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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 리그'의 예고편은 아니다 | < 배트맨 v 슈퍼맨 >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해지는 것은 어떻게 배트맨과 슈퍼맨을 봉합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둠스데이의 등장으로 가능해지지만, 이전에 그들이 우선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선결과제가 생긴다. 증오가 함께하는 팀이 팀워크를 발휘할 리는 없으니까. 그래서 영화는 장치를 마련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은 않겠다. 각자 판단하시길 바란다. 나로선 그냥...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싶어 되레 참신한 느낌 정도였다고 말씀드리겠다.

  • 허경
  • 입력 2016.03.25 10:53
  • 수정 2017.03.26 14:12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크리스토퍼 놀란 표 배트맨 시리즈가 끝나고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우는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모두 기대 반, 걱정 반 이었다. 보고는 싶은데 이게 잘 될까? 그리고 감독이 잭 스나이더로 발표 됐다. 호불호가 갈렸다. <맨 오브 스틸>은 나쁘지 않은 영화였지만 모두의 환영을 받는 영화는 아니었다. 배트맨으로 벤 애플렉이 캐스팅 되었다. so..what? 말도 안된다는 반응도 많았다. 차라리 감독을 하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렉스 루터에 제시 아이젠버그라니. 이쯤 되니 나머지는 별로 안 중요해진 것 같았다. 영화의 크레딧을 보며 이전에 미처 몰랐던 쟁쟁한 이름들이 대거 올라가는데 깜짝 놀랐다. 제레미 아이언스부터 홀리 헌터, 다이안 레인... 그래. 앞의 캐스팅들에 눈이 팔려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 내 잘못이다. 그래도, 저건 좀 그랬다고요.

뚜껑을 열어본 < 배트맨 v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은 '<저스티스 리그>에 대한 3시간 짜리 예고편' 이라는 박한 평가를 받을 만큼 후진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물론 이런저런 영화들을 통해 히어로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은 다른 장르의 영화보다 더 엄격하다. 특히,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트맨이 나왔던 전작 <다크 나이트>는 히어로 영화를 현실 세계로 끌어당긴 주범으로, 이 영화를 기점으로 다른 차원이 열렸다고 해도 될 만큼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폭이 넓었다. 이 부담을 영화는 어떻게 돌파하고 있을까? 아니, 돌파를 하긴 했을까? 궁금하지요?

1. 캐릭터들

< 배트맨 v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전작의 캐릭터들과 다른 듯하다. 이번에 벤 애플렉으로 교체된 배트맨은 덩치도 커지고 조금 더 스스로에 파묻힌 캐릭터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놀란의 3부작 이후 몇 년이 지나 더 늙은 브루스 웨인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갈 법도 하다. <다크 나이트>에 등장했던 소품이 등장해 같은 인물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코믹스의 팬들은 이 설정을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말하며, 실제로 배트맨과 슈퍼맨의 격투 장면은 원작의 장면을 상당부분 흡사하게 재현하고 있다. 물론 다른 부분이 더 많다. 일단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우는 이유가 그러하며, 이들의 대립이 해소되는 사건도 그렇다. 당연하다. 이건 <다크 나이트 리턴즈>가 아니니까. 제레미 아이언스가 맡은 알프레드는 전작의 마이클 케인의 알프레드와 루시우스 폭스를 섞은 것 같은 캐릭터로 재조정 되었고,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렉스 루터의 캐릭터다. 다른 무엇보다... 머리카락이 있다. 그것도 길다. <슈퍼맨>영화와 만화를 통틀어서 렉스 루터가 머리가 있었던 적이 있던가? 그는 언제나 악마인 듯 인류의 보루인 듯 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귀족 같은 아우라를 풍기는 악역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타니즘에 빠진 틴에이저 마냥 들뜬 듯 분노에 떠는 캐릭터가 되었다. 내 생각엔 오히려 렉스 루터에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시 아이젠버그의 연기는 충분히 납득될 정도로 괜찮기 때문이다. 혹자는 '렉스 루터가 조커 흉내를 낸다'며 비아냥대기도 하는 모양인데, 그런 말까지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말을 한 사람에게 이제 그만 방에 몇 개씩 걸어놓은 조커 포스터는 하나쯤 떼도 좋지 않겠냐고 묻고 싶은 기분이다.

