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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스 노바' 10년치 성적표를 받아 든 서울시향

놀란 점이 하나 있다. 바로 객석 3층이 꽉 들어찼다는 점이다. 3층에는 초대권이 거의 안 뿌려지기 때문에 대부분 유료관객이다. 다시 말해 정말 음악을 듣고자 하는 실수요자라는 뜻이다. <아르스 노바>는 대중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는 실험적인 연주회여서 객석 점유율이 늘 낮았다. 한데 3층이 꽉 찼다는 점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10년 넘게 진행해온 <아르스 노바>의 가장 소중한 자산을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 홍형진
  • 입력 2016.04.08 10:12
  • 수정 2017.04.09 14:12

'2016 아르스노바 : 체임버 콘서트' 최지연의 <망상> 연주 ⓒ 서울시립교향악단

올해로 11년째를 맞은 <아르스 노바>야말로 서울시향이 다른 국내 악단을 멀찌감치 따돌린 핵심 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청중에게는 지금 시대의 음악을 실제로 접하게 해주는 귀중한 체험의 장으로, 단원들에게는 연주력과 음악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훈련의 장으로, 작곡가에게는 일선에서 음악 활동을 펼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기능해왔다. 크와메 라이언이 지휘한 4월 5일의 연주는 10년치 성적표를 받아보는 것과도 같은 자리였다.

첫 곡은 서울시향이 위촉한 신곡으로 페델레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사전II'였다. 일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을 감상할 때 내가 취하는 방식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순간의 소리에 탐닉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체험 자체에 의의를 둔단 뜻. 이번에도 그와 같이 접근했다. 소리 하나하나가 중첩되며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서 스티브 라이시의 'Drumming'이 계속 연상됐다. 물론 편성과 음향은 미니멀리즘의 그것과 다소 거리가 있었으나 각각의 질료에 집중하며 차곡차곡 쌓아가는 모습을 볼 때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은 듯했다. 곡의 제목은 사전이지만 난 차라리 역사책에 가깝다고 느꼈다. 인간이 태동되던 순간의 고요부터 현재의 걷잡을 수 없는 소음까지 이리저리 비틀어가며 소리로 기록한 연대기로 들렸다.

다음 곡은 뒤티외의 첼로 협주곡 '아득한 전 세계'였다. 협연자로는 이상 엔더스가 나섰다. 이 곡은 정확히 한 달 전인 3월 5일에 베를린 필이 마리스 얀손스 지휘, 트룰스 뫼르크 협연으로 정기공연에 올린 터라 상대적으로 친숙하게 감상했다. 서울시향과 이상 엔더스의 4월 5일 연주는 정제되어 있지만 마냥 순하지만은 않은 곡의 정서를 나름 잘 풀어낸 설득력 있는 연주였다. 협연자 엔더스는 얼음과 불을 오가는 스펙트럼 넓은 감성과 흠잡을 데 없는 말끔한 기술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반면 서울시향의 연주는 다소 건조해서 협연자와의 괴리가 조금 있었으나 곡의 정서를 해칠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20~21세기에 작곡된 첼로 협주곡을 라이브로 들어서 크게 실망한 적은 딱히 없다. 그중 알반 게르하르트가 협연한 진은숙의 첼로 협주곡은 단연 최고였다. 이는 베를린 필도 정명훈 지휘로 무대에 올린 바 있고 디지털 콘서트홀에 등록되어 있으니 관람할 여건이 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진은숙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 서울시립교향악단

마지막 곡은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멕베스 부인>을 제임스 콘론이 편곡한 관현악 버전이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걸작 오페라이니만큼 충분히 친숙했지만 사실 내 기대치는 조금 낮았다. 오페라의 관현악 버전은 대부분 유기성이 떨어지는 산만한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승전결에 설득력이 없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날 서울시향이 들려준 시원하기 그지없는 음향은 그런 생각을 할 틈조차 없애버렸다. 정말이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했다. 상대적으로 먼 거리인 3층 첫 줄에 자리했지만 뒤통수까지 후련할 만큼 음 하나하나가 옹골찼다. 완급조절 역시 매우 능숙해서 한 곡 한 곡 정성껏 부각하려고 각별히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근래 서울시향의 연주를 통틀어 최상위권에 놓기에 부족함이 없는 호연이었다.

이날 놀란 점이 하나 있다. 바로 객석 3층이 꽉 들어찼다는 점이다. 3층에는 초대권이 거의 안 뿌려지기 때문에 대부분 유료관객이다. 다시 말해 정말 음악을 듣고자 하는 실수요자라는 뜻이다. <아르스 노바>는 대중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는 실험적인 연주회여서 객석 점유율이 늘 낮았다. 한데 3층이 꽉 찼다는 점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1층과 2층의 객석 점유율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논외로 하고서라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10년 넘게 진행해온 <아르스 노바>의 가장 소중한 자산을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수준 높은 연주회를 진중한 관객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향후 서울시향이 어찌 흘러갈지 알 수 없으나 이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만큼은 지속되기를 바란다. 상업성 잣대를 들이대면 최우선 정리대상 중 하나가 될 텐데 긴 안목을 갖고 평가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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