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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위치에서 반드시 이동하라, 단 1%의 힘으로

다른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우리 사회에서 말의 자리 또한 안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를 맴돌며 죽음을 모독하는 숱한 망언처럼,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비웃듯 바닥을 드러내며 뒤집힌 채 선내방송은 아직도 되풀이된다. 아이들이 철이 없어 위험을 감지 못했다는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의 어느 해경의 말로, 생각하는 습관이 없어서 사고를 당했다는 어느 교수의 말로, 정말 가만히 있었네,라며 거듭 되돌아오고 있다.

  • 황정아
  • 입력 2016.03.24 11:12
  • 수정 2017.03.25 14:12
ⓒ연합뉴스

세월호참사 2주기를 앞두고 지난 금요일(18일) 세교연구소가 <할 수 있는 말, 해야 할 말: 세월호 시대의 문학 2>라는 제목으로 공개 포럼을 개최했다. 지난해 4월에 있었던 공개 심포지엄 <세월호 시대의 문학>에 이어진 행사였다. 유가족들, 그리고 그들과 행동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온갖 아픔과 난관과 심지어 모욕을 견디며 '할 수 있는 말과 해야 할 말'의 자리를 마련하고 지키는 동안, 침묵한다는 의식조차 못한 채 참사 500일, 600일, 700일을 지나쳐 보냈던 건 아닌지 묻고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무슨 말을 보탤 수 있을지 주저하는 동안에도 그 말의 자리에서 발신되는 이야기를 언제까지나 들어야 하고 또 들을 수 있음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세월호 이후, 유가족들이 지켜온 말의 자리

1부 발표와 토론, 2부 낭독과 대화로 이루어진 이 행사에서 첫 발표를 맡은 미류(인권운동사랑방, 416연대 활동가)씨는 사고가 참사로 변한 그 시간 이래 특히 유가족들이 어떤 슬픔과 분노와 결의로 길을 만들어왔으며, 세월호의 진실과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한 기억과 행동이 어떻게 그치지 않고 이루어져왔는지를 전해주었다. 더 큰 권력을 가진 이들이 현장에서 멀다는 이유로 책임을 모면할 때, 그럼으로써 현장의 범위를 있는 대로 축소하고 책임의 의미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 때, 우리가 무엇의 이름으로 그에 맞설지 생각해보자고도 했다. 세월호 이후 문학이 감당할 몫에 관해 발표한 양경언 문학평론가는 말로 다 할 수 없음을 견디는 것도 문학의 일이지만 무능을 고백하며 자폐하는 것으로 그런 견딤이 수행될 리 없음을 일러주었다. 그리고 어떻게 들어야 다시 전할 수 있는가를 고민한 문학의 이야기들을 찾아내어 보여주었다.

많은 이들의 기억에 세월호는 할 수 없어야 했던 말, 하지 말았어야 했던 말과 함께 새겨져 있다. '가만히 있으라.' 그날 세월호를 울리며 몇번이고 반복된 선내방송에서는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라,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면 위험하다, 현재 위치에서 안전하게 기다리라,는 말들이 "1시간여 동안 그렇게 많이, 그렇게 집요하게 되풀이"되었다고 한다(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이 펴낸 『세월호, 그날의 기록』의 주요내용을 소개한 『한겨레21』 2016년 3월 18일자 기사 참조). 안전과 위험의 위치를 완전히 뒤바꾼 이 말들의 납득할 수 없는 반복과 집요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부터 반드시 밝혀야 할 진실에 속한다.

'가만히 있으라.' 죽음을 불러들인 이 미쳐버린 말을 맨정신으로 견디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애써 아이러니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 반어(反語)의 효과에 기대어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고 되새기곤 했다. 하지만 다른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우리 사회에서 말의 자리 또한 안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를 맴돌며 죽음을 모독하는 숱한 망언처럼,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비웃듯 바닥을 드러내며 뒤집힌 채 선내방송은 아직도 되풀이된다. 아이들이 철이 없어 위험을 감지 못했다는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의 어느 해경의 말로, 생각하는 습관이 없어서 사고를 당했다는 어느 교수의 말로, 정말 가만히 있었네,라며 거듭 되돌아오고 있다.

현재 위치는 절대적으로 안전하지 않다

금요일의 포럼에서 미류씨는 그날 세월호에서 내리지 못한 이들이 어떻게 가만히 있지 않았는지를 일깨워주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기울어진 배에서 '현재 위치'에 있으려면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으며, 가만히 있기 위해서라도 얼마나 버텨야 했겠는가. 물리적인 면으로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무슨 생각이라고는 담기지 않은 방송을 들으며 그들은 이동하는 것이 배 전체에 영향을 주지 않을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기에 서로를 북돋우며 버틴 것이다.

참사 700일이 되던 지난 3월 15일 416가족협의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2주기를 맞는 4월 16일까지의 기간을 '추모의 달'로 제안하고, "시민 여러분들이 1%의 힘만 보태준다면 잘못된 국가 시스템이 바뀔 것"이라 호소했다. 이분들은 지금 우리에게 급속히 기울어지는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를 다시 한번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현재 위치는 절대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참고 버티며 산다는 것도 깨닫고 있다. 전심전력도 아니고 고작 1%의 힘을 떼어내는 일이 그보다 어려울 리는 없어 보인다. 조금 더 귀 기울여 듣고 조금 더 자주 이야기하고 조금 더 오래 지켜보는 일에 지나지 않더라도, 현재 위치에서 반드시 이동할 것, 단 1%의 힘으로.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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