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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01일 07시 19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02일 14시 12분 KST

표는 그렇게 죽지 않는다

'다 거기서 거기'라고는 하지만 그 똑똑하신 분들이 모를 리가 없다. 1번부터 두 자리 숫자의 번호를 받은 후보들이 모두 '똑'같지는 않다는 것을(심지어 정당투표는 스무 개가 넘는 정당이 등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자주 하는 얘기지만 투표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이렇게 똑똑하신 분들이 두려워 한다. 죽음을, '표의 죽음'을 두려워 한다. 이런 두려움은 똑똑하면서도 냉소적인 분들일수록 더 심한 것 같다.

<밑줄 긋기> 『나는 왜 불온한가』, 김규항 지음, 돌베개, 2005

2016 총선청년네트워크가 '우리는 변화에 투표할 것입니다'며 출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반장 선거를 떠올려 본다. 선생님이 후보 추천을 받는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 녀석이 손을 들어-추천될 친구의 만류를 뿌리치고-용감하게 추천자의 이름을 외치면, 여기 저기서 손을 들기 시작한다. 보통 2~4명으로 압축되는 후보들. 후보들이 각자 교탁 앞에 서서 후보자의 말(?)을 한다. 친구들이 무슨 말을 했었더랬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래봐야 초등학생들이니 무슨 말(공약)을 어떻게 했을까는 대충 감이 오지만. 여러분들의 심부름꾼이 되어 어쩌고 저쩌고...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는 X학년 X반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물론 이건 반장이 될 의욕이 있는 녀석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 그렇지 않은 녀석은 교실 앞에 나와 반 친구들을 잠시 깔깔거리게 만든 뒤에 머쓱해져 내려간다. 이윽고 투표가 시작된다. 자로 찢은 재생지를 하나씩 받고는 각자 손으로, 팔로 가려가면서 후보의 이름을 적는다. 그리고는 개표. 검은 칠판에 흰색으로 바를 정자가 새겨지기 시작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보라고 나왔던 반 친구들 중에 내가 가장 맘에 들어하는 녀석, 나랑 가장 친했던 녀석에게 표를 던졌던 것 같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나는 저 아이와 친하지만 우리 반을 위해서는 이 아이가 반장이 되어야 해. 이렇게 생각한 아이가 몇이나 되었을까. 그리고 고작 초등학교의 반장을 뽑는 데 뭐가 그리 대수였겠는가. 그래도 각자 나름대로의 진지함으로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 나갔을 것이다. 많은 표를 얻은 녀석이 당연히 반장이 되는 것이지만, 분명 몇 표만을 얻는데 그친 후보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없든지, 성적이 좋지 않았든지 하는 뻔한 이유였겠지만.

선거철이라 사람들을 만나노라면 자연스레 투표 이야기가 잠깐씩이나마 나오곤 한다. 술자리에서 정치에 관련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답답하고 찜찜하다. 현재의 여러 상황에 혀를 끌끌 차고 한숨을 내쉬면서도, 투표를 할지 하지 않을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고 털어놓는다. 다 고만고만하고 별 다를 게 없다는 이유로.

'다 거기서 거기'라고는 하지만 그 똑똑하신 분들이 모를 리가 없다. 1번부터 두 자리 숫자의 번호를 받은 후보들이 모두 '똑'같지는 않다는 것을(심지어 정당투표는 스무 개가 넘는 정당이 등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자주 하는 얘기지만 투표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이렇게 똑똑하신 분들이 두려워 한다. 죽음을, '표의 죽음'을 두려워 한다. 이런 두려움은 똑똑하면서도 냉소적인 분들일수록 더 심한 것 같다.

이건 굉장한 모순이다. 자신의 한 표가 세상을 바꾸지 않을 거란 것을 잘 알고 그것을 곧이 곧대로 믿는 자들을 어리석다고 비웃으면서도, 자신의 표가 '死標'가 되는 것은 싫다는 거다.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여러 명의 후보와 수십 개의 정당 중에서도 표를 줄 곳이 없다고 한탄하는 똑똑하신 분들이 '투표는 될 사람을 찍는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립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제 이념대로 순정하게 찍는 것, 그래서 한국 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한국인들의 이념적 스펙트럼과 일치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똑똑하신 분들은 자신의 이념적, 정치적 위치를 한 번쯤 돌아보지도 않았던 거다. 그러면서 한국은 극우파와 우파만 있다고 냉소를 보내기만 한다. 고만고만하다고? 세상에. 그러면 1노 3김의 '정치거물'들이 유세를 벌이던 시절의 당신은 어떠했는가. 찍을 사람이 없다고? 농담이시겠지. 당신 같이 똑똑한 사람이 투표할 때 100%의 지지를 보일 수 있는 후보가 존재하기나 할까?

나는 모 정당에 매달 당비를 내는 당원이고, 이번 선거에도 내가 속해 있는 당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대단히 열성 있는 당원은 못돼놔서 주변사람들에게 누구를 찍으라고 강하게 권하진 못한다(죄송합니다, 당원 여러분). 세부적인 정책 이야기로 논쟁을 할 수는 있겠지만, 주변 사람이 내가 싫어하는 당의 후보를 찍는다고 해서 굳이 뜯어말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오히려 내가 지지하지 않는, 심지어 반대하는 정당에 진성 당원으로 활동하는 사람을, 적어도 그 부분만은 존중하고 싶다.

"왜 저 후보를 찍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왜 저 정당을 지지하는 거지?"라고 이야기하면서 "찍을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는 말들이 이상하다. 자신의 위치조차 돌아볼 생각도 없고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헛똑똑이 보다 '이해가 가지 않는' 저 사람들이 낫다. 그 헛똑똑이들은 초등학생 반장선거 유권자보다도 못하다. 적어도 내 학창시절 초등학생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그 후보가 단 3표를 얻을 것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그것에 대해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솔직한 자각에 기초한다. 표는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되지 않을 때 죽는 것이 아니다. 표는 그렇게 죽지 않는다. 아무런 고민도 없이 기권을 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이념적, 계급적 위치를 돌아보지도 않고 표를 던질 때 비로소 죽는 것이다.

누가 당선될 것인가, 예측하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그 예측 때문에 나의 보잘것없는 권리마저 협박받는 일은 피해야만 한다. 우리 대부분은 정치가도 아니고 정치 평론가도 아니다. 그저 유권자일 뿐이다. 속된 말로, '꼴리는 대로' 찍는 것만이 그저 유권자일 뿐인 우리를 쉽게 협박하지 못하게 막는 유일한 길이다. 다시 말하지만, 표는 그렇게 죽지 않는다.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