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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시장님, 4월 13일에 MT 가는 'H대학 ㅊ학과'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총 20개 대학, 31개 학과의 'H대학 ㅊ학과'가 존재한다. '비판을 하려면 기본적 사실을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재명 시장의 말대로, 기본적 사실을 점검했다. 조사 방법은 간단했다. 3월 22~24일, 총 3일에 걸쳐 해당 학과 재학생에게 직접 사실 확인을 요청하거나, 학교 행정실 또는 학생지원팀에 문의했다. 단과대학 사무실이나 해당 학과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도 했으며, 해당 학과의 조교나 교수에게 직접 문의한 경우도 있다 결과는 어땠을까?

  • 권순민
  • 입력 2016.03.24 14:03
  • 수정 2017.03.25 14:12

여기, 질문이 하나 있다. "전국에 'H대학교 ㅊ학과'는 총 몇 개가 있을까?"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질문 하나가 있다. "우리는 왜 저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을까?"

지난 18일, 이재명 성남시장의 페이스북에 <한심한 대학생에 한심한 지도교수, 그리고 한심한 대학>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재명 시장이 "들은 바"에 따르면 "상당수 대학생들"이 이번 4.13 총선 투표일 당일에 MT에 간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이재명 시장은 본인이 "들은 바"를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청년의 정치무관심이 오늘날 청년문제가 심각해진 원인 중 하나'라며 "황당한 반시민적 행태", "한심한 대학생"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이 글은 3월 23일 현재, 8000개에 가까운 좋아요를 받고 1200여 회의 공유하기가 이뤄진 상태다.

이재명 시장 페이스북 캡쳐

이 글이 게시된 뒤 몇몇 "한심한 대학생"들이 이재명 시장에게 반론을 제기했다. 4월 13일은 수요일로 평일일 뿐 아니라 4월 중하순에 치러지는 중간고사 기간 직전이며, 이는 보통 주말을 끼고 시험 기간을 피해 잡게 되는 통상적인 MT 일정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설령 이날 MT를 떠나는 대학이 있다고 한들, 이재명 시장이 이를 함부로 한심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 '한심한 대학생'이 이재명 시장님께 쓰는 편지)

이러한 비판에 침묵을 지키던 이재명 시장은 21일 트위터를 통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재명 시장의 반박은 꽤나 단순했다. 실제로 선거일에 MT 가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으며, 그중 하나가 바로 'H대학 ㅊ학과'라는 것이다. 심지어 '비판을 하려면 기본적 사실을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재명 시장 트위터 캡쳐

정말 4월 13일에 MT를 가는 H대학의 ㅊ학과가 있을까?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379개의 대학(전체 424개 대학 중 학부과정 없이 대학원 과정만 있는 45개 대학원대학 제외)이 존재한다. 그 중 H대학이라고 호명될 수 있는 대학, 즉 ㅎ을 첫 글자의 초성으로 가지는 대학은 총 59개이다. 59개 H대학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ㅊ학과라고 호명될 수 있는 과의 유무를 조사한 결과는 아래와 같다.

우리나라에는 총 20개 대학, 31개 학과의 'H대학 ㅊ학과'가 존재한다. (한국폴리텍대학에 출판편집디자인전공이 있으나 직업훈련 과정이므로 제외) '비판을 하려면 기본적 사실을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재명 시장의 말대로, 기본적 사실을 점검했다. 조사 방법은 간단했다. 3월 22~24일, 총 3일에 걸쳐 해당 학과 재학생에게 직접 사실 확인을 요청하거나(한양대 체육학과), 학교 행정실 또는 학생지원팀에 문의(한영대학 치위생과, 한림성심대학교 치위생과)했다. 단과대학 사무실(한국교통대학의 철도대학에 속한 5개 학과)이나 해당 학과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그 외 20개 학과)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도 했으며, 해당 학과의 조교(한국외대의 2개 학과)나 교수(한서대학교 치위생학과)에게 직접 문의한 경우도 있다

4월 13일에 MT 가는 'H대학 ㅊ학과'는 없다.

