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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싸움에 등 터질 한국

핵안보정상회의 계기에 이뤄진 한·미·일 3국 정상회의와 한·중 정상회담의 결과는, 한국이 미·중 두 강대국 정치에 끼여 '고래 싸움에 등 터질 새우' 처지로 몰렸음을 드러낸다. 미국은 북핵 대응 공조를 명분으로 한국에 한·미·일 3국 안보협력 강화(사실은 '3국 동맹' 참여)를 압박하고, 중국은 "사드는 절대 안된다"며 '제재+정세안정+대화·협상'의 '3박자'에 균형을 맞추자고 압박한다. 미국이 내민 손을 잡으면 중국과 적대해야 한다. 중국이 내민 손은 박대통령이 잡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중 모두와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창조적 해법을 내놓거나 고민하고 있지도 않다.

  • 이제훈
  • 입력 2016.04.07 13:17
  • 수정 2017.04.08 14:12
ⓒASSOCIATED PRESS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한 다음날인 1월 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한테 전화를 걸어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대북) 제재 추진 필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대다수 언론이 북핵 대응에 초점을 맞추느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얼핏 생뚱맞아 보이나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한·일 정부의 12·28합의를 "정의로운 결과"라며 "북한 핵실험이라는 공동의 도전에 대한 한·미·일의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치켜세운 것이다. 12·28합의가 북핵 대응, 한·미·일 3각 안보협력 강화의 기반이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은 3월 3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핵안보정상회의 계기에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의 직후 언론 발표문에서 "3자 안보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아베 신조오 일본 총리도 "(3국 정상은) 3자 협력을 모든 차원에서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며 협력을 강화할 대표적 분야로 '국방'과 '외교'를 꼽았다.

한·미·일 안보협력, 가야 할 길인가

다자 정상회의 계기에 열리는 양자 회담은 짧으면 10분, 길어도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정상들의 일정이 워낙 빡빡하기 때문이다. 주최국 정상은 특히 바쁘다. 그런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일 정상회의에 75분을 투자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15분만 진행된 사실에 비춰보면, 오바마 대통령이 3국 정상회의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사실 미·일 양국은 2015년 4월 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9월 집단적자위권을 뼈대로 한 안보법제 처리를 통해 미·일 동맹을 한·미·일 3국 동맹으로 확장하고 자위대를 미군과 함께 세계 각지에 투사할 제도적 기반을 다져온 터다. (12·28합의는 한·일의 역사인식 재조정과 화해가 아니라 3국 안보협력의 절실성 탓에 '외부―사실상 미국―에서 강제된 것'이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주의가 망각됐다는 비판은 타당하다.)

한국은 미·일과 처지가 다르다. 3각 안보협력의 실제 표적이 중국이기 때문이다. 미·일은 중국 견제에 이해를 공유하고 있지만 한국은 중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전략적 필요가 높다. 더구나 일본의 도발적 역사인식 탓에 한국사회엔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꺼리는 분위기가 강하다. 2012년 6월 이명박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안건을 국무회의에서 비공개로 처리했다가 거센 역풍 탓에 협정 서명식 한시간 전에 취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대통령이 미·일 정상과 달리 '3국 안보협력'이 아닌 '3국 협력' 또는 '대북 공조 3국 협력'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다. 3국 정상회의 직후 "(3국 정상이)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조기 체결 등 협의를 진행한다는 방침에 일치했다"는 일본 <교도통신> 보도에도, 청와대가 "환경 조성이 먼저"라며 한발을 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3국 안보협력 강화'는 기정사실에 가깝다. "3국 정상들이 안보협력을 심화할 수 있는 실질적 방식을 논의했고, 보좌진들한테 실무적 차원에서 추가 작업을 하라고 지시했다"는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의 발언을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3국 협력을 심화하면 핵이 없는 한반도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허언이다. 한·중 정상회담이, 다자 계기 양자 회담으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길게 80분이나 진행된 이유다. 박대통령은 대북 제재·압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시 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약속을 받아내려 애썼고, 시 주석은 안보리 결의 2270호의 "전면적이고 완정한 이행"(全面完整履行)을 강조했다. 다수의 언론이 이를 '시 주석이 대북 제재의 충실한 이행을 직접 공언했다'고 해석했지만, 무지가 아니라면 의도적 왜곡이다.

중국 쪽이 말하는 "전면적이고 완정한 이행"이란 결의 2270호에 담긴 제재뿐 아니라 한반도·동북아 평화 안정 유지(결의 49항), 6자회담과 9·19공동성명 지지(결의 50항)의 균형 잡힌 이행을 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 주석은 박대통령한테 "대화와 협상은 문제를 해결할 유일하게 올바른 방향"이라며 "6자회담의 틀 안에서 대화 재개를 추동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박대통령의 "대북 제재 강화·집중" 요구에, "대화 추동"으로 맞받은 셈이다. 아울러 시 주석은 미·중 및 한·중 정상회담 때 한반도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를 배치하는 데 반대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한반도 내 사드 배치를, 한국의 미국 미사일방어(MD) 체계 편입으로 해석하며, 중국 정부는 자국의 안보이익과 동북아 전략적 균형을 파괴·훼손하는 도발로 간주한다.

폭주하는 대북·외교정책

핵안보정상회의 계기에 이뤄진 한·미·일 3국 정상회의와 한·중 정상회담의 결과는, 한국이 미·중 두 강대국 정치에 끼여 '고래 싸움에 등 터질 새우' 처지로 몰렸음을 드러낸다. 미국은 북핵 대응 공조를 명분으로 한국에 한·미·일 3국 안보협력 강화(사실은 '3국 동맹' 참여)를 압박하고, 중국은 "사드는 절대 안된다"며 '제재+정세안정+대화·협상'의 '3박자'에 균형을 맞추자고 압박한다. 미국이 내민 손을 잡으면 중국과 적대해야 한다. 중국이 내민 손은 박대통령이 잡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중 모두와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창조적 해법을 내놓거나 고민하고 있지도 않다.

한국 외교를 이런 외골수의 옹색한 처지로 내몬 장본인은 그 누구도 아닌 박대통령 자신이다. 남북관계의 마지막 남은 안전판인 개성공단마저 전면 폐쇄하고 '퇴로'를 차단한 채 대북 제재·압박에 '다 걸기'(올인)한 단세포적 외교·대북정책의 피할 수 없는 외길이다. 외통수를 벗어날 길이 없지는 않을 터. 무엇보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 한반도평화체제포럼 등의 병행 추진을 담아 '동북아 탈냉전 로드맵'으로 불린,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을 되살려 작동시킬 길을 여는 것이다. 하지만 박대통령은 9·19공동성명은커녕 '대화와 협상'이라는 말조차 한국 정부의 금기어로 만들어버렸다.

대통령은 힘만 세지 무지하다. 고위 관료들은 '여왕의 총애'를 얻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고, 야당은 지리멸렬하다. 다들 먹고살기에 바쁘지만, 결국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대화와 협상의 필요성을 제기할 힘은 시민들한테서 나올 수밖에 없다. 시민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에 가장 좋은 장이 바로 선거다. 총선이 코앞이다. 될 대로 되라며 자포자기하기엔 우리네 삶이 너무 고달프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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