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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성과 맞바꾼 흙수저(?) 후보들의 재산 신고 행태

진보 군소 정당들의 20대 후보 절대 다수는 부모인 직계존속의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 지역구 후보 또한 마찬가지였다. 왜 그랬는지 의도는 알 수 있다. '흙수저 당사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서민과 약자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서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가 민주주의의 투명성의 원칙마저 훼손시켜야 할 이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이념이라도 청렴성이 없으면 그 정책과 가치는 구현될 수 없다. 즉, 사상누각인 셈이다.

  • 임형찬
  • 입력 2016.04.07 11:46
  • 수정 2017.04.08 14:12
ⓒGettyimage/이매진스

출처 : 윤미연 후보 페이스북

얼마 전 '민중연합당' 윤미연 후보의 '흙수저' 논란이 있었던 적이 있다. 흙수저 취준생을 표방했지만 본인 재산으로만 8,900만원이 신고 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20대 30대 유권자들이 해당 후보의 자기 모순됨에 분노를 표출했었다.

최근 청년 문제에서 '수저론'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런데 진보 정당들은 이 사안에 대해서 제대로 공감하지 못 하는 듯하다. 흙수저는 대부분의 청년들이 블랙코미디와 같은 자조적 표현으로 하는 말이지 공개적으로 표방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공식 입장을 '흙수저'로 포지셔닝을 한다는 말은 부모를 원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보정당들은 청년 문제와 수저론의 당사자적 위치를 강조했다. 그 현황은 통계로도 증명되었다. 정의당을 비롯하여 녹색당, 노동당, 민중연합당의 서울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후보들의 재산을 조사한 결과 만 35세 미만의 청년 후보 다수는 재산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커다란 함정이 있었다.

바로 '직계존속 재산 고지 거부'라는 수단을 썼기 때문이다. 먼저 정의당 후보는 직계존속이 없는 양경규, 오현숙, 홍부기, 윤소하 후보를 제외한 모든 비례대표 순번 후보들이 직계존속에 대해 '독립생계 유지'를 이유로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 그리고 노동당의 용혜인 후보, 녹색당의 김주온, 신지예 후보, 민중연합당의 정수연 후보가 직계존속 재산 신고를 거부했다. 당연히 이들은 공통적으로 직계 존속의 체납사실 여부 또한 신고 거부를 했다.

이러한 고지거부의 효과는 후보자 정보에서 재산액수를 축소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다. 특히나 청년 후보들에게는 이 수단이 꽤나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수저론의 선거 전략에서는 흙수저 당사자론임을 부각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진보 군소 정당들의 20대 후보 절대 다수는 부모인 직계존속의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 지역구 후보 또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러한 진보정당 후보들의 재산 공개 행태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데 있다. 영화 <마션>의 대사 하나는 민주주의 국가의 중요한 요소 하나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영화 속에서 나사(NASA) 국장 테디 샌더스는 마크 와트니가 죽었다고 생각한 시점에 프로젝트 책임자 뱅캇 카푸르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우린 공적기관이야. 투명성이 생명이지. 위성으로 화성을 훑다가 마크 와트니의 시체라도 잡히면?"

영화 속 이 대사는 나사의 위성사진이 24시간 이내에 국민들에게 공개되어야 함을 염두해 둔 말이었다. 이처럼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명성'은 공공기관의 정책에 대한 신뢰도와 같다. 마찬가지로 공직 후보자의 재산은 그 후보자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는 잣대가 된다.

공직 후보자 재산 공개는 단순히 공직자의 재산을 알려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산물이 아니다. 바로 축재의 형태(채권, 주식, 지식재산권, 부동산 등)를 통해 공직자가 어떤 이해관계를 가지는지 알려주고, 부정한 축재 가능성을 막기 위한 제도이다. 특히나 직계존비속 재산을 공개하는 것이 원칙인 것은 위장 상속과 편법 증여를 통해 재산을 숨기는 행태를 막기 위함이었다.

출처 : 한겨레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국회 공직자 윤리 위원회가 지난 3월 25일에 공개한 국회의원 290명의 2015 재산 변동 신고 사항 공개 목록에 따르면 39.7%에 해당하는 115명(정당별 새누리당 66명, 더불어민주당 34명, 국민의당 5명, 정의당 2명)이 직계 존비속 재산 공개를 거부했다. 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법부 또한 매년 25~30%에 해당하는 고위 공직자가 직계 존비속 고지거부 수단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기사링크 KBS 뉴스 "재산도 늘고, 고지거부도 늘고")

독립생계 유지를 빌미로 하는 고지거부의 폐단은 어제 오늘 지적된 사항이 아니었다.(기사링크 한겨레 "[사설] 힘 있는 공직자일수록 거부하는 '가족 재산공개'") 1인당 89만원에 해당하는 소득만 있어도 독립생계를 이유로 고지 거부가 가능하기 때문에 재산공개를 회피할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 고지거부 대상자인 직계존비속으로 고위 공직자 당사자의 부정한 재산이 공개 전에 양도, 증여, 상속이 되면 사실상 감시망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설사 부정한 재산이 아니더라도 정책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재산이 직계존비속의 재산으로 양도되어 신고 거부가 되면, 공적 감시망을 벗어나 권력 남용을 파악하고 막을 길이 없어진다.

그래서 선거에서 공직 후보자의 재산 공개는 신뢰성을 판단하는 주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럴 법한 사회적 문제제기와 공약은 유권자에게 쉽게 제시할 수 있지만 그 의지를 실제 의정에 투영할 수 있는지는 바로 '청렴성'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진보 정당의 대규모 고지거부는 크게 이슈화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청년층을 위해 출마한 공직 후보자와 진보 정당마저 청렴성을 가볍게 여기는 풍토를 우리 사회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왜 그랬는지 의도는 알 수 있다. 바로 처음 언급했던 '흙수저 당사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서민과 약자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서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가 민주주의의 투명성의 원칙마저 훼손시켜야 할 이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이념이라도 청렴성이 없으면 그 정책과 가치는 구현될 수 없다. 즉, 사상누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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