앞으로 펼쳐질 '저스티스 리그'를 위해 잠깐씩만 등장하는 캐릭터들이야 그렇다 쳐도, 전투에 직접 관여하는 원더우먼의 지분이 너무 작아 아쉽다. 물론 거대한 세 캐릭터를 균형 있게 다루고 거기에 둠스데이라는 괴물까지 등장시키느라 힘에 부치는 건 알겠다. 그러나 막판에 아마조나스 전투복을 입고 싸우지 않았으면 그냥 '응 쟤 캣우먼이야' 해도 믿을 법하게 그려놓은 건 좀 아쉬웠다. 그녀가 전투에 참여하기 전에 영화에서 하는 건 '이동' 뿐이다. 물론 갤 가돗은 이쁘다.

2. 이야기 : 지구를 지켜라!

앞서 말했던 <다크 나이트 리턴즈> 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어둡고 진지하다. 이 이야기는 세 사람의 동일한 목적으로 싸우게 되는 이야기다. 지구에 위기가 닥쳐오면 홀로 싸이코 박사의 피조물이든 외계의 파워맨이든 하여간 혈혈단신으로 맞서 싸우는 슈퍼맨. 이로 인해 부득이 발생하는 민간인의 대량 피해를 보고 분노하는 배트맨 그리고 신이라 불리는 슈퍼맨을 제거하기 위해 배트맨을 이용할 계획을 세우는 렉스 루터. 이들이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싸움의 원인은 지구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제거해야 하는 상황.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해지는 것은 어떻게 배트맨과 슈퍼맨을 봉합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둠스데이의 등장으로 가능해지지만, 이전에 그들이 우선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선결과제가 생긴다. 증오가 함께하는 팀이 팀워크를 발휘할 리는 없으니까. 그래서 영화는 장치를 마련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은 않겠다. 각자 판단하시길 바란다. 나로선 그냥... 아 이럴 수도 있구나 싶어 되레 참신한 느낌 정도였다고 말씀드리겠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나게 되는 둠스데이는 DC의 간판 히어로 둘이 상대 해야하는 만큼 화끈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면이나 읍 단위가 아닌 거의 군 단위로 박살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아 그래. 히어로 영화에는 이런 맛도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든다. 둠스데이를 상대하면서 그간 쌓아온 반목이 우정으로 변하는 모습에서는 일정 정도의 낭만도 느껴진다. 이쯤에서, 앞으로 저스티스 리그가 지향하는 모습이 어떨지가 대충 그려진다. 이들은, 쿨내와 힙내 진동하는 MCU에 대해, 중후한 맛을 내세우기로 작정한 것이다.

3. 결론

내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영화를 평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영화가 <맨 오브 스틸>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시작하고 5분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웨인 파이낸스' 건물이 박살난다. 나는 여기서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자. 이제부터 2시간 35분간 박살내겠구나.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오히려 액션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으며, 캐릭터에 대한 충분한 설명 그리고 이들이 싸워야 하는 이유에 대한 명확한 묘사 그리고 말이 되는 스펙터클을 위한 노력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모두 성공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모두의 평가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적지 않은 부분에서 의도한 바를 전달하는데 성공시키고 있고, 지나치게 산만해질 수 있는 영화를 적당한 수준에서 잘 끊어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올 영화들에 대한 노선 또한 이 정도면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중후한 맛의 우주 스케일 스펙터클! 완성도에 대해서는 아쉬운 면이 분명히 있지만, 오랜만에 묵직한 낭만을 가진 형들이 날아온 것에 대해서는 환영한다. 이런 것도 있어야지.

2017년, 2019년에 개봉 예정으로 잡혀있는 <저스티스 리그> 역시 잭 스나이더가 연출을 맡을 것이라고 한다. 제발 더 잘해주길 바란다. 세상의 히어로 영화 전부를 마블이 만드는 꼴(MCU가 좋고 싫고를 떠나서)은 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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