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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과 국가의 염치

성매매 단속은 아귀다툼에 가깝다. 단속반이 들이닥칠 때 증거가 될 콘돔을 삼켜버리는 건 약과다. 2014년 11월 경남 통영에선 아이와 병든 아버지를 부양하던 25세 여성이 경찰의 함정 단속에 걸리자 모텔 6층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무리한 단속을 자제하면 된다고 하지만 법에 범죄로 규정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아 처벌해야 할 피의자일 뿐이다. 이 전쟁 같은 과정을 계속하는 것이 여성들의 몸을 경제성장에 동원했던 국가의 염치 있는 행동인가.

  • 권석천
  • 입력 2016.04.06 10:51
  • 수정 2017.04.07 14:12

당신이 영화관에 갔다가 옆자리에 성매매를 한 사람이 앉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①바로 경찰에 신고한다. ②성(性)을 판 여자는 신고하지 않는다. 성을 산 남자만 신고한다. ③양쪽 다 신고하지 않는다.

'반드시 처벌해야 할 범죄'라는 생각에 ①번을 고른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②번이나 ③번을 선택한 이들 역시 '성매매의 고삐를 풀어놓으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될까' 걱정이 앞설 것이다. 지난주 목요일 헌법재판소에서 나온 '성매매 처벌 합헌' 결정은 이러한 정서 위에 서 있다.

사실 헌법재판관 6명이 내린 '합헌' 논리는 명쾌하지 않다. 성매매의 폭력적·착취적 성격을 지적하면서 그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성매매 여성을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둥근 사각형' 같은 형용모순이다. 김이수·강일원 재판관의 '일부 위헌' 논리는 보다 선명하다. 성이 상품화된 사회경제적 구조 속에 성매매로 내몰린 생계형 성 판매 여성들을 처벌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조용호 재판관의 '전부 위헌' 판단은 급진적이다. "최소 보호 의무조차 다하지 못한 국가가 생계형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것은 또 다른 사회적 폭력이다. 성 매수자도 그 자체로는 사회적 유해성이 없다." 특히 불특정인 상대의 성 판매만 처벌하는 것은 평등원칙 위반이라고 강조한다. "가진 자들인 특정인을 상대로 한 축첩, 현지처, 스폰서 계약 등 값비싼 성매매는 문제 삼지 않으면서 불특정의 소시민을 상대로 한 성매매만을 처벌하고 사회적 망신을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6:2:1 의견에 대해 상당수 법조인들은 "시한부 합헌"이라고 말한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간통죄 처벌도 다섯 번째 만에 위헌이 나왔다. 재판부가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 결국 위헌 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다수 의견에도, 소수 의견에도 빠진 게 있다는 점이다. 국가가 성매매를 조장하고 활용해왔다는 사실이다.

"1962년 4월 104개소의 특정 지역 설치로 사실상 일정 지역 내 윤락행위는 보호·묵인되었을 뿐 아니라 공창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었다...70년대 초에 들어와서 정부는 관광진흥 정책하에서 OO협회에 요정과를 설치하고 요정기생에게 사실상의 매춘허가증이나 다름없는 접객원증명서를 발부하고...."

(형사정책연구원, 『윤락행위 등 방지법에 대한 연구』)

나아가 정기적인 성병 검진으로 여성들의 몸을 관리했다. 등록 대상자만 14만5802명(85년 기준). 일본인 남성의 '섹스 관광' 유치 노력은 8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정부가 "매춘이 더 이상 외화획득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 건 94년이었다. 다수 의견이 예상을 깨고 '직업 선택의 자유'에 성매매를 포함시킨 것도 직업으로 공인돼왔기 때문 아닐까. 이 프레임 속에 성을 판 여성에게는 '윤락녀(淪落女)' 낙인이 찍혔고, 성을 산 남성에겐 '성욕을 어쩌지 못한 평범한 시민'이란 면죄부가 주어졌다.

2004년 성매매 여성 보호를 앞세워 도입된 성매매특별법은 오히려 성매매 여성을 인권 사각지대로 밀어넣고 있다. 손님에게 칼부림과 심한 구타를 겪어도 '셀프 신고'가 될까봐 주저하고 남성이 신고를 빌미로 콘돔 사용을 거부하거나 서비스를 다 받은 뒤 환불을 요구하기도 한다.(박순주, 『성매매 여성의 '노동' 경험 인식과 그 맥락에 대한 연구』)

성매매 단속은 아귀다툼에 가깝다. 단속반이 들이닥칠 때 증거가 될 콘돔을 삼켜버리는 건 약과다. 2014년 11월 경남 통영에선 아이와 병든 아버지를 부양하던 25세 여성이 경찰의 함정 단속에 걸리자 모텔 6층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무리한 단속을 자제하면 된다고 하지만 법에 범죄로 규정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아 처벌해야 할 피의자일 뿐이다.

이 전쟁 같은 과정을 계속하는 것이 여성들의 몸을 경제성장에 동원했던 국가의 염치 있는 행동인가. 스스로의 부끄러운 과거를 속죄하고, 그들을 보호할 비상구는 만들어놓고 처벌대에 세워야 정당성이 있는 것 아닌가.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헌법재판소의 자발적 성매매 처벌 규정 합헌 결정이 내려진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앞에서 한터전국연합회 성노동자 대표가 눈물을 흘리며 헌재를 떠나고 있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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