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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께, 마지막 냉전현장 한반도에도 봄을

대통령께서 쿠바 연설에서 밝혔듯이 "냉전을 위해 고안된 고립정책은 21세기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금수 등 경제제재는 제재대상국의 "국민을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해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외부의 제재가 제재대상국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온 예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제재는 독재자들이 외부의 적을 핑계로 내부 불만을 억누르고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 핑계로 활용돼 왔습니다. 3대세습이나 인권유린 논란 등 북한이 갖고 있는 많은 문제 또한 제재로 인한 국제적 고립에서 비롯된 측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 권태선
  • 입력 2016.03.25 06:25
  • 수정 2017.03.26 14:12
ⓒASSOCIATED PRESS

존경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님,

당신의 역사적인 쿠바 방문 소식을 접하고 이 글을 씁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거의 한 세기 가까이 적대하고 반목해온 쿠바를 방문해 쿠바인들에게 직접 평화의 인사(el saludo de paz)를 건네는 장면이 감동스러운 만큼 냉전의 최후의 보루로 남아있는 한반도의 현실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바나 대극장을 가득 메운 쿠바인들에게 "냉전의 마지막 잔재를 묻고 우정의 손길을 내밀기 위해" 왔다고 밝혔을 때, 대극장은 환호의 물결로 덮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쿠바 방문은 냉전의 잔재를 청산하는 중요한 발걸음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와 동북아에서는 아직 냉전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반도 남과 북의 주민들은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냉전이 열전으로 비화할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그 열전은 핵전쟁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북한도 쿠바처럼 머지않은 장래에 미국과 화해하고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당신이 평양에서 우리의 북한 동포들에게 "냉전의 마지막 잔재를 묻고 우정의 손길을 내밀기 위해" 왔다고 밝히는 모습을 보는 일은 불가능한 일일까요? 한반도 남과 북의 주민 모두에게 핵전쟁을 비롯한 상시적인 안보불안에서 벗어나 상생과 평화의 길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전세계가 금융위기에 휘청이는 가운데 '담대한 희망'을 내세운 당신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됐을 때, 많은 사람들은 당신이 좀 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새 시대를 가져오리라 기대했습니다. 당신은 2009년 취임사에서 "갈등을 조장하고 자국의 사회적 병폐를 서구 국가의 탓으로만 돌리려는 전세계 지도자들"은 그릇된 역사 속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움켜쥔 주먹을 펼 용의가 있다면 우리는 손을 내밀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그런 기대에 부응했었지요. 그리고 그해 6월에는 카이로를 방문해 "의심과 불화의 악순환을 끝내고 모든 형태의 폭력적인 극단주의에 맞서 함께 싸우자"며 "미국과 무슬림의 새로운 시작"을 제안했습니다.

오랫동안 갈등해온 무슬림들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면서 한반도의 주민들은 북한에도 그런 평화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했습니다. 미국이 무슬림에게 손을 내밀었듯이 북한에 손을 내밀어 두 나라가 화해에 이를 수 있다면, 남북한 주민 모두가 적어도 항상적인 안보 불안에선 벗어날 수 있을 터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북미 사이의 대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후순위로 미뤄졌지요.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의 미국의 대 북한 정책은 북미관계에서도, 남북관계에서도 아무런 긍정적 발전은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북한은 4차례 핵실험을 했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도 개발했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국제사회는 제재 수위를 높여갔고, 그에 따라 한반도의 긴장은 고조되기만 했습니다. 올 1월 4차 핵실험 이후에는 남한 정부는 그나마 존재했던 대화의 문인 개성공단을 폐쇄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량살상무기와 관련이 없는 북한의 교역에까지도 심각한 제약을 가하는 제재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미국은 그보다도 더 강한 독자제재안도 실행에 옮겼고, 한반도 주변에선 전례 없이 강력한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제재와 한미군사훈련에 직면한 북한은 핵개발을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핵 능력을 계속 키워나가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미사일 발사 등으로 무력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오고 있지만, 한반도의 주민들은 안보 불안 때문에 그 봄을 느끼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이 안보불안은 전적으로 '호전적인 북한정권의 그릇된 망상' 탓이기만 할까요? 오준 유엔 주재 한국대사가 북한 제재결의안을 채택하는 안보리 회의에서 북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이런 무기들이 왜 필요한가. 당신들은 미국이 위협한다고 말한다. 왜 미국이 당신들을 위협하는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대국이 태평양 너머 작은 나라를 왜 위협하겠는가? 위협은 없다. 그것은 단지 여러분의 상상력이 만든 것이다"라고.

