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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25일 11시 17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26일 14시 12분 KST

내게 필리버스터의 기회가 생긴다면?

나에게 갑자기 몇 시간 동안 교사로서의 의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특수교육이란 무엇인가? 수학을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루하루의 수업과 1분, 2분의 상담들을 기분 좋게 고민하며 출근하던 새내기 적의 모습이 아련하게 느껴지면서 뭔가 허탈한 반성들이 밀려왔다. 직업이 수단으로, 도구로 느껴지는 순간 그 크고 숭고한 보람은 찾아오지도 않을 것이고 인생의 절반은 억지 섞인 인내와 고통이 시간이 될 것이다.

연합뉴스

한 동료교사가 나의 수업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교육방식에 대한 질책에 가까운 항의였다.

난 평소 나름의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지적에 대처하는 나의 모습은 허둥지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억울하고 기분 상함이 모두 드러나는 높아진 톤과 떨리는 목소리는 우왕좌왕하는 나를 더 궁지로만 몰아가는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도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고 침착함을 찾는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반성과 고민의 시간을 가지던 중 얼마 전의 필리버스터가 생각났다.

갑작스런 비상의 상황 속에서 의원들은 절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스스로의 고민과 의견을 소신 있고 조리 있게 말하고 있었다.

강한 설득력이 있었지만 목소리는 잔잔했고 긴 시간이었지만 장황하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어느 정도 자료가 동반되었다고는 하지만 평소의 깊은 생각과 고민이 없이는 이뤄낼 수 없을 것 같은 존경의 마음 속에 정치에 대한 불신도 조금은 걷어냈던 것 같다.

나에게 갑자기 몇 시간 동안 교사로서의 의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특수교육이란 무엇인가? 수학을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마음으로 출근하고 어떤 목표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한다면 나의 스피치는 어떤 대답을 하고 있을까?

다른 당의 의원들이 이런저런 모습으로 방해하던 것처럼 나를 향해서도 다양한 반론들이 몰려온다면 어떠한 굳건함으로 의지를 밝힐 수 있을까?

어찌어찌 순간들을 모면해 갈 수는 있겠지만 감동과 믿음을 주는 연단 위의 멋진 연사는 아닐 것 같았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난 하루의 절반을 학교에서 지낸다. 인생으로 보더라도 직장에서의 시간은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교사가 되기 위한 노력의 시간들 그리고 꿈꿔왔던 비전들을 되돌아보면 그것은 시간의 크기보다 몇 배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학교 내에서의 나의 많은 행동들과 생각들이 습관적으로 바뀌어 있는 듯했다.

로켓의 추진력을 잃은 인공위성들이 같은 궤도를 뱅뱅 돌 듯 내 모습도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 같아진 것 같았다.

하루하루의 수업과 1분, 2분의 상담들을 기분 좋게 고민하며 출근하던 새내기 적의 모습이 아련하게 느껴지면서 뭔가 허탈한 반성들이 밀려왔다.

얼마 전 정년퇴임을 맞으신 선생님께서는 퇴임하는 그날까지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이 가장 설레고 즐거우셨다는 말씀을 남겨주셨다.

추억에 잠기시며 지어보이시던 소녀 같은 미소와 진심의 아쉬움을 감추시려던 먹먹한 울음 속에서 학교와 아이들을 사랑한 거목의 단단함이 느껴졌었다.

직업이 수단으로, 도구로 느껴지는 순간 그 크고 숭고한 보람은 찾아오지도 않을 것이고 인생의 절반은 억지 섞인 인내와 고통이 시간이 될 것이다.

난 아직 충분히 젊다. 내게 찾아온 오늘의 충격과 부끄러움의 시간은 앞으로의 멋진 시간들을 위한 감사한 반성의 기회일 것이다.

좀 더 의미 있는 순간들, 촉수를 세운 느낌들로 한걸음 한걸음의 시간들이 채워지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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