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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이 망친 'BIFF'

'서울의 영화인들이 부산의 영화제를 좌지우지'한다는 논리를 보도자료로 뿌리며 어떻게든 부산 시민과 영화인들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나 같은 부산 시민인 동시에 영화인인 사람이 증거한다. 부산시청은 현재 부산 시민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서울의 청와대가 부산의 영화제를 좌지우지한다'는 말이 더 신빙성 있게 들린다.

  • 조원희
  • 입력 2016.03.30 08:10
  • 수정 2017.03.31 14:12
ⓒASSOCIATED PRESS

1996년 9월을 기억한다. 당시 부산 지역의 유일한 연극영화학과 학생이었던 나는 부산에서 '국제 영화제'가 열린다는 사실을 거의 믿을 수 없었다. 이전까지 지역 시네마테크를 중심으로 한 영화제가 있었지만 그건 사실상 제대로 된 영화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울도 아닌 부산에서 필름으로 영화를 상영하고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찾아오는 '국제 영화제'라는 것을 한다니. 당시만 해도 조니뎁은 무명이었으며 짐 자무시는 더 말할 것도 없었으므로 한국의 극장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영화 '데드맨'의 상영을 보면서 그제서야 '이 위대한 일이 부산에서 일어났구나' 라는 자각을 할 수 있었다. 가장 행복한 순간 비관적인 걱정부터 하는 나는 그 순간부터 걱정하기 시작했다. '과연 이 행복한 순간을 내년에도 맞이할 수 있을까? 내후년에도? 그 이후로도 계속?' 그 걱정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부산 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성장해 지난해까지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해 왔으니까.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깃들어 있는 영화제이지만 어쨌든 중심에는 1996년부터 작년, 아니 올 초까지 영화제를 지켜 왔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공이 있었다. 이용관 선생은 그 시절 나의 대학교 은사였다. 그런 이용관 선생은 이제 부산국제영화제로부터 분리돼 버렸다. 외압 때문에. 그리고 20년 전에 철없는 대학생이 했던 생각은 현실이 됐다. 정치적 이유 때문에.

나는 영화제가 주로 열리게 된 부산 해운대구에서 살면서 근처의 초, 중, 고등학교와 부산 지역의 대학교를 나왔다. 어머니는 현재 부산시 수영구에 살고 계신다. 얼마 전까지도 해운대구에 살고 계셨다. 부산은 내 고향인 동시에 언제든 기회만 닿는다면 돌아가 살고 싶은 곳이다. 영화제에는 직접 출품한 적은 없지만, 1996년 부산 지역의 학생으로 처음 관람한 이후 서울에 취직해 살면서도 해마다 방문했다. 기자 시절엔 영화제를 취재해 세상에 알렸고 방송 진행자가 되면서 부산 지역 방송국의 영화 프로그램 엠씨의 자격으로 영화제에 참여하기도 했다. 바로 '다이빙 벨'이 상영됐던 그 해에는 전국에 영화제를 소개하는 데일리 프로그램의 출연자로 영화제를 누비기도 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영화 감독으로서는 내가 만든 단편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했지만 탈락한 적이 있다. 나에게 부산국제영화제는 언젠가 꼭 '출품자'로 참가하겠다는 하나의 원대한 목표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직업을 가진 입장에서 부산국제영화제는 정말이지 가장 자랑스러운 행사다. 해외 영화제를 나가서 외국 영화인들을 만났을 때, '내 고향이 부산'임을 말하면 더 이상의 자기 소개가 필요 없어진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대화로 이어진다. 20년간 잘 만들어져 온 이 아름다운 영화제가 상처 입었다. 부산시청의 임기가 정해져 있는 선출직 공무원 서병수 때문이다. 이용관 선생은 차치하고, 내가 20년간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해 아기 오줌만큼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애써왔을 때 서병수는 영화제를 위해 뭘 했는지 궁금하다. 내가 살던 해운대구의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다던데 내 어머니에게 여쭤봐도 국회의원 시절 뭘 한 사람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뜨내기다. 뜨내기가 20년 된 부산국제영화제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영화인들이 부산의 영화제를 좌지우지'한다는 논리를 보도자료로 뿌리며 어떻게든 부산 시민과 영화인들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나 같은 부산 시민인 동시에 영화인인 사람이 증거한다. 부산시청은 현재 부산 시민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서울의 청와대가 부산의 영화제를 좌지우지한다'는 말이 더 신빙성 있게 들린다. 부산 시민들을 위한 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애써왔고 또 애쓰고 있는 이들을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사람들'로 교체하려다 극심한 저항을 받게 되자 아예 영화제를 포기하고 '다른 잔치'를 벌여 시민들의 불만을 잠재울 계략을 짜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는 세계 영화제들이 개최 일정은 물론 티저 포스터를 발표하고 있는데,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시기를 놓쳤다. 이 모든 것이 부산 시민이 아니라 청와대에 충성하고자 애쓰는 부산시청, 그 행정 수장인 서병수와 그의 졸개들 때문이다.

이것은 대한민국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말 중요한 사건이다. 특정한 영화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영화제의 수장이 '잘리는' 사태를 바라보며 보통 간이 작은 나 같은 인물들은 생계가 걸린 문제에서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그렇다. 이 글도 사실은 '자기 검열'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글이다. 혹시나 나중에 서병수가 그 알량한 권력을 이용해 무슨 해코지라도 할까봐 적당히 한 것이다. 내 마음 같았으면 정말이지 심한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제발 부산국제영화제를 돌려달라. 이것은 언젠가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을 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 영화인이자 부산에서 자란 부산 시민의 호소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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