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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자동이체 금액에도 순서가 있다

  • 허완
  • 입력 2016.03.21 16:58
ⓒ한겨레

직장인 이아무개(45)씨는 월급날에 맞춰 주거래은행 계좌에서 대출 원리금, 신용카드 대금, 부모님 용돈, 휴대전화 요금, 월세 등이 자동으로 빠져나가도록 하고 있다. 그나마 상여금을 받는 달은 여유가 있어 인출 순서에 신경을 쓰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달엔 혹시나 잔액이 부족해 대출 원리금이나 신용카드 대금이 결제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곤 한다. 이런 돈은 하루라도 연체되면 고율의 이자가 붙거나 신용등급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이씨는 “무심결에 몇차례 연체가 됐는데 한번은 카드 이용을 막아놔 택시비 결제를 못한 적도 있다”며 “자동이체 순서가 어떻게 정해지는지 종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은행 결제계좌에 적게는 한두 건에서 많게는 열 건이 넘는 자동이체를 등록해 놓고 있지만 은행에 따라 인출 순서가 제각각이어서 종종 논란이 일고 있다.

21일 주요 은행들의 관련 약관을 보면, 자동이체 순서는 월세나 부모님 용돈 등 계좌 주인이 직접 지정하는 ‘자동 송금’이 가장 이른 시간에 이뤄진다. 또 자사의 대출 이자나 계열사의 신용카드 대금 등이 선순위로 인출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주로 월세나 물품 대금 등이 자동송금 대상인데 이런 돈을 제때 지급하지 않으면 연쇄적인 피해가 발생해 가장 먼저 인출한다. 또 은행으로선 대출 원리금 상환 여부가 자사의 손익과 연관된 만큼 우선순위에 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를 제외한 타사의 카드 이용대금이나 통신요금, 공과금 등은 은행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ㄱ은행의 자동이체 순서는 자사 대출이자와 계열 카드사 대금→아파트 관리비→공과금→타행 카드대금→펀드·적금 등의 차례다. 반면 ㄴ은행은 자사 대출이자→계열 카드사 대금→지로요금→아파트 관리비→타행 카드대금 등이다. 잔액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타행 카드대금이 결제되지 않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다.

자동송금을 제외한 자동이체 출금은 영업시간(오후 4시) 종료 뒤에 순차적으로 이뤄진다. 결제일 자정에 한꺼번에 이체가 실행되면 문제가 없겠지만, 출금 건수가 워낙 많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은행 쪽의 설명이다. 영업시간 뒤이긴 하지만 신용카드 대금을 결제일 자정 안에 입금했는데도 간혹 연체로 간주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논란을 막으려 카드사들은 ‘은행 영업시간 뒤에 입금하면 연체료가 부과될 수 있다’는 내용을 약관에 명시하기도 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ㄴ카드사에 내야 할 요금이 50만원, ㄷ카드사 대금이 20만원이 있는데 은행의 자동이체가 완료된 뒤 60만원이 입금됐다면 어느 카드사에 얼마를 연체한 것인지 정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는 점도 이런 약관을 만든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로선 연체를 피하려면 출금 순서를 알아두고, 은행 영업시간 종료 전에 미리 돈을 넣어두는 게 최선이다.

이런 은행 약관이 불공정 거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채무 변제 순서에 따라 소비자의 이익이 달라질 수 있어 소비자가 출금 순서를 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금융회사가 임의로 출금 순서를 정하는 약관을 고치도록 금융당국에 요청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소비자한테 경제적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한다는 원칙을 최우선으로 두고 자동이체의 순서를 정하도록 개선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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