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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운

나는 가끔 한국인들은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면서 적당히 예의 바른 거, 서비스를 인격과 분리시키는 거, 해 본 적이 없는 거다. 상대방이 어리건 늙었건 하물며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사람 자체를 존중한다는 것도. 누군가를 자기의 가족이나 아는 사람으로 치환하지 않으면 잘해 줄 마음을 쉽사리 갖지 못하는 거 같더라고. 그런데 가족이나 친지로 생각하는 경우에는 또 그 적당한 거리두기가 안된다.

  • 김세정
  • 입력 2016.03.25 13:31
  • 수정 2017.03.26 14:12
ⓒ연합뉴스

서비스가 좋다는 것은 아버님, 어머님, 이런 호칭을 쓰면서, 그야말로 고객님 커피 나오셨습니다, 하는 식으로 '상냥한' 것과는 매우 다른 이야기다. 해주기로 된 일을 매끄럽게 잘 해줘야 좋은 서비스이다. 그러려면 서비스의 범위와 서비스업 종사자의 역할과 프로토콜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스스로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서비스가 좋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사실은 별로 그렇지 않다. 말투는 매우 공손한데 사실은 성의 없거나 짜증을 부리는 일이 많다. 아니면 지나치게 잘해주는데 말투가 심하게 격의 없는 경우도 많고. 응대는 열심히 하는데 막상 해줘야 하는 일을 요청하는 대로 제대로 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백화점이니 호텔이니 오지게 비싸게 받는 식당들과 같은, 가격에 좋은 서비스의 대가가 포함되어 있는 곳에서도 사실은 그렇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보아 좋은 서비스는 기대하기 어려우려니 하는 곳에서야 물론 말할 것도 없고.

나는 가끔 한국인들은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면서 적당히 예의 바른 거, 서비스를 인격과 분리시키는 거, 해 본 적이 없는 거다. 상대방이 어리건 늙었건 하물며 마음에 들지 않아도 사람 자체를 존중한다는 것도. 누군가를 자기의 가족이나 아는 사람으로 치환하지 않으면 잘해 줄 마음을 쉽사리 갖지 못하는 거 같더라고. 그런데 가족이나 친지로 생각하는 경우에는 또 그 적당한 거리두기가 안된다. 과도하게 다가오는 거지. 필요 없다는 대도 막 춥다며 두꺼운 옷을 사라고 그러고 싫다는 대도 이거 먹으라 저거 먹으라 권한다고. 언제 봤다고 반말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막 '잘해준다'. 아니면 상대가 '높아야' 한다. 돈이 있어 보이거나 뭔가 잘해주지 않으면 해코지할 것처럼 보이거나. 그런데 서비스가 그렇게 자의적이어서는 그걸 좋은 서비스라고 할 수가 없다.

물론 서양에서도 옷 잘 입고 돈 많아 보이고 하면 훨씬 공손해지고 아는 사이이거나 마음에 들면 더 잘해준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아도, '예의 없지는' 않다는 거다, 대개는. 물론 예외는 있다.

그런데 이게 솔직히 말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라. 다른 사람에게서 서비스를 받는 처지에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도, 그냥 전혀 모르는 사람에 불과하고 한번 보는 사이일 뿐일지라도 예의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남을 사람으로, 인격체로, 타인으로 설정하는 게 어려워서. 우리 엄마 같고 내 동생 같고 언니 같고 동네 사람이고 아니면 누구 닮았고 뭐 그렇지 않으면 친해지지 않으면 내가 너를 언제 봤느냐고, 또 언제 볼 거냐고 막 대한다. 요구하는 내용도 그렇다. 정해진 선을 지키지 않고 아무거나 다 막 해달라고 하고. 상대가 제공하기로 되어 있는 서비스의 영역을 무시하고 더 나아가 인격도 무시한다.

말하자면, 서비스를 주고받는 맥락에서 한국인들은 서비스를 개인적인 것으로 치환시킨다.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은 본인에게 서비스를 제공받을 만한 인격적 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공식적인 관계로 상대와 자기를 설정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본인이 서비스를 받을 만한 사람이라서, 잘나서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덜한 대접을 받으면 어찌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자존심 상해하고 흥분한다. 한편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 역시, 인격과 서비스를 따로 떼어 놓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정해진 내용에 관한 숙련된 서비스를 상시적으로 제공하는 것에서 자존심을 찾기보다는 그것을 본인의 인격과 연결시킨다. 당연히 무례한 고객을 만나면 그 고객이 싸가지 없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본인이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쩐지 늘 자기가 이런 일 해야 하는 사람은 아닌데, 라고 생각하는 듯이 보인다는 거다.

이런 일을 피차 피하려면 서로를 인격체로 보면 된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어떤 짓을 할 때 그게 스스로한테 부끄러운 일인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해보면 된다. 아니 이게 더 어려운 이야기라 도무지 모르겠으면 남들 눈으로 판단하기에 이 행동이 교양 있는 짓일지 아닐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즉 남들이 내가 이런 짓을 하는 걸 보면 뭐라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 된다는 거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남들 눈을 의식하지도 않는 것 같다는 거다.

개인주의적인 인간 내면의 도덕률은 없고 두려워해야 하는 사회의 시선도 없다. 누구나 다 친하게 지내야만 하므로 남의 이목 신경 쓰던 농경-씨족 사회에서는 벗어났는데 근대 사회로 진입은 못 한 것 같다는 이야기. 아 그런데 이 이야기, 삼십 년 전부터 계속 들어온 이야기인 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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