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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없는 정당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마르크스주의 사고에 우호적인 사람들과 호남이라는 이름 아래 보수적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들이 한 지붕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DJ에서 노무현정부로 이어지면서 좌우와 중도가 마구 뒤섞이는, 비유컨대 온탕과 냉탕을 오고가는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인해 국민에게 좌절을 안겨주기 일쑤였고, 최근에는 완장 차는 자리라도 보존해보자는 호남기득권 세력과 권력을 확실히 잡아보자는 친노패권주의가 충돌하기에 이르렀다.

  • 국민의제
  • 입력 2016.03.21 08:17
  • 수정 2017.03.22 14:12
ⓒ연합뉴스

글 | 한면희(성균관대 초빙교수, 공동선정책연구소 대표)

"저 사람은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이는 참으로 수치스럽다고 아니할 수 없다. 삶에 대한 핵심적 가치나 이상, 계획 없이 그때그때의 편의와 기호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대처하는 것이니 거기에 행복의 의미가 진중하게 깃들 여지가 없다.

얼마 전 야당은 정부여당에 의해 상정된 테러방지법에 대해 민주적 대처의 일환으로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다가 서둘러 종료하였는데, 여기에는 더민주당의 민병두의원이 "과거 선거의 전례를 보면 '이념전쟁'으로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다."는 문제를 제기하였고, 이와 유사한 견해들이 결정에 적지 않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진보의 주류인 민주당은 제대로 된 당의 이념을 갖추려고 노력한 적이 별로 없다.

그런데 조금 깊이 성찰을 해보자. 이념(Ideas)은 체계화된 생각일 뿐이다.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 부끄러운 욕인 것처럼, 원리적 생각을 결여한 정당이 나라를 일관되고 온전하게 이끌 리가 없다. 수학 문제를 문제풀이 방식으로 많이 접근한 학생은 연습한 문제를 빠르고 쉽게 해결할 수 있지만 풀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망연자실이다. 그러나 원리를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학생은 풀어보지 않은 미지의 문제에 대해서도 도전이 가능하고 자주 해결에 이르기도 한다. 각종 정책의 원리로 작동하는 것이 정치철학 또는 이념이다.

이치가 이와 같은데도, 전통의 민주당은 왜 이념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일까?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이데올로기(ideology)이고, 더 정확히는 구시대의 이데올로기인 것을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동구권의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지자 미국의 우파 학자 후쿠야마가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저서를 통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구도에서 전자의 승리로 귀결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데올로기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우리의 경우에는 6.25남침으로 전쟁의 홍역을 극심하게 치른 까닭에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 마르크스적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되는 정책 제시를 꺼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보수가 진보를 향해 걸핏하면 좌익빨갱이라는 악의적 덧칠을 해대는 상황에서는 이해가 되기도 하는 대목이다.

주류 진보인 '민주당'은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1987년 체제 이후 상대적 소외지역의 호남사람과 민주화에 기여한 재야운동권의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어왔다. 여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역사적 역할에 대해서는 치하를 함이 마땅하다. 다만 정치 행위에 있어서는 비극도 싹트고 있었다.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마르크스주의 사고에 우호적인 사람들과 호남이라는 이름 아래 보수적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들이 한 지붕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DJ에서 노무현정부로 이어지면서 좌우와 중도가 마구 뒤섞이는, 비유컨대 온탕과 냉탕을 오고가는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인해 국민에게 좌절을 안겨주기 일쑤였고, 최근에는 완장 차는 자리라도 보존해보자는 호남기득권 세력과 권력을 확실히 잡아보자는 친노패권주의가 충돌하기에 이르렀다.

작년 말에 정치적 해프닝이 있었다. 노무현정부의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이 자신은 보수에 속하는 만큼 제발 새누리당서 입당 원서를 받아달라고 간청을 한 것이다. 20대 총선거를 코앞에 둔 지금 강봉균 전 재경부장관이 새누리당의 선대위원장 제안을 수락했다. 그는 DJ정부의 장관이었고 민주당서 3번의 국회의원을 역임한 호남의 인사다. 권력의 기회를 잡기 위해 옮겨 다니는 것이 다반사이기는 하지만 민주당의 경우에는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해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는 점이다. 사실 엘리트 관료코스를 거쳤거나 지역의 유지급 인사들이 호남이라는 이유로 민주당서 둥지를 틀고 있는데, 이들 일부는 새누리당의 보수와 같은 정치색을 갖고 있으며 그 어디서든 부정부패에 연루되기 쉬운 사람들이다.

더민주당의 김종인대표도 보수에서 진보로 건너갔으니 오고가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지적도 있을 법하다. 일리가 없지 않지만, 차이가 있음도 분명하다. 경제민주화라는 신념 속에 박대통령을 도왔는데 그분이 외면하고 있다면 이를 제대로 실현할 다른 방도를 찾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반면, 누군가가 이쪽서 누릴 것을 다 누린 상태에서 저쪽의 반대편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고 해서 덥석 변신한다면 여기에는 기회주의 요소가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정당의 선택과 이동은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정치철학과 소속 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흔드는 사태로 이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럴 경우 건전한 정책 경쟁이 일어나지 않고 오직 권력 그 자체를 거머쥐려는 다툼으로 일관됨으로써 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건강한 의미에서 보수는 보수답게, 진보나 중도는 또 그것다워야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성숙하게 도모될 수 있다. 방도는 고유한 정치적 이상에 따르는 것이다.

이제 이념과 관련해서 진보가 갖추어야 할 바를 추스를 필요가 있다. 정당이라면 서유럽처럼 마땅히 정치적 이념을 채택하는 것이 온당한데, 한국의 특수 상황서 기피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이다. 여기서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정공법으로 마르크스주의나 그것의 서구적 수용인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는 것이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조성되어 복지국가를 탄생시킨 사회민주주의는 의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포용하면서 마르크스적 평등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다지 문제될 소지가 없지만, 국민의 레드 콤플렉스 극복이 관건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목격한 후쿠야마는 자신의 이전 견해를 수정하여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근본적 회의를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또 다른 길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 먼저 진보적 자유주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보수적 자유주의와의 차이가 불분명하다는 결점이 있다. 새로운 대안으로 신공동체주의를 상정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신자유주의는 시장자유주의의 활성화로 회귀하자는 우파적 흐름인데, 경제적 파이의 크기를 다소 늘려주고 있지만 소중한 공동체의 가치를 파괴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신공동체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고유하게 피어나도록 하되 그것이 연계되어 있는 가족과 이웃, 사회 구성원에게 미덕어린 영향을 끼침으로써 공동선을 도모토록 하는 연계적 자아의 정치사상이다.

따라서 진보나 중도를 표방한 정당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자신에게 알맞은 정치이념에 따른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보수와 건전한 정책적 경쟁을 하고, 이로써 사회를 희망찬 곳으로 인도하는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글 | 한면희

현재 성균관대 초빙교수와 공동선정책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과거 생태철학자로서 대안적인 녹색대학의 대표(교수)와 한국환경철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초록문명론>과 <미래세대와 생태윤리> 등의 저서를 출간했고, 환경정의연구소 소장으로 아토피 자녀의 어머니들과 교류하면서 갖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생태의학의 지평을 여는 데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치철학자로서 <제3정치 콘서트>를 출간하는 등 공동선과 사랑의 정치를 본원적으로 실현하는 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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