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현직 의사가 본 '태양의 후예'

바야흐로 이 드라마는 현직 의사의 눈으로 볼 때 아주 끔찍한 의학적 고증으로 가득 차 있다. 배에 총탄이 박힌 사람을 살리겠다고 그 자리에서 후벼파는 거야 너무 뻔한 클리쉐이니 넘어간다. (총탄이 들어간 배는 수술실에서 개복해야 한다. 드라마처럼 마취를 안 하고 배를 후비면 진짜 즉사할 수도.) 그리고, 수액 달고 있는 환자에게 근육 주사로 굳이 엉덩이도 아닌 팔에다 놓으려고 하는 것도 일단 넘어간다. (이미 수액 확보한 자리에 놓으면 된다. 얼마나 편한가.) 근데, 난민 애들이 홍역에 걸렸다고 기지로 데려와 막 피 뽑아 검사하는 건 좀 심했다고 생각했다.

  • 남궁인
  • 입력 2016.04.06 12:03
  • 수정 2017.04.07 14:12
ⓒKBS

'태양의 후예'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나는 집에 텔레비전도 없고, 평소에 한국 드라마를 보면 눈이 멀어버린다는 미신을 가지고 있다.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그 오글거리는 느낌이 싫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관람한 것은 정말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워낙 대중에게 화제이고, 이에 흥미로운 바도 있고 해서, 이전 내용을 간단히 숙지하고, 최근 방영된 9편과 10편을 몰아 보았다. 나에게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바야흐로 이 드라마는 현직 의사의 눈으로 볼 때 아주 끔찍한 의학적 고증으로 가득 차 있다. 배에 총탄이 박힌 사람을 살리겠다고 그 자리에서 후벼파는 거야 너무 뻔한 클리쉐이니 넘어간다. (총탄이 들어간 배는 수술실에서 개복해야 한다. 드라마처럼 마취를 안 하고 배를 후비면 진짜 즉사할 수도.) 그리고, 수액 달고 있는 환자에게 근육 주사로 굳이 엉덩이도 아닌 팔에다 놓으려고 하는 것도 일단 넘어간다. (이미 수액 확보한 자리에 놓으면 된다. 얼마나 편한가.) 근데, 난민 애들이 홍역에 걸렸다고 기지로 데려와 막 피 뽑아 검사하는 건 좀 심했다고 생각했다. (홍역은 대부분 증상으로만 진단하고, 의심되면 부대에 옮길 가능성 있으니깐 자가 격리한다. 치료하려면 거기 몇 명이 가서 치료해야지.)

거기서 더 나아가, 다이아몬드가 잔뜩 찍힌 엑스레이는 압권이었다. 다이아몬드는 엑스레이에서 투명하게 찍혀 나온다. 그러니 엑스레이는 검은색으로 깨끗해야 한다. 하지만, 송혜교가 들고 온 필름에서는 하얀 다이아몬드 실루엣이 이쁘게 복강에 고여 있다. 이건 굳이 말하자면 강철 다이아몬드를 삼킨 사진이다. 그런 게 세상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들어있는 위치도 대장을 이쁘게 비껴서 골반 아래에 고이 고여져 있었는데, 장탈출한 수십 개의 강철 다이아몬드가 일렬로 장에 뚫린 구멍을 빠져나와 골반 한 쪽에 고이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그리고 달려온 송혜교가 청진기만 대고 호흡이 약하다고 장 파열을 진단하며, (배를 만져야 한다.) 수술하던 도중 감염이 의심된다고 다른 사람들을 다 나가라고 비장하게 소리 지른다. 내가 보기에는 이미 원칙상 다 노출되었는데 말이다. 큰 오류만 이 정도고, 사소한 건 셀 수도 없다. 거의 의학이 관련된 모든 장면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본 9, 10화에서만 나온 장면이다.

게다 우르크라는 가상의 배경은 판타지 세계에서도 좀처럼 찾기 힘들 정도로 특이한 곳이다. 이름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즉 중동의 뉘앙스를 풍기고, 파병 사실과 군복의 디자인으로 비추어 볼 때 중동을 겨냥한 곳이다. 하지만, 이곳의 난민 아이들은 남유럽계, 북우르크 지도자는 아프리카계, 갱은 전부 백인, 평화 유지는 한국군, 문서에 쓰인 언어는 아랍어, 통용되는 언어는 영어와 아랍어, 그리고 가끔 러시아어가 나오고 고려인이 있다. 이런 나라가 있다면 무지무지 특이한 나라일텐데, 그것보다 그냥 제작자가 나오게 하고 싶은 나라 사람이 튀어나오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맞을 것 같다.

