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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전환치료, 위험한 착각

2016년에 이런 내용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건 비극이다. 동성애가 정신질환 진단 매뉴얼에서 삭제된 것은 1973년이었다. 미국정신의학회는 '동성애가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또는 직업능력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즉, 학교에서 교육받고 직장에서 일하는 데 동성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어떤 의학 교과서도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기에 그것을 치료할 이유는 없다.

  • 김승섭
  • 입력 2016.04.01 13:37
  • 수정 2017.04.02 14:12

동성애 혐오와 차별은 성소수자의 불안과 우울, 자살 시도로까지 이어진다. 류우종 기자

2016년에 이런 내용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건 비극이다. 동성애가 정신질환 진단 매뉴얼에서 삭제된 것은 1973년이었다. 미국정신의학회는 '동성애가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또는 직업능력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즉, 학교에서 교육받고 직장에서 일하는 데 동성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어떤 의학 교과서도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팀 쿡·조디 포스터도 치료할 텐가

이러한 사실은 일상을 묵묵히 살아내는 동성애자들만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동성애자들의 삶을 통해서도 현실에서 입증됐다. 조디 포스터나 엘런 페이지 같은 할리우드의 스타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샤넬이나 마크 제이콥스 같은 명품 브랜드의 수석디자이너들도 동성애자니까. 심지어 전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기업,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도 동성애자다. 전세계는 그들이 출연한 영화를 보고, 그들이 디자인한 가방을 들고, 그들이 만든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기에 그것을 치료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동성애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된 지 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몇몇 공동체를 중심으로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환치료가 행해지고 있다. 그 치료는 두 가지 착각을 전제로 한다.

첫째, 성적 지향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다는 착각이다. 성적 지향이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에 대한 논쟁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유전적·발달학적·사회문화적 원인에 대한 연구가 계속 진행됐지만 우리는 무엇이 주요한 원인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원인이 무엇이건, 과연 개인이 스스로 성적 지향을 선택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미국소아과학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신 문헌과 이 분야 대부분의 학자들은 성적 지향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즉, 개인이 선택해서 동성애자 또는 이성애자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말하며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성적 지향은 대개 아동기 초기에 형성된다"고 밝혔다. 즉, 대다수의 경우 개인이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인지하게 되는 10대에 이미 성적 지향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둘째, 효과적인 동성애 전환치료가 존재한다는 착각이다. 전환치료는 외부적인 힘을 빌려 성적 지향을 강제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동성애 전환치료'가 시행됐고, 그 과정에서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계속 제기됐다.

'전환치료' 효과 입증 안 돼

그러나 몇몇 근본주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전환치료를 계속하자 이와 관련해 미국심리학회는 2009년 '성적 지향에 대한 올바른 치료적 대응'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그동안 출판된 동성애 전환치료 논문 83편을 검토하고, 학회 차원에서 내린 결론은 단순하다. 현재 효과가 입증된 동성애 전환치료는 존재하지 않으며, 성적 지향을 억지로 바꾸려는 것은 동성애자의 우울, 불안, 자살 시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고 '동성애 전환치료'는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는 반박이 일자, 그다음에 나오는 세 번째 주장이 동성애가 '형벌과도 같은 죽음의 질병'인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유발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동성애자 인구에서 AIDS 유병률이 높다는 점을 근거로, 동성애자 간의 성관계가 AIDS라는 치명적인 질병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여러 면에서 잘못된 주장이다. 우선 2016년 현재 AIDS는 의학적으로 더 이상 치명적인 죽음의 병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다. 1995년 개발된 칵테일 요법을 비롯해 다양한 치료제의 개발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의 질병 진행 속도를 낮출 수 있게 되었고, AIDS 발병 뒤에도 환자의 건강 상태를 개선할 수 있다. 2013년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살을 기준으로 치료를 받는 HIV 감염인의 기대수명은 일반 인구의 기대수명에 가까운 70대 초반으로 나타났다. HIV에 감염되고도 50년을 더 사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AIDS를 예방하는 것은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모두 안전한 성관계를 갖도록 권장하고 정책을 실행해야 할 일이지, 동성애자 수를 줄인다고 달성될 일이 아니다. 동성 간 성관계가 HIV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동성 커플에서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갖는 경우에 한해, HIV가 파트너에게 전염될 위험이 높을 뿐이다.

