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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녀상과 불만

내가 위안부 소녀상에 느끼는 불만은, 그것이 너무 '순수'하다는 것이다. 소녀상에는 어떠한 허술함도 티끌도 보이지 않는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단정한 자세로 앉아서 건너편의 일본 대사관을 향하여 조용히 꾸짖고 있는 순결한 소녀상. 바로 이러한 이미지야말로 한국인들이 소녀상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동일시하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자신의 모습일 것이며,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소녀상을 지키게 만드는 원천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순수함이 싫다. 소녀상은 왜 이리 순수해야 하는가. 이렇게 순수한 이미지가 환기시키고자 하는 기억, 말하고자 하는 주장은 무엇인가.

  • 최범
  • 입력 2016.03.22 07:37
  • 수정 2017.03.23 14:12

내가 위안부 소녀상에 느끼는 불만은, 그것이 너무 '순수'하다는 것이다. 소녀상에는 어떠한 허술함도 티끌도 보이지 않는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단정한 자세로 앉아서 건너편의 일본 대사관을 향하여 조용히 꾸짖고 있는 순결한 소녀상. 바로 이러한 이미지야말로 한국인들이 소녀상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동일시하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자신의 모습일 것이며,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소녀상을 지키게 만드는 원천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순수함이 싫다. 소녀상은 왜 이리 순수해야 하는가. 이렇게 순수한 이미지가 환기시키고자 하는 기억, 말하고자 하는 주장은 무엇인가. 나는 모든 예술은 불온한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예술이 반드시 불온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예술들은 숭배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공동체의 결속을 위한 선전선동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고 방향이다. 위안부 소녀상이 그 순수한 이미지를 통해 환기시키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기에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예술의 형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굳이 분류해보자면 소녀상은 고전주의가 아닐까 싶다. 고전주의의 양식적 특징은 질서와 부동성, 기념비성이다. 일본 대사관을 향해 비록 작지만, 태산처럼 무겁게 앉아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소녀상은 가히 고전주의의 특징에 부합한다고 할 만하다. 빙켈만이 말한 고대 그리스 미술의 특징인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edle Einfahlt und stille Grosse)'가 소녀상에는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고전주의의 미학적 특징은 '이상화(Idealization)'에 있다. 고전주의는 불완전한 현실을 보완하여 대상을 이상적인 그 무엇으로 만든다. 여기에 고전주의의 매력과 함께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전주의 작품을 볼 때 감동과 함께 그것이 이상화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위안부 소녀상은 무엇을 이상화하고 있는가. 그것이 이상화하고 있는 것은 결국 민족이 아닌가. 나는 소녀상이 이상화하고 있는 민족과 그것이 생산해내는 민족주의에 회의적이다.

고전주의가 '이상화'라면, 낭만주의는 '초월'을, 표현주의는 '표출'을 주된 미학적 원리로 삼는다. 한국의 기념미술들에서 유독 낭만주의나 표현주의적인 접근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또 다른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소녀상이 보여주는 고전주의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어떤 한국적인 단아함이나 결기 같은 것에 가까운 응축된 표현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은 한국 민족주의를 이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편하다. 나는 소녀상이 너무 순수하다는 것이 불만이고, 그 소녀상이 조형해내는 민족주의가 실은 매우 불온하다는 점이 더욱 큰 불만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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