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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추락

현재와 같은 선거문화와 정당구조하에서는 투표독려운동도 공허하게 들린다. 과연 어디에 현실을 바꿀 뚜렷한 정치적 선택지가 있는가? 지금은 어느 당을 응징하고 어느 당을 지지해야 하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민주주의가 총체적으로 존망이 걸린 위기상황에 놓여 있음을 직시해야 할 때다.

  • 국민의제
  • 입력 2016.03.23 10:57
  • 수정 2017.03.24 14:12
ⓒ연합뉴스

글 | 이종오(전 명지대 교수)

20대 총선을 앞둔 한국민주주의의 상태는 어지럽다 못해 처참하다. 우선 여야는 헌재의 결정에 따른 선거구 재획정 문제를 놓고 법정시한을 넘겨가며 다투다가 결국은 비례대표 정수를 줄이며 지역구를 오히려 늘리는 개악을 감행한 바 있다. 이제는 후보등록 마감일을 이틀 앞둔 22일 현재까지도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주요정당은 후보공천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각한 내분상태에 빠져있다.

여당은 유승민 의원 1인의 공천여부를 두고 비상식적인 파행을 거듭하고 있으며 더민주당은 비례대표 명단작성을 두고 비대위 김종인 대표가 당무 거부를 하는 초유의 사태를 보이고 있다. 매번 총선 때마다 여야 주요정당은 공천을 두고 계파갈등과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였으나 이번 20대 총선을 두고서는 가히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주기적이고 공정한 선거 실시에 있으며 따라서 선거와 정당이란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가장 중요한 제도와 기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민주화를 성공시켰다는 자평, 타평에 불과하고 지극히 후진적인 선거와 정당문화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파행적인 현상이 민주주의 도입과정의 시행착오로 보기에는 정부수립 70년의 역사와 민주화 30년의 역사가 너무 길다는 것이다. 현재의 모습을 보건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식의 낙관론은 너무나 안이한 생각이다. 이미 국민들의 정치혐오증이 만만치 않은 수준에 이르러 이대로 가다가는 선거무용론이나 민주주의무용론이 나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다시민주주의"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국민주주의를 제도와 문화의 축면에서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 과학, 기술, 교육에서 세계 상위권이나 최상위권으로 진입하는 과정에 있는 나라가 정치문화에서는 제3세계 신생국가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시정할 것인가를 심각히 다시 성찰해야 할 때이다. 이런 문제 지적이 그간 없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안철수의 새정치 실험이 실패하고 대안정당의 출현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문제해결에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현상 중 하나가 정당의 이합집산이며 다른 하나는 공천갈등이다. 기존의 정당이 당명을 바꾸는 것은 기본이고 분당, 합당, 탈당이 당연한 절차처럼 일어난다. 다음에 현역 의원을 공천탈락 시키는 이른바 물갈이론에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여론조사, 국민경선, 안심번호 등 공천을 둘러싼 제도와 규칙이 어지럽기 짝이 없다. 현역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컷오프라는 제도를 만들었고 이 비율이 높을수록 개혁의지가 높은 것처럼 보이는데 기계적 계량화로 정치인을 평가하는 것은 무지한 짓이다. 그리고 세계 어느 선진정치에서 전화여론조사로 공천기준을 삼는 사례가 있는지도 과문의 탓인지 들어보지 못했다. 이는 IT강국 한국의 독창성의 표현인가? 무엇보다 생사를 건 공천투쟁을 이대로 두고 당내민주주의, 권위주의 타파, 선진정치가 가능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 문제는 여러 가지 원인분석과 처방이 있겠지만 우선 한국에서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과 특혜가 지나치게 과다하고 나아가서 아직도 정치권력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 대해서 결정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회구조가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는 사회전반의 민주주의 수준의 제고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당장은 권력구조와 국회법, 정당법, 선거법 등 정치관련 법규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정치권력을 규제, 감시해야 할 시민사회도 궁극의 목적이 정치권력에 참여하여 지배구조의 일원으로 입성하는 것이라면 시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시민사회는 시민사회운동의 초창기 정신으로 돌아가 탈정치지향, 탈권력화가 필요하다는 자성이 필요하다. 이는 학계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를 할 수 있겠다. 정치를 개탄하면서도 정치를 바꾸기보다는 정치권에 입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사회전반의 문화가 이런 저질의 선거문화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선거문화와 정당구조하에서는 투표독려운동도 공허하게 들린다. 과연 어디에 현실을 바꿀 뚜렷한 정치적 선택지가 있는가? 지금은 어느 당을 응징하고 어느 당을 지지해야 하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민주주의가 총체적으로 존망이 걸린 위기상황에 놓여 있음을 직시해야 할 때다.

제도를 바꾸면 소생의 가능성이 있는가, 새 사람이 나와야 하는가 혹은 다른 무엇이 정치에 희망을 줄 수 있는가를 원점에서 논의해야 할 때이다. 확실한 것은 한국민주주의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으며 이를 멈추지 못할 때 긴 어둠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한번 입신양명과 권력쟁취가 아니라 사회일반의 공공선에 봉사한다는 가치와 정신을 지닌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의 출현을 고대한다. 새로운 시민정신만이 나락에 빠진 한국민주주의와 나태한 시민사회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이종오

(전) 명지대, 계명대 교수(사회학) 역임

서울대 상대 졸, 독일 마부르크 대학 철학박사(정치사회학)

한국산업사회연구회 회장, 민교협 공동대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2003),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2006-2008)

(현) 사단법인 경제사회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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