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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쿠바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 김병철
  • 입력 2016.03.22 11:11
  • 수정 2016.03.22 12:02

Yesterday, President Obama made history. For the first time ever, Air Force One touched down in Havana, Cuba: http://go.wh.gov/sBvtMt #CubaVisit

Posted by The White House on Monday, March 21, 2016

88년 만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반미혁명의 도시로 불렸던 쿠바 아바나를 방문했다. 미국 대통령의 쿠바 방문은 1928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 이후 처음이다.

21일(현지시간) 열린 미국-쿠바의 정상회담은 반세기 넘게 이어온 적대관계 청산하는 역사적인 현장이다. 파이낸셜타임즈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 국가 주석을 만난 일만큼 중대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혁명광장을 찾아 쿠바의 독립영웅 호세 마르티(Jose Marti)기념비에 헌화를 했다. 사회주의 혁명을 기리는 공간인 이곳에선 이날 쿠바 국가에 이어 미국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울려퍼졌다.

체 게바라 조형물이 설치된 내무부 건물 앞 혁명광장에 선 오바마 대통령

체 게바라 얼굴 아래 그가 남긴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Hasta la Victoria Siempre)라는 문구가 있다.

자본주의 미국과 사회주의 쿠바의 관계는 남북한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세기 동안 적국으로 서로를 경멸했던 양국 국민 입장에선 우리가 2000년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심경일 것이다.

미국-쿠바 정상회담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이날 아바나 혁명궁전에서 두 시간 넘게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스페인어를 써가며 "오늘은 양국 관계에 새로운 날(nuevo dia)"이라며 "쿠바의 운명은 다른 나라가 아니라 쿠바인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미국과 쿠바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면서도 미국의 장거리 여성 수영선수 다이애나 니아드(64)가 2013년 쿠바 아바나에서 플로리다까지 상어보호장치 없이 해협을 횡단한 사례를 거론하고는 "그녀가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며 관계 정상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기자회견을 여는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

쿠바의 요구: 금수조치와 관타나모 해군기지

그러나 두 정상은 양국 관계 정상화의 걸림돌이 되는 몇몇 주요 현안을 놓고는 현격한 입장차를 드러냈다.

카스트로 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대쿠바 봉쇄정책을 해제한 것을 지지한다"면서 "그러나 대쿠바 금수조치와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가 미국과 쿠바 관계 정상화의 걸림돌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이어 "오바마 행정부가 무역과 여행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불충분하다"며 금수 조치의 조속한 해제를 촉구했다.

또 미국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반환문제를 다시 거론하며 "관계 정상화를 위해 필수적"이라며 "봉쇄정책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금수조치는 종료될 것이지만 정확히 언제 끝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며 "금수조치는 미국과 쿠바인들에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정 시점에서 종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행정명령으로 내려진 제재 조치는 대폭 해제됐다고 밝혔으나, 대부분의 경제·무역 제재를 해제하는 권한은 공화당이 장악한 미국 의회가 쥐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면서 "미국 의회가 얼마나 빨리 금수조치를 해제할지는 쿠바 정부가 인권문제에 대한 우려를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요구: 인권, 정치범 문제

이날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카스트로 의장에게 쿠바의 인권과 정치 민주화 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카스트로 의장의 개방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추켜세운 뒤 "오늘 회담에서 쿠바의 민주주의와 인권문제를 놓고 허심탄회한 논의를 했다"면서 "미국 정부는 쿠바의 민주주의와 인권개선을 위해 계속 목소리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카스트로 의장은 기자 회견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만일 쿠바에 정치범이 있다면 명단을 제시해보라"며 쿠바에 정치범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만일 정치범 명단을 제시한다면 나는 오늘 밤 안으로 석방할 것"이라며 "우리는 인권과 관련한 정치적 조작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쿠바에서는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추진을 계기로 정치범 장기수 숫자가 크게 줄었지만, 단기적인 구금과 체포가 여전히 빈번하다고 인권단체들은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인권을 수호하고 있으며 우리는 광범위한 인권 문제에 대해 (미국과) 다른 강조점을 두고 있다"며 "정부를 불안하게 하는 미국 첩자들의 활동은 규제하지만, 무상 의료보험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쿠바의 역사

미국은 쿠바 내 미국 자산 국유화, 쿠바의 사회주의 표방, 피그 만 침공사건, 쿠바 미사일 위기 등으로 쿠바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경제제재인 금수조치를 1962년 3월부터 유지하고 있다.

냉전 기간 쿠바는 소련으로부터 매년 40억∼60억 달러(약 4조5천억∼6조7천억 원)의 원조를 받아 미국의 금수 조치에도 중남미의 공산주의 국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90년 소련 붕괴 이후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게 되자 미국의 금수조치를 위기의 원인으로 탓하면서 1992년부터 유엔에 매년 결의안을 냈다.

양국은 2014년 12월 국교정상화를 전격으로 선언한 뒤 14개월간에 걸쳐 분야별로 관계 정상화 목표를 정하고 상업교류 활성화와 여행제한 해제, 호텔업 진출, 항공편 증설, 환전절차 간소화 등 부분적으로 관계 정상화 수순을 밟아왔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러나 공화당이 장악하는 의회를 설득하지 못해 여전히 금수조치를 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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