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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25일 07시 03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26일 14시 12분 KST

'채용사기'로 끝난 청년 비례대표 선정

청년 비례대표 논란의 모습은 마치 취업시장에 나선 청년들의 현실과 마찬가지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의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은 "국회가 청년 일자리 구해주는 곳이냐"며 도전에 나선 모든 청년들을 모욕했다. 기존 정치 시스템은 새로운 세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두지 않는다. 문은 더 좁게, 벽은 더 높게 만들어 내부자의 기득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제1야당의 고용주들은 적격자가 없다는 한마디 이유로 '채용' 자체를 손쉽게 거부해버렸다. 접수 비용을 한 사람에 100만 원씩이나 받아챙긴 '채용사기'가 벌어진 것이다.

연합뉴스

20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등록이 시작되었다. 각 당은 온갖 촌극을 연출한 끝에 비례대표 공천을 마쳤다. 전반적인 막장 드라마 속에 취약한 부분이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딱 4년 전 오디션 프로그램을 닮은 공개경쟁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청년 비례대표' 제도는 이번 공천과정을 통해 사실상 폐기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성 후보에게 홀수 순위를 배정하도록 하는 공직선거법까지 위반하며 청년 비례대표를 안정적인 당선권 바깥으로 모두 밀어냈다. 그 와중에 새누리당은 '청년을 위한' 노동개혁의 선봉에 섰던 청년단체 대표를 행운의 7번에 배정했다.

청년 비례대표 논란의 모습은 마치 취업시장에 나선 청년들의 현실과 마찬가지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의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은 "국회가 청년 일자리 구해주는 곳이냐"며 도전에 나선 모든 청년들을 모욕했다. 기존 정치 시스템은 새로운 세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두지 않는다. 문은 더 좁게, 벽은 더 높게 만들어 내부자의 기득권을 지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정당의 면접관들은 '세대교체'를 원하지 않는다. 고작 청년들에게 '비례대표 채용'의 예비번호를 주고는, 오히려 준비가 너무 부족하다며 힐난한다. 현재 한국사회의 고용 시스템이 가진 핵심 문제와 똑같다. 청년을 위한다는 말은 명분을 위한 수사일 뿐이다.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사진 오른쪽) 도전에 나선 모든 청년들을 모욕했다.

기본적인 문제를 먼저 짚고 가자. 그렇다면 청년 몫의 비례대표 후보가 되려는 자가 마땅히 갖춰야 할 역량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이번 선거 들어 유독 눈에 띄는 '청년후보'가 무엇을 의미해야 하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그것은 생물학적인 나이가 25세 이상 40세 이하인 젊은 출마자인가 아니면 세대교체의 기치를 내건 차세대 정치인인가? '스스로 청년인 후보'인가 아니면 '청년이 지지하는 후보'인가?

제도적으로는 '나이'라는 간편한 자격조건 정도만을 두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표성' 혹은 '상징성'이다. 결국,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청년후보'란 청년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후보여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몇 가지 요건을 필요로 한다. 우선 청년의 고유한 집단적 이해관계가 먼저 형성되어야 하고, 다음으로 그것이 모이는 결사체가 있고, 마지막으로 조직된 요구와 후보 사이에 정치적 통로(political channelment)가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청년 당사자의 대중적 움직임에 기초를 두지 않으면, '청년후보'도 존재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정치의 내용이다. 이러한 원리는 노동자 후보나 여성 후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금은 야속한 평가겠지만, 그런 점에서 나는 이번 사태의 피해자가 된 예비후보들이 아직 명실상부 '청년후보'로 거듭나진 못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스로 정치인이 되겠다는 뜻을 품고 조심스럽게 출발선에 섰던 것이다. 실제로 일을 해야만 숙련도 가능한 것처럼, 정치적 대표성을 높이는 것은 청년을 대표하겠다고 나선 그들이 앞으로 제도정치의 장에서 성장하며 직접 풀어나갈 과제다. 소위 '포텐셜'이란 그 과정에서 터지는 것이다. 그러나 제1야당의 고용주들은 적격자가 없다는 한마디 이유로 '채용' 자체를 손쉽게 거부해버렸다. 접수 비용을 한 사람에 100만 원씩이나 받아챙긴 '채용사기'가 벌어진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홍창선 위원장으로 상징되는 기성 정치권이 생각하는 '정치인 될 준비'가 과연 무엇이냐는 점이다. 아마도 그것은 여의도 정치의 불합리·불공정·부정의에 순응할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정치가 출발해야 할 보통 사람들의 삶에 뿌리내리기 보다는 힘 센 자의 동아줄을 잡을 줄 아는 기술 같은 것 말이다. 이는 한국의 기업들이 성장 가능성이나 자질보다는 헬조선의 조직문화에 잘 길들여질 수 있는 청년을 원하는 것과 꼭 닮아 있다.

청년들이 왜 투표하지 않느냐고? 유권자인 우리에게 묻지 마시라. 그 질문은 '정치'에게 그대로 되돌려주겠다. 아직도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이번 선거에서도 청년이 투표에 더 참여할 일은 없을 것이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의 '청년노동칼럼'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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