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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책무

문제는 학문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고 소신을 지킨 교수들이 정치권이나 관계로 들어가 제대로 일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폴리페서는 평상시 학문적 업적도 보잘 것 없고, 소신이나 비전도 볼 것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이런 인물들이 국정에 참여했을 때 성공하기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렵다. 이들은 대학 졸업 후 한번도 남의 밑에 가서 돈을 벌어본 적이 없고, 조직을 관리해 본 적도 없다. 그리고 자신의 지식이 얼마나 현실에 적합한지 실험해 본 적이 없다. 이들이 한 나라의 최고위직 관직에 진출해 무언가를 이루어내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 중 요행이다.

  • 박찬운
  • 입력 2016.03.23 10:02
  • 수정 2017.03.24 14:12
ⓒGettyimage/이매진스

지식인의 책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지식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 중에서 젊은 시절 세상에 조금이라도 이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 대체로 이런 마음은 균열이 가고 자주 잊기 일쑤다. 일상은 나태로 시들고, 하지 않던 실수마저 하나둘 늘어가는 법이다, 그게 인생인 걸 어찌하리.

따지고 보면 지식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한 사회가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도 개인적으로는 행복해야 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 지식인에게 아무리 애국을 강조한다고 해서, 부부싸움을 하는 중에 (애국가가 들려온다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웃음) 또한 지식인들에게 과도한 도덕을 강조할 수도 없다. 이 다원적 세계에서 과연 무엇이 도덕인가. 도덕 운운하면서 세상사를 논할 때도 지났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포함한 이 지식인들은, 스스로의 행복만을 위해 살 수는 없다. 사회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지식인은 그게 운이든 자신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든 좋은 교육을 받았고 사회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반면 이 사회에는 상대적으로 교육도 사회적 혜택도 제대로 못 받고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이런 사회에서 지식인들에게 그 책무를 말하는 것은 그것이 공평이고, 그것이 정의이기 때문이다. 배운 만큼, 크든 작든,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지식인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지난 한 세기를 상기해 보자.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의 참화를 딛고, 혹독한 독재를 경험한 이 땅에서 지식인들은 살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양심을 지키며 살고자 한 지식인들은 세상의 존경을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적지 않은 고통을 대가로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랬기에, 평범한 의식과 일상의 나태를 견디지 못한 지식인들은ㅡ그저 공부만 했지 무슨 뚜렷한 역사관을 갖춘 지식인은 아니었다ㅡ그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무를 일부러 잊으려 했고, 자신의 안일을 위해 살았다. 순간의 이익에 탐닉했고 권력의 단맛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해방 공간에서 지식인 대부분은 일제시대 식민지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평생 출세라는 무지개를 잡기 위해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한창 공부할 때 이 조선 땅은 식민통치 아래에서 혹독한 압제가 감행되고 있었다. 그들에게 조국의 독립이나 해방, 이런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사실 관심권 밖의 일이었다. 정의롭지 않은 세상에서 그들이 배운 것은 돈 잘 벌고 권력을 잡으면, 그게 최고라는 가치관이었을 뿐이었다.

일본이 물러나고, 그 권력이 미국의 것이 되었을 때, 이들은 재빨리 미국행 배로 갈아탔다.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돌아와선 알량한 영어를 무기로 이 사회의 노른자위를 차지했다.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 의 주인공 이인국은 바로 그 시대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지식인의 초상이었다.

이들 지식인은 5. 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후에는 군부정권의 참모로 등용되어 출세길을 걸었다. 그중에서도 법대 출신의 법조인들은 권력을 유지하고 연장하는 최선봉에 섰다. 육법당이란 말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는데, 지금도 그 맥은 면면히 유지되고 있다. 경제발전이란 달콤한 최면을 위해서는 미국에서 경제학을 배운 지식인들이 동원되었는데, 그들은 통치자들에겐 더 없이 필요한 기술자들이었다.

지식인 사이에선 대학교수만한 직업도 없을 것이다. 물론 최근 들어 대학사회가 경쟁력 강화라는 구호 아래 학문 본연의 길에서 벗어나 진리추구의 사명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정부와 기업의 하청업체 수준으로 전락해 가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이 세계는 아직도 어떤 직업세계보다 다른 곳이다.

대학교수 중 이름깨나 알려진 사람들은 권력욕에 물들은, 이른바 폴리페서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물론 교수 중에서 정치권이나 관계로 진출하는 게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능력 있고 소신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고, 특히 학문 분야에 따라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개인이나 사회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과거 조선의 사대부들도 평소에는 학문을 하다가도 '출사'라는 것을 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지식인이 정치에 참여하고, 관계에 진출하는 것은 우리의 오랜 전통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학문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고 소신을 지킨 교수들이 정치권이나 관계로 들어가 제대로 일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폴리페서는 평상시 학문적 업적도 보잘 것 없고, 소신이나 비전도 볼 것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이런 인물들이 국정에 참여했을 때 성공하기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렵다.