결과는 어땠을까? 20개 대학, 31개 학과 모두로부터 "우리 학과는 4월 13일에 MT를 떠나지 않는다" 또는 "현재 MT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재명 성남시장은 대체 무엇을 근거로 H대학 ㅊ학과가 4월 13일에 MT를 간다고 말한 것일까? 필자는 한 가지 흥미로운 가설을 제보 받았다. 인터넷 검색창에 '4월 13일 MT'를 검색할 경우 한신대학교 특수'체육'학과가 지난 2013년 4월 13일에 MT를 다녀온 결과가 검색된다는 것이다. 2016년 4월 13일에 MT를 떠나는 H대학 ㅊ학과가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은 이상, 이 가설의 타당성을 쉽게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성남시청 시장비서실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서실 관계자는 "실제로 4월 13일에 MT를 가더라도, 이를 사실대로 답변할 경우 사회적 물의가 될 수 있으니 답변을 피하는 것이 아니겠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H대학 ㅊ학과'의 실제 사례를 알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트위터는 이재명 시장님 본인이 직접 관리하시기 때문에 시장님께 직접 여쭤봐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을 주체로 인식하는 정치인 이재명을 기대한다

분명, 비서실 관계자의 말처럼 '사회적인 물의'를 우려해 사실과 다른 답변을 내놓았을 수도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기자의 질문 자체를 굉장히 생소해했다. 이 시장의 발언을 의식했다면 나올 수 없는 반응이다.) 이러한 '합리적인 의심'의 태도는 분명 민주사회에서 꼭 필요한 태도이다. 올바른 대화와 토론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역으로 이재명 시장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들은 바'에 따라 '상당수 대학생들'을 투표일 당일에 MT에 가는 '한심한 대학생'으로 묘사한 이재명 시장은 '합리적인 의심'의 과정을 거쳤는가?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는 '20대/대학생 개새끼론'이 횡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SNS를 강타했던 "프랑스 대학생 투표율은 약 83%인데 우리나라 대학생 투표율은 36%"라는 주장이다. 이는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많은 논리적 허점을 가진 주장이다. (참고 : "투표 좀 해" '꼰대질'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이재명 성남시장은 약 12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영향력 있는 페이스북 유저이자, 100만 성남시의 행정수장이다. 그는 그의 페이스북에 '들은 바로', '상당수 대학생이 투표일에 MT를 가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라는 말을 남기기 전에 그가 들은 이야기가 '20대/대학생 개새끼론'에 오염된 왜곡된 사실이 아닌지에 대한 합리적 의심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트위터에 'H대학 ㅊ학과가 그렇다'는 이야기를 남기기 전에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의 비서실 관계자와는 다르게 이 과정을 과감히 생략했기에, 필자를 포함한 '한심한 대학생들'의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매력적인 정치가이자 뛰어난 행정가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청년의 측면에서도 중앙정부와 보수 언론과 꾸준히 싸워가며 청년배당을 실시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학생관이 왜곡된 사실관계에 근거하여 대학생을 '한심하다'고 매도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그는 청년/대학생층의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청년/대학생이 원하는 정치인은 자신들을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 바라보는 정치인이지 청년배당을 실시하지만 자신들을 무시하는 정치인은 아닐 테니 말이다.

이제 <한심한 대학생론>과 관련해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남은 길은 단 한 가지뿐이다. 자신이 확실하지 않은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대학생들을 성급하게 한심하다고 매도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앞으로 청년/대학생의 삶에 더욱 관심을 가지며 더 좋은 정책으로 보답하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멋진 정치인이자 행정가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 본문 내용 중 <총 18개 대학, 28개 학과>를 <총 20개 대학, 31개 학과>로 수정하고, 표 내용 중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업데이트 : 3월 28일 21시 40분)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이재명 시장이 말한 'H대 ㅊ학과', 검증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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