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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총선이 아니라 대선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총선에서 이겨야 대선에서 이긴다고.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나는 유권자 대중의 근본적인 건강성을 믿는다. 역대 선거들을 차근차근 살피면 알 수 있다. 총선과 대선의 결과는 시기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간단히 말해서, 4.13총선에서 이기는 쪽이 내년 대선에서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 국민의제
  • 입력 2016.04.08 10:49
  • 수정 2017.04.09 14:12
ⓒ연합뉴스

글 | 유초하(충북대학교 명예교수)

4.13 총선운동이 한창이다. 하지만 나는 제20대 국회에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걸지 않는다. 이유를 대라면 대충 말할 수 있다. 정당들은 여전히 구태 운동에 흠뻑 빠져 있다. 여당 대표는 특정 지역에 대해 "세금폭탄을 터뜨리고 싶어도 우리 당 국회의원이 없어 터뜨리지 못한다"면서 도민들에게 "배알도 없습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하고 질책성 멘트를 날렸다. 여당과 제2야당은 제1야당심판론이라는 네거티브 구호를 공동으로 내세우는가 하면 제1야당은 여당에게 더 어울릴 듯한 경제진흥론을 역설한다.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해괴한 행태들이다. 유권자 대중의 반응 또한 얄궂기는 마찬가지다. 정당들의 운동에서 전국 규모의 정치혁신을 외치는 목소리는 드물고, 시민들의 태도에서도 지역패권이나 선거구 단위의 복리 등 속 좁은 집단이기주의가 널리 퍼져 있다.

그렇다면 한국정치의 미래는 암담하다? 아니다. 5월쯤 되면 의석분포가 정리 될 터인데, 그 이전에 선거결과를 어설프게 예언해 보자. 최소치로 쳐서 새누리당 150석, 더민주당 110석, 국민의당 20석, 그리고 남는 20여석을 진보정당(들)과 무소속이 가져갈 것이다. 거기서 무소속 당선자들이 제 갈 길을 찾아간다면 대충 새누리 160, 더민주 110, 국민 20, 범진보 10 정도가 되겠지. 그걸로 정치개혁이 이루어질까? 물론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개혁은 물 건너 간다?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희망의 터무니는 어디 있을까? 대선이다. 2017년 대통령 선거다. 사람들은 말한다. 총선에서 이겨야 대선에서 이긴다고.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나는 유권자 대중의 근본적인 건강성을 믿는다. 역대 선거들을 차근차근 살피면 알 수 있다. 총선과 대선의 결과는 시기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간단히 말해서, 4.13총선에서 이기는 쪽이 내년 대선에서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물론 여기에는 단서가 있다. 개표부정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조건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근거를 말하자면 복잡하지만) 단순하다. 야권후보단일화 같은 데 미련을 두지 말자는 것이고, 범진보 대선후보 만들기에 힘을 모으자는 것이다. 어떻게? 투표권자 시민일반의 구미에 맞는, 그리고 향후 정치진보에 초석이 될, 대통령후보를 제대로 세우자는 것이다. 어떻게?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우리들의 잔치'로 만들자는 것이다. 어떻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당이나 운동단체들의 논의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와 진보에 대해 이념의 수준에서 엄격한 의미를 부여할 때 대중은 어리석다. 노동자와 소상인 등 경제적 하층인구는 반反복지 국가안보의 기치를 내거는 사이비보수 실질수구 정당에 투표한다. 재벌과 투기집단 등 경제적 상층인구는 장기적 관점에서 제 무덤을 파는 기업친화 재벌보조 수구정당에 표를 던진다. 상층 부자 계층과 하층 빈자 계층은 삶의 태도와 세상 읽기에서 서로 통한다. 부자들은 자신의 장기적 이익을 갉아먹는 정당에 투표하고. 빈자들은 자신의 기본적 이익을 옹호하는 정당을 기피한다. 이러한 진실에 정직하게 대면하고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며 그 이유와 근거를 심도 있게 이해하고 그에 대처하는 온당한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데에서 범진보세력은 불성실하거나 나태하다고 나는 본다.

민주주의와 진보를 이념의 수준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정치적 행태의 수준에서 이해할 때 대중은 현명하다. 어떤 위대한 사상가의 설법이나 정치가들의 설득보다 다수 주권자인 시민일반의 의사는 중요하다. 아무리 정밀한 분석이나 매력적인 호소도 공식적 득표에서 밀리면 성공할 수 없다. 지금은 피를 부르는 혁명의 시대가 아니다. 수구 정치집단과 반동 언론연맹에 포위당한 범진보세력의 미래는 비폭력 평화의 노선을 견지하는 데 있다. 범진보 이론가와 활동가는 정치개혁의 주력부대가 아니라 보조집단이다. 도움꾼인 범진보집단들은 주권국민의 종복으로서 사태를 해설하고 진로를 제안하는 데 그쳐야 한다.

4.13총선은 어차피 '절묘한 균형' 쯤을 이루면서 종료될 것이다. 지금부터 진짜 힘써야 할 과업은 2017 대통령선거를 제대로 준비하는 일이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상위그룹에 있는 스타들이 내년 12월까지 그 자리를 유지한다는 보장은 없다. 대중의 기호나 선택은 일견 진보와 화평을 거스르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저변과 핵심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의미가 달라진다. 진보일꾼 내지 이념적 지도자로 자처하는 인사들이 놓치기 쉬우나 다수 대중의 정치행태에서 중요한 기준이 되는 포인트가 있다. 분단 이후 우리 역사에서 발생한 대규모의 비극이나 단절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판단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우선 한 가지의 핵심만을 말하고자 한다. 투표권자=주권자 국민대중의 불안을 야기하지 않을 만큼의 미래비전을 믿음이 가는 인물이 나서서 제시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실패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한반도의 평화는 크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제20대 총선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제19대 대선을 알차게 준비하자. 시민일반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범진보후보를 만들어 가자.

글 | 유초하

1948년에 태어나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문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82년부터 충북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공동의장을 지냈고,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고문으로 있다. 현재 파주에서 <한국사상사산책>을 저술 중이다. 그 배경신념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래를 개척하는 힘은 현재의 자신감에 있고, 그 자신감은 역사와 문화에 바탕한 긍지와 자부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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