자, 그런데, 나는 의학이나 기타 지식을 들이밀 생각은 더 이상 없다. 일반 과학 지식이나, 군대 상식에서도 이 드라마가 터무니없기는 매한가지니까. 내가 하려는 얘기는 그게 아니다. 나는 오히려 이 드라마를 아주 잘 보았다.

이 드라마는 주어진 시간에 극적인 이야기를 배치하는 효율성으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그러니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 그 이야기를 시각화하여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을 어디까지 실현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극단적인 발전의 한 예다. 어차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몇 개의 멜로라인과 그를 가로막는 다이내믹한 클라이맥스, 그리고 기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의 카타르시스다. 이 드라마는 이 욕망을 십분 충족시키기 위해 현실이나 고증은 과감히 무시하고,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서서, 그들이 보고 싶은 장면이라면 무엇이든 보여준다.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총탄이 배에 박혔다고 바이탈을 재면서 병원으로 신속히 후송하는 장면도 아니고, 다이아몬드는 안 찍혔지만 필름을 들고 와서 정황상 의심 가능할 수 있다고 망설이는 장면도, 청진기를 안 대고 배를 열어 조심조심 촉진해 환자의 반응을 살피는 것도 아니다. 대중과 TV 안에는 직관적인 세상이 있을 뿐, 아무도 그것이 현실적인 경계에 있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과감히 현실을 탈피하고 붕괴시켜 자기들이 가장 잘 하는 이야기를 함으로서 모두의 욕망을 발현시킨다. 그들에게 클리쉐란 분명히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양념이자 재료다. 총탄은 즉시 헤집어 뽑아야 하며, 엑스레이에는 분명히 하얀 다이아몬드가 찍혀야 한다. 통념상 반군 지도자는 아프리카 인이고, 파병된 나라 사람들은 아랍어를 쓰고, 갱은 영어를 쓰는 백인이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적어도 대중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나라와 시공을 구현해버리면 된다.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펼쳐낸, 물리적으로 뒤죽박죽인 이 공간에서, 이야기는 날개가 돋아 관객의 눈동자를 팽팽 돌리며 발현된다. 여주인공의 차는 매회 곤두박질치고, 추락하고, 지뢰밭에 들어간다. 더불어 지진도 나고, 적군도 쳐들어 오고, 전염병도 돌고, 갱은 매번 도끼눈으로 총을 쏜다. 그 장치로 공고해지는 것은 주어진 육십 분에도 몇 번씩 클라이맥스를 만들 수 있는 시각적 구현과, 몇 번씩 멜로적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달달한 장면이다. 그 와중에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대사들은 위트나 긴박함에서 어찌나 흥미롭고 기발한지. 또 손발이 없어지게 하는 장면은 그 나름대로 어찌나 참신한지. 매사 침착한 편인 나도 보다 몇 번을 소리 지를 뻔했다. 이 세계에서는, 그렇게 소설적인 장면에서도 쉽게 넘보기 힘든 명랑함이 가득하다. 그렇게만 만들 수 있다면, 현재까지 숱하게 거론되는 이 드라마의 고증상의 오류는 전부 무의미한 이야기가 된다. 이 드라마가 주장하는 바는 되레, 그들이 잘 창조한 다른 세계에서 펼쳐지는 멜로니까.

결론적으로 나는 이 통속적인 드라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고, 이야기를 보고자 하는 욕망의 현재 주소를 보았다. 그것이, 내가 미신에 씌워져 어떤 드라마도 보지 않는 동안, 고심해서 사람들이 만들어 온 나름대로의 작품세계와 작화 방법이었던 것이며, 이게 온 아시아를 지배할 정도의 장르화된 하나의 현상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이 드라마를 아주 잘 보았다. 아, 눈이 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태양의 후예 #남궁인 #클리쉐 #의사 #문화 #방송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