따라서 HIV 감염을 줄이기 위해서는 동성애자를 포함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더 안전한 성관계를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전환치료 등을 통해 동성애 자체를 줄이려는 시도는 비과학적이고 비윤리적이며 무엇보다 효과가 입증된 바 없기 때문이다.

유엔의 반기문 총장도, 세계은행의 김용 총재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고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사라져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2016년 한국을 살아가는 동성애자는 그 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동성애에 대한 오해와 혐오 때문이다.

성소수자 3159명을 대상으로 2013년 시행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 조사' 보고서에서 응답자의 41.5%가 차별이나 폭력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었고, 67%가 직장 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조롱이나 차별이 자주 발생한다고 답했다. 이러한 혐오는 사람을 아프게 한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 중 28.4%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고, 19살 미만에서는 자살 시도자 비율이 45.7%에 달했다. 10대 성소수자 둘 중 한 명이 자살을 시도했던 셈이다.

두 여성의 감성적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내 호평받은 영화 <캐롤>의 한 장면. CGV 아트하우스 제공

성소수자들 우울·불안 심각

10대 성소수자와 관련해서 가장 놀라웠던 결과는 다름 아닌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 실태 조사 보고서였다. 전국의 중·고등학교 선생님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39%가 '동성애자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라고, 31%가 '동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치료를 통해 고칠 수 있다'라고 답했다. 학생들을 교육하고 상담하는 선생님들의 인식이 이러했다.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 혐오를 방치하거나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 교학사에서 2014년 나온 <생활과 윤리> 교과서는 "성적 소수자를 비도덕적이거나, 정신적으로 이상하거나,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부분을 삭제하고,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 중 남성 동성애자가 많고, 성적 지향은 선천적이지 않다"는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내용을 '반대 의견'으로 추가하면서 학생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찬반 입장을 토론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2014년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은 보수 개신교계의 요구에 따라 '사랑'의 정의를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에서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꾸었다. 이러한 변화는 성소수자들의 사랑을 사회적으로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올해 7월 세계심리학회에서 한국의 성소수자 421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 연구에서는 성소수자들에게 언어폭력을, 신체적 폭력을,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는지를 묻고 그에 따라 우울증의 발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보았다. 짐작하듯이, 사회적 폭력의 경험은 한국 성소수자에게 우울증을 유발했다. 그런데 부모와 주위 동료들로부터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는 집단에서는 어떤 폭력도 우울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자신을 혐오하는 세상에서 상처받았을 때 그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분노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면, 우리는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씁쓸하기 그지없지만, 동성애자라고 하면 꽤 오랫동안 뭔가 몸이 오글거리고 나쁜 것을 만난 느낌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내 주변의 누군가가 동성애자로 인해 피해를 본 적도 없었는데, 왜 그랬을까.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교과서와 텔레비전에는 항상 이성애자만 나왔다. 내 주변에 동성애자는 없었고,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미안하다. 분명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다니면서, 내 주변에는 혐오에 대한 두려움으로 커밍아웃하지 못했던 동성애자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일상에서 그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조금만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게이' 아니냐고 놀리던 또래 문화에서, 그런 말이 들릴 때마다 당사자인 그들의 가슴에는 어떤 생채기가 났을까. 백번 양보해서 마음속으로 동성애를 불편해하고 거부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일 수 있지만, 동성애 혐오를 표현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당사자가 어찌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낙인 삼아 혐오를 표현하는 것은, 일부 몰지각한 서양인이 아시아인을 원숭이에 비교하며 쑥덕거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멋진 동성애자로 살아남아달라!

마지막으로 이 순간에도 힘들어하고 있을 10대 성소수자에게 부탁한다. 여기저기 혐오와 차별에 노출되고 아픈 줄도 모르고 상처받고 있겠지만, 어떻게든 꿋꿋하게 살아남아줬으면 한다. 인간의 가치는 동성을 사랑하는지 이성을 사랑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얼마만큼 상대를 진실하게 사랑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니까. 멋진 동성애자로 살아남아서,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줬으면 한다. 그때까지 부당하고 비과학적인 혐오에 맞서 함께 싸우며 기다릴 테니까.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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