.

수족관에서 이어지는 '벨루가 줄초상'

수족관에 사는 벨루가의 폐사율이 높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도 여러 번 입증된 바 있다. 야생상태의 벨루가는 50년까지도 살지만 수족관의 벨루가는 30살을 넘기는 일이 거의 없다. 수족관에서 번식된 벨루가의 폐사율은 65퍼센트에 달한다.

작년 미국에서는 수족관 벨루가의 부고가 줄을 이었다. 2월 올랜도의 씨월드에서는 '나눅(Nanuq)'이라는 이름의 벨루가가 다른 벨루가와 싸우다 입은 턱 상처에 염증이 생겨 죽었다. 같은 해 10월 조지아 아쿠아리움에서는 스물 한 살의 암컷 벨루가 '마리스(Maris)'가 '돌연사'했다. 아쿠아리움 측은 마리스의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말했다. 11월에는 샌안토니오 씨월드에서 불과 두 살짜리 벨루가 '스텔라'가 폐사했다.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에 따르면 스텔라는 1993년부터 샌안토니오 씨월드에서 폐사한 열세 번째 벨루가였다.

미국도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최근 큰 결정을 내렸다. 지난 화요일 미국수산청(National Marine Fisheries Service)은 해양포유류보호법 개정을 통해 러시아 오호츠크 해에 서식하는 벨루가를 '고갈종(depleted)'으로 지정할 것임을 밝혔다. 외국 영해에 서식하는 동물의 보호를 위해 법까지 개정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60일 후 법이 발효되면 미국에서는 더 이상 벨루가를 러시아에서 수입할 수 없게 된다.

미국수산청은 지난 2013년 조지아 아쿠아리움이 벨루가 18마리를 수입하겠다는 신청을 반려한 바 있다. 수입 허가가 벨루가의 야생 개체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반려의 근거에는 "18마리 중 다섯 마리의 벨루가가 포획 당시 1살 반으로, 수유가 끝나지 않고 아직 어미에게서 독립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환경부가 롯데월드, 거제아쿠아리움의 벨루가 수입신청서에 허가 도장을 쾅쾅 찍어주던 시기다.

어린 관람객들이 벨루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야만적이고 잔인한 짐승은 창살 뒤에 있지 않고 창살 앞에 있다."

스웨덴의 문호 악셀 문테의 말이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고 싶지 않다. 수조 앞에 서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본성은 야만적이고 잔인하지 않다. 아기 때 엄마 품에서 납치되어 좁은 수조에서 죽어간 벨로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분명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할 것이다.

야만적인 것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멸종위기 동물을 새끼도 낳기 전에 야생에서 포획해 씨를 말리는 대기업의 민낯이다. 잔인한 것은 '사람 먹고 살기도 바쁜데'하며 불편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어른들의 마음이다.

진정한 교육은 진실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벨루가의 귀여운 미소 뒤에 숨겨진 슬픈 진실을 숨기고 겉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은 교육이 아닌 거짓을 가르치는 일일 뿐이다. 남은 벨라와 벨리가 담긴 푸른 수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것보다, 한때 그 곳에 살았지만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뜰 수밖에 없었던 벨로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훨씬 소중하고 값진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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