이들은 대학 졸업 후 한번도 남의 밑에 가서 돈을 벌어본 적이 없고, 조직을 관리해 본 적도 없다. 그리고 자신의 지식이 얼마나 현실에 적합한지 실험해 본 적이 없다. 이들이 한 나라의 최고위직 관직에 진출해 무언가를 이루어내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 중 요행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많은 교수들이 이제나 저제나 푸른 기와집의 부름을 받으려는 바람을 갖고 연구실의 전화통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누구 말대로, 너무나 '문제적' 상황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지식인의 책무가 벼슬을 하고 권력의 길로 나서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지식인은 그보다 다른 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지식인의 책무를 이야기할 때마다 한 사람을 떠올린다. 미국의 현존하는 지성이자 석학인 노암 촘스키다. 80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세계 곳곳에서ㅡ요즘은 우리나라의 문제에 이르기까지ㅡ일어나는 부조리와 부정의에 대해 할 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 대부분이 미국의 책임과 관련된 문제인데도,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진실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미국이라는 자유주의 국가에서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촘스키는 지식인의 책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단호히 말한다. "지식인의 책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부연한다. "도덕적 행위자로서 지식인이 갖는 책무는 '인간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다. 지식인의 기본적 책무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말하고 글을 써야 한다. 만일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ㅡ소심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거리에 나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렇게 사람을 쉽게 비난하는 게 바로 전체주의 사회다ㅡ적어도 곡학아세는 하지 말아야 한다. 최상의 방법은 진실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고, 차선의 방법은 거짓을 말하지 않고 불의에 협력하지 않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4대강 사업을 보라.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라 망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전대미문의 사기적 국가사업이었음에도, 거기에 동원된 학자들은 입으로 그 사업의 정당성을 이야기했다. 무릇 자신을 지식인이라 생각하면 적어도 이런 일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고, 이 나라의 국민과 자연에 대한 범죄행위와 다를 바 없다.

촘스키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에게도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수년 전에 타계한 리영희 선생이다. 선생이야말로 한국의 촘스키다, 아니 그 이상이다. 그는 지식인의 현실 참여를 피하지 않았으며, 전 생애를 통해,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 인과의 대화』등 여러 문제작을 통해 냉전과 분단으로 만들어진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우상을 깨고 이성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아홉 번의 연행, 다섯 번의 기소 또는 기소유예, 세 번의 징역을 겪었다. 정권은 그를 불온한 인물로 낙인찍었으나 수많은 젊은이들은 그에게 '사상의 은사'라는 영광스런 훈장을 헌정하였다.

리영희 선생은 여러 번 지식인의 책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지식인은 언제나 우리 앞에 던져진 현실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 요구를 자신에겐 철저히 적용했다. 작가 임헌영과의 대화를 통해 저술한 마지막 저서 『대화』(2006)에서 그가 한 말을 잠깐 들어보자.

"나의 삶을 이끌어 준 근본이념은 자유와 책임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대화』, 서문

사실 대부분의 지식인은 그가 말하는 대로 살긴 힘들 것이다. 지식인은 원래 머리에 든 것이 많아 항상 계산적이다. 그 계산에 따라 이익이 되면 움직이지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움직이지 않는 게 약삭빠른 지식인의 심리다. 그렇기에 지식을 쌓되 올바른 방향성을 갖춘 지식인은 드물다. 거기에다 용기까지 갖추어 행동하는 양심이 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우리는 리영희 선생의 책을 읽을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 부끄러움은 우리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말의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사람 더 말해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정치인의 말을 내 글에 옮기는 것을 꺼려한다. 하지만 DJ의 말은 다르다. 아무리 그에 대해 반감을 갖는 사람이라도, 그가 말한 '행동하는 양심', 이것만은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말은, 그 말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의 피맺힌 음성 한 대목을 들어보자.

"여러분께 간곡히 피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독재정권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그분들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을 다해야 합니다. 자유로운 나라가 되려면 양심을 지키십시오. 진정 평화롭고 정의롭게 사는 나라가 되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입니다.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고, 벼슬하고, 이런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김대중, 2009년 6.15 남북정상회담 9주년 기념사

사실 이 말은 지식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위고하, 학식불문의 말이다. 하지만 지식인들이라면 이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독재자에게 고개 숙이고, 아부하고, 벼슬을 하는 지식인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더욱 탁해졌으니 말이다.

이제 말을 맺자. 나는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의 책무에 대해 말했다. 그 말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1. 능력을 쌓자. 그것은 단지 기술적, 기능적 지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나라와 인류사회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연마해야 한다.

2. 행동하자. 지금 살아 있는 현재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자. 진실을 말하고 글을 쓰자. 만일 그것을 도저히 할 수 없다면 적어도 돈과 권력에 양심은 팔지 말자.

3. 적재적소에서 활동하자. 학문의 세계에 있는 지식인들은 세상을 위해 몸을 일으킬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능력에 맞는 곳에 가서 능력을 발휘하자. 설혹 권력자가 높은 벼슬로 부른다 해도, 그것이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는다면, 일언지하 거절할 수 있는 양심 정도는 갖고 살자.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경계인을 넘어서>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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