저도 오 대사의 의견이 맞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세계의 역사는 오 대사의 의견과는 다른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굳이 그런 사실을 이 자리에서 열거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북한에게는 미국이 자국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느낄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미국과 남한, 그리고 중국과 북한은 아직도 형식적으로는 전쟁상태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53년에 체결한 정전협정은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의 유엔군과 남한이 북한과 중국에 맞서 싸웠던 한국전쟁을 일단 멈추게 했을 뿐입니다. 북한 같은 작은 나라가 미국과 같은 세계 최강국과 전쟁상태를 완전히 종식하는 평화협정을 타결하지 못한 채 60년 이상 불안정한 휴전상태에 놓여있는데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물론 그들이 움켜쥔 손을 펼 용의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핵무기 개발 등으로 더욱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데, 어떻게 미국이 먼저 손을 내밀 수 있겠는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북한은 주먹을 펴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표명했고, 지금도 표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한미 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하자거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협상을 요구하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북한의 평화협정 요구에 미국은 핵 폐기부터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협상 당사자도 자신들의 유일한 협상 지렛대를 먼저 포기하고 대화에 나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북한의 핵문제와 평화협정을 동시에 논의하자는 중국의 주장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까닭입니다.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지금 채택한 강경한 제재를 통해 북한이 스스로 무릎을 꿇게 할 수 있을 듯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대통령께서 쿠바 연설에서 밝혔듯이 "냉전을 위해 고안된 고립정책은 21세기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금수 등 경제제재는 제재대상국의 "국민을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해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외부의 제재가 제재대상국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온 예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제재는 독재자들이 외부의 적을 핑계로 내부 불만을 억누르고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 핑계로 활용돼 왔습니다. 3대세습이나 인권유린 논란 등 북한이 갖고 있는 많은 문제 또한 제재로 인한 국제적 고립에서 비롯된 측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 주민들이 오늘날까지 독재의 고통에서 신음하는 현실에 미국의 책임도 없지 않은 것입니다. 북한이 "갈등을 조장하고 자국의 사회적 병폐를 미국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이 움켜쥔 손을 펴려고 하는 북한을 외면하고 구석으로 밀어붙인 것 역시 사실입니다. 물론 6자회담 등 대화의 장에서 북한이 신뢰를 저버렸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뢰를 저버린 것은 북한만이 아닙니다. 미국의 정권교체 때마다 대북 정책이 바뀌면서 미국 역시 약속을 못 지킨 경우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께서 쿠바에서 말했듯이, 오랜 적대관계에 있던 나라에서 신뢰를 형성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께서는 이란과 쿠바에서 그 어려운 일을 결국에는 해내고 말았습니다. 대통령의 의지와 관심이 있다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냉전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기대하는 까닭입니다.

평화협정 체결 등 북미관계 개선은 미국의 중요한 정책목표인 핵확산저지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서울의 거리는 핵무장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로 뒤덮였습니다. 북한 핵에 맞서 우리도 핵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반 시민에서부터 주요 언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퍼져 있습니다. 한국만이 아닙니다. 일본에서도 북한을 빌미로 핵무장론이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이나 일본 정부가 미국 등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핵무장을 하기는 쉽지 않겠지요. 하지만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재래식 전력 강화에 나서고, 북한이 이에 맞서 핵능력을 제고를 비롯한 군사력 강화에 나서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있습니다.

전쟁불사니 핵무장이니 하는 말들이 어지럽게 난무하며 군사비가 나날이 늘어나는 오늘의 상황을 견디는 남쪽 주민들 가운데는 미국이 북한의 핵 위기를 일부러 방치하면서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북한이 핵 위협이 고조되면 될수록,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군비증강론자들이 힘을 얻고 그 결과는 미국의 군수산업의 이익으로 돌아간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미국 국무부가 발행한 2015년 세계군사비 및 무기거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전세계 무기거래의 78%를 차지하고 있고 무기 거래에서 거두는 흑자규모는 1000억 달러에 육박해 미국의 무역적자의 15%를 메울 수 있는 정도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의 군수산업의 주요 고객인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오바마 대통령님.

저는 대통령께서 이런 얄팍한 이해관계를 고려해 북핵문제를 방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대통령께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발을 빼고 미국 국방비를 계속 줄여왔습니다. 또 그동안 반목해왔던 이란, 쿠바 등과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취임 초의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그러기에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제 남은 임기 동안 한반도로 눈을 돌려, 마지막 남은 냉전의 현장에도 진정한 봄이 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십시오. 한반도에서 '지금의 화급한 필요'는 평화입니다.

한반도 남과 북의 주민들은 이미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일본 식민지의 고통을 겪고도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에 따라 침략국인 일본을 대신해 분단되었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으며, 이제는 핵전쟁의 위험까지 머리에 이고 살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선 미국과 쿠바의 단절된 관계로 인해 쿠바와 미국에 이산돼 살고 있던 쿠바인들의 고통에 공감을 표했습니다. 남북한에는 100만명에 육박하는 이산가족들이 만날 기약도 없이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고통을 끝낼 일차적인 책임은 한반도의 남과 북 정치 지도자와 우리 주민들에게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대통령께서 도 한반도에 평화의 길을 냄으로써 냉전 시대를 완전히 종식시키고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온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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