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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개발독재모델'의 북한수출을 검토하자

김정은의 체제인정욕구를 활용하여 군사적 힘을 경제적 힘으로 사용하는 한에서 리더십과 체제를 인정하는 조건을 달아야 한다. 군사적 힘 대신에 경제적 힘으로 살아가도록 '개발독재모델'을 과도기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의 산업화와 중산층을 촉진했던 '박정희개발독재모델'을 북한에 수출하고 지원하는 방안을 풍부하게 검토하고, 미국과 중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 국민의제
  • 입력 2016.04.04 07:14
  • 수정 2017.04.05 14:12
ⓒ연합뉴스

글 |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4·13 총선을 향한 선거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여야는 표심을 가르는 선거운동 차원에서 북한 이슈와 안보정책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박근혜 대통령도 제4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만큼, 여야의 정책이 어떻게 드러날지 주목된다. 안보정책은 국가안위와 관련된 만큼, 당리당략적인 이념대결보다는 초당적인 협력과 국민통합 차원에서 진지하게 제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강력한 대북제재 동참을 국제사회에 호소하였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 포기를 위한 강력한 제재의지를 여러 차례 천명하였다. 4월 3일엔 '폭정'이라는 단어를 쓰며 북한의 인권문제를 비판하였다. 4일에도 "'핵 포기 없이는 체제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도록 해야 한다"며 "북한 정권은 핵무기가 체제를 보장한다는 그릇된 망상을 버리고, 하루 속히 진정한 변화의 길로 나오도록 강력하게 촉구"하였다. 박 대통령은 사실상 북한 정권을 '폭정'으로 규정하는 한편 강력한 압박과 제재를 통한 '레짐 체인지'(정권 붕괴)를 선언하였다. '폭정'과 '레짐 체인지'란 9.11테러 이후 미국 부시대통령과 네오콘들이 사용한 '선제적 공격노선'을 차용한 말이다.

과연 박 대통령의 '폭정에 대한 정권붕괴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태도가 박 대통령의 의지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대북압박'과 '대화'를 병행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중국은 지난달 28일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 등을 통해 제재와 대화를 병행할 것을 거듭 촉구한 바 있고, 미국 역시도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을 통해 지난 3일 "우리는 비핵화 6자회담과 평화협정의 병행논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기존 '선(先)비핵화-후(後)평화협정' 원칙과 다른 미묘한 변화를 시사하였다. '대북압박'과 '대화'의 병행론은 '한반도의 적절한 긴장관계 조성을 통한 현상유지'를 취해온 두 나라의 대외정책을 볼 때, 특별한 것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은 현재 이런 현상유지노선을 변경할 만한 특별한 국익의 변화가 없다.

박 대통령 역시 두 나라의 '현상유지노선'을 무시하면서까지 독자적인 강경외교노선을 취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가 미국과 중국의 '현상유지적인 대화론'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대북압박'을 전제로 두 나라를 설득할 수 있는 즉, 북한의 실질적인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이를 위해서는 '폭정'으로 번역되고 있는 'tyranny'에 대한 정확한 정체인식과 이에 따르는 대처가 필요하다. tyranny의 '이중성'(친민중성, 반민중성)을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미국 네오콘의 '레짐 체인지론'이 실패한 이유와 함께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을 배울 수 있다.

