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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의 나라

정치의 공적 책무는 홀대받고 공적 정치는 타기의 대상일망정, 총선을 앞둔 최근의 공천과정이 보여주듯이, 운동선수, 교수, 언론인, 판검사, 연예인 등 웬만한 유명인이면 누구나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리하여 보통사람도 낯 뜨거울 수준의 후흑한(厚黑漢)들이 정계에 두루 포진해 있다한들 놀랄 일이 아니거니와, 한국정치의 몰골이 그래서 선연하다. 정치가 사적욕망들이 각축하는 최종게임이 될수록 극성을 부리는 것은 완장들의 활갯짓이다. 변절자로 지목된 조직원은 감옥에서라도 처형해야(execute!) 하는 갱단의 행태가 백주에 공공연히 횡행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이다.

  • 고세훈
  • 입력 2016.03.22 10:00
  • 수정 2017.03.23 14:12
ⓒGettyimage/이매진스

M이라는 미국의 정치학자가 있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는 MIT 학부(수학)를 마그나 쿰 라우데(차석)로 마치고 하버드에서 물리학석사를 한 다음 독일로 건너가 관념철학과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고 다시 하버드로 돌아와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그가 최종적으로 정착한 분야는 수학모델 그중에서도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미국의 외교정책을 전망하는 일이었다. 가히 천재급 학자인 데다 인품도 포근하고 겸손해서 대학원 시절 그의 마르크스주의 학부강의를 청강하며 다방면으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귀국 후 들은 소문에 의하면 그가 대학을 완전히 떠나 시카고 증권거래소의 브로커가 됐다는 것이다.

80년대 중엽 그는 미 국가과학재단(NSF)로부터 수십만 불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 이후 정국의 향방을 인공지능으로 예측하는 연구를 했고, 그가 연구결과로 제시한 5, 6개 전망 중 어느 것도 차후 전개된 필리핀 정치에 합치하는 것이 없었으며, 아마 자신의 학문적 방법론과 현실 간의 괴리로 인해 힘들어하다가 결국 학계를 떠나고 말았다는 것, 이것이 내가 듣고 이해한 배경이다. M 교수에 관한 소문의 세세한 진위야 알 수 없지만, 최근 온 나라를 흥분시켰던 알파고 관련기사들을 접하면서 문득 떠오른 기억이다.

정치, 인공지능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인가

"비합리적인 세상에서 합리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것보다 재앙을 더 가져오는 것은 없다." 케인스의 이 말은 인간 삶에 내재된 근본적 불확실성에 온갖 방법론적 기교와 과도한 도식론(formalism)을 차용하여 확실성의 외양을 덧씌우려는 시도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 월가가 수백 명의 수학자를 동원하여 만들었다는 수많은 파생상품에 사람들이 저마다 올인했다가 속수무책으로 주저앉았던 일이 불과 몇 년 전이다.

하물며 현대정치 특유의 본래적 불확실성에다 제3세계정치의 만성적 불안정성이 더해질 때 사정은 어떻겠는가. 한 세대 전에 필리핀정치를 예측하는 데 실패했던 인공지능이 과연 지금은 얼마나 신뢰할만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묻는 심사가 고약한 것은 그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사회학자 쉐보르스키의 말대로 민주주의가 결국 불확정성의 제도화에 다름 아니라면, 삶의 복잡성과 성찰적 성격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깊어질수록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불확정적이어서 열려있어야 할 정치에서 확정적인 결말을 담보해내려 할 때이다. 자기정당, 자기진영의 권력을 확정적으로 (재)창출하려는 시도가 그런 경우일 텐데, 항시적 불안에 시달리는 독재자들이 두려움(동원)의 정치를 확대재생산하는 맥락이 바로 거기에 닿는다. 민주주의라는 최소한의 공적 견제절차가 부재하니, 사적 동기, 연줄을 통한 갖가지 유착과 함께 정치의 사유화가 그렇게 일상화된다. 그리하여 정치의 공적 영역이 축소되는 만큼 사익추구자들의 눈에 정치란 그저 이익탈취를 기다리는 드넓은 황금향(黃金鄕) 정도로 비칠 것이다.

정치의 사유화, 완장의 정치

실제로 한국정치의 공적 지분은 OECD국가들에 비해 형편없이 작다. 가령 국민총생산 대비 정부예산과 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모두 그 나라들 평균의 절반도 안 되며, 인구 천 명당 공무원 수도 OECD평균의 1/3을 밑돈다. 정치의 공적 책무는 홀대받고 공적 정치는 타기의 대상일망정, 총선을 앞둔 최근의 공천과정이 보여주듯이, 운동선수, 교수, 언론인, 판검사, 연예인 등 웬만한 유명인이면 누구나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리하여 보통사람도 낯 뜨거울 수준의 후흑한(厚黑漢)들이 정계에 두루 포진해 있다한들 놀랄 일이 아니거니와, 한국정치의 몰골이 그래서 선연하다.

정치가 사적욕망들이 각축하는 최종게임이 될수록 극성을 부리는 것은 완장들의 활갯짓이다. 변절자로 지목된 조직원은 감옥에서라도 처형해야(execute!) 하는 갱단의 행태가 백주에 공공연히 횡행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이다. 옛날로 치면 "기껏해야 머슴 푼수거나 마름에 지나지 않는" 완장들은 스스로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그들에게 완장을 부여했던 주인의 권위를 막무가내로 드높여야 한다. 그러나 "지주보다 더 미움 받는 마름의 생명이 결코 오래갈 리 없다. 참다 참다 못한 소작인들은 몹시 흉년이 든 어느 해 마침내 낫과 곡괭이를 들고 떼지어 마름의 집을 습격하게 마련"인 것이다.(윤흥길, 『완장』) 이 "완장의 나라, 완장에 얽힌 무수한 사연들로 점철된 역사"에 휘둘려온 오늘의 헬조선은 지금,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가, 아닌가.

* 이 글은 다산연구소의 다산포럼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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