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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할 권리

참으로 이상한 것은 어떤 중요한 선거에서도 투표율이 80%를 넘는 것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권리의 범위에는 적극적 의미의 기권도 포함되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사전투표일까지 고려한다면 늘 국민의 3분의 1이 적극적 기권의사나 예외적 사정을 이유로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 안승준
  • 입력 2016.04.08 10:29
  • 수정 2017.04.09 14:12
ⓒ연합뉴스

대학에 다니던 어느 날 친한 후배 한 명과 금연구역 지정에 대해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우리 둘 다 흡연자와는 거리가 좀 먼 학생들이었음에도 그 논쟁이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는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꽤나 긴 시간 동안 무척이나 진지하게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던 것 같다.

내 의견의 요지는 담배연기는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버스정류장처럼 밀폐되지 않은 공간이라 하더라도 적극적인 금연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후배는 그것에 대해 기호의 선택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난 지금도 그렇지만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기호의 범위는 공공의 피해가 예상되는 범위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음주운전은 잠재적 교통사고의 원인이기 때문에 처벌한다고 하면 간접흡연 또한 장기적으로 보면 비슷한 맥락의 잣대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최근 모든 식당과 대부분의 공공구역에 대한 금연이 의무화되는 것을 보면서 난 이러한 내 주장들에 대해 좀 더 확신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딜레마일 수 있겠으나 개인의 선택과 공공의 권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과 논쟁은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하곤 하는 선거에서도 난 비슷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선거권은 우리나라의 성인이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매우 숭고한 권리 중 하나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모든 선거에서 우리는 동등하게 주어지는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대표자를 선출하고 선출된 대표들은 다수의 국민들을 대표하여 대리인의 임무를 수행한다.

한 표, 한 표는 작아 보이지만 이것들이 모여서 법을 만드는 300여명의 대표를 뽑기도 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을 선출하기도 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어떤 중요한 선거에서도 투표율이 80%를 넘는 것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권리의 범위에는 적극적 의미의 기권도 포함되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사전투표일까지 고려한다면 늘 국민의 3분의 1이 적극적 기권의사나 예외적 사정을 이유로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내 주변만 그런 것일 수도 있겠으나 내 또래의 친구들도 직장의 동료들도 부모님 또래의 어르신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개인적인 사유로 인한 것들도 있겠지만 많은 것들은 입법이나 정책의 적용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될 때가 많다.

수십만이 모이는 국민 총궐기나 연중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집회나 농성들만 보더라도 국민들은 뭔가 큰 변화를 요구하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선거는 많은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하는 것 같다.

당선자와 낙선자의 표 차보다 몇 배는 커 보임직한 무효표와 기권표들을 보면서 과연 저 사람들은 진정 국민이 원하는 대표일까를 고민한 적이 많다.

세상을 바꾸는... 으로 시작되는 단체나 구호들이 여기저기 산재하는 걸 보면 우리는 뭔가 바꾸고 싶어하는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정치도 깨끗한 정치도 우리의 손에서 출발한다.

투표하지 않는 자에겐 불만하고 안타까워할 권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결과가 뻔하다고 해서 노력하지 않는 것은 동조자이고 방관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조금 더 안전하고 상식적인 세상을 원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선거의 결과가 많이도 어긋나 있다면 그것은 내가 투표하지 않은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흡연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국민을 병들게 하는 가해자가 되어가는 것처럼 권리를 내팽개치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모르는 사이에 나의 주변과 국민들 다수를 힘든 세상에 고정시켜 버리는 중죄를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선거는 법적으로는 권리라고 하지만 국민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최소한의 의무를 행사하겠는가?

아니면 불평만 늘어놓는 방관자나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동조자가 될 것인가?

그것은 투표라는 작은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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