필자의 <북한 참주정의 변혁·보존·개선에 관한 '엄밀한 인식'과 한국정체의 대응>이란 논문에 따르면, tyranny를 반민중성과 관련된 '폭정'으로 번역하기 보다는 친민중성까지 포함하는 '참주정'으로 번역하여 그 의미의 이중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tyranny를 '폭정'으로만 번역할지 아니면 이중성 모두를 담는 '참주정'으로 번역할지에 따라 북한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tyranny를 '폭정'으로 번역하여 인식할 경우, 그 대처방식은 부시와 네오콘들의 '레짐 체인지'와 '민주주의 확산론'과 같이, 극단적인 방식으로 민주정을 확산하는 방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을 '참주정'으로 인식한다면 강압적인 방식과 함께 점진적이고 온건한 방법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어 강온전략의 유연성과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참주정은 '군주정'(kingship)의 타락한 형태로, 전기 참주와 후기 참주로 구분된다. 전기 참주는 대체로 '귀족정'에서 '민주정'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등장한 참주로서 귀족중의 일부가 평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다른 귀족들을 타도하여 권력을 잡고 그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친서민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펴다가 폭정으로 전락하거나 세습으로 권력을 물려주다가 몰락한 참주들을 말한다. 이에 비해 후기 참주들은 대체로 '민주정'이 '중우정'으로 타락하는 과정에서 군사적 능력과 참주적 선동능력으로 권력을 비합법적으로 찬탈하여 폭압적인 반서민 정책을 추구하다가 몰락한 참주들을 말한다. 김일성이 전기 참주의 모습이라면, 세습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김정일은 전기 참주에서 후기 참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모습이고, 김정은은 후기 참주의 모습에 해당된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유신체제는 참주정의 이중성 중 '친민중성'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박정희 참주는 과두정으로 타락한 민주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찬탈하였다. 그는 쿠데타에 따른 정통성의 위기를 경제적 퍼포먼스로 해결하여 그 동력으로 민중의 지지를 이끌면서 권력을 유지하다가 몰락하였다. 박정희 참주는 이른바, '경제개발독재모델'을 창조하여 경제발전이라는 사업성과를 통해 민중의 환심을 사서 자신의 정통성 위기를 만회하고자 하였다. 개발독재모델이란 경제성장을 위해서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제한하고 독재를 정당화하는 체제를 말한다.

부시와 네오콘의 '북한 레짐 체인지'는 실패했다. 그 이유는 중국의 물질적 지원으로 군사적 압박이 효과를 거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해관계가 다른 중국과 러시아가 있는 한, 군사적 압박에 기반한 '레짐 체인지'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북한 정권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참주정의 의의와 한계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참주정은 본성상 정통성이 없고 세습에서 오는 체제의 불안정성이 상존한다. 참주들은 그 불안정성을 군사적인 퍼포먼스 또는 포퓰리즘 등의 경제적인 퍼포먼스를 끊임없이 보여줌으로써 피해가고자 하며, 이러한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의 리더십이 인정되기를 절실히 갈망한다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이런 인정의 욕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 그들이 가진 참주정의 한계를 더 이상 군사적인 퍼포먼스가 아니라 경제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해결하도록 견인하는 게 북한해법의 관건이다.

박정희 참주의 경제적 퍼포먼스로 한국 경제와 중산층이 성장하여, 이 중산층이 다시 참주정 체제를 변화시키는 민주화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을 상상해 보자. 많은 한계가 있음에도 북한의 군사적인 리더십이 경제적인 리더십으로 전환하도록 돕는 것은 북한의 민주적 이행의 토대를 내생적으로 돕는 방안이다. 이는 부시와 네오콘의 방법이나 미국과 중국의 '현상유지론'보다 많은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이 노선은 중국, 러시아, 베트남이 군사참주체제에서 경제참주체제 즉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로 이행한 것처럼, 북한 체제를 점차 민주정과 공화정으로 이행시킬 것이라 확신한다. 중국은 개혁과 개방 시기에 태자당과 공산청년단의 동맹세력이 경제참주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소련은 KGB 등이 경제마피아(경제참주)로 변신하였고, 베트남의 경우 호찌민 대학출신들이 경제참주역할을 했었다. 이들처럼 김정은을 '경제참주'로 나아가도록 가능한 압박과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김정은의 체제인정욕구를 활용하여 군사적 힘을 경제적 힘으로 사용하는 한에서 리더십과 체제를 인정하는 조건을 달아야 한다. 군사적 힘 대신에 경제적 힘으로 살아가도록 '개발독재모델'을 과도기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의 산업화와 중산층을 촉진했던 '박정희개발독재모델'을 북한에 수출하고 지원하는 방안을 풍부하게 검토하고, 미국과 중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글 | 채진원

2009년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이란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수로 '시민교육', 'NGO와 정부관계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저서로는 『무엇이 우리정치를 위협하는가-양극화에 맞서는 21세기 중도정치』(인물과 사상사, 2016)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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