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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20일 07시 17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21일 14시 12분 KST

알파고의 행마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현실은 이미 성큼 앞서나가고 있다. 딥블루의 후예, IBM '왓슨'은 지난해 암 전문병원 엠디앤더슨센터에서 암 진단 '수련의'로 투입됐다. 알파고도 마찬가지다. 수담의 경지를 넘어 기아와 전쟁, 질병과 테러 위협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영특한 기계로 재탄생할 때 비로소 인공지능의 본질적 가치에 접근하게 된다. 세기의 대국을 앞두고 방한한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이번 대결은 인류의 승리"라고 말했다. 알파고의 행마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구글

"이건 구글의 승리인데."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생각은 이랬다. 정상의 인간과 최고 인공지능의 역사적 첫 대결.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치르는 바둑 대국 5번기 얘기다. 이로써 인간과 기계의 대결은 또 한 번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거대한 한 장면을 함께 넘기고 있다. 이세돌이, 알파고가, 시청자가 곧 역사다.

이번 대결은 성사 직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은 게 1997년 일이다. 꼭 20년 만에 기계는 인류의 마지막 유희 영역에 정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인공지능이 생각보다 인간 사고 영역에 훨씬 바짝 다가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움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온다.

3월9일 벌어진 첫 대결은 예상을 크게 뛰어넘을 정도로 '쫄깃'했다. 초반 포석 이후 상변 첫 전투에서 알파고는 국내 정상급 프로기사인 해설자들을 놀래는 착수를 잇따라 보여줬다. 위기도 있었다. 알파고는 인공지능이 우세할 것으로 예상했던 중·후반 이후 미세한 처리에서 미흡한 대처 능력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미숙한 알파고에서 인간미가 느껴진다"며 비로소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반전은 뒤에 일어났다. 몇 차례 안일한 대처를 보인 이세돌 9단은 끝내 집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186수 만에 돌을 던졌다. '실수'는 결국 인간의 몫이었다.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가 이 시대 최고 바둑기사를 넘어섰다. 승패는 역사를 바꿨다. 그러나 이 거대한 지구촌 이벤트의 함의는 따로 있다. 기계가 인간을 정복한다거나, 일자리를 빼앗아갈 거란 얘길 하려는 건 아니다. 인공지능의 역사나 기술적 완성도는 다른 자리에서 짚어보자.

유럽 챔피언 판후이 2단을 5 대 0으로 꺾을 때부터, 이 시대 세계 최고수로 꼽히는 이세돌 9단과의 빅매치를 성사시킨 순간부터 알파고는 이미 꽃놀이패를 쥐었다. 구글은 적어도 한동안 기계가 넘보지 못할 영역에 도전한 첫 맞수로 기록됐다. 애플도, 페이스북도, 마이크로소프트도 따돌리고 현존하는 인공지능 연구의 선두주자임을 구글은 전세계에 각인시켰다.

"알파고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바둑의 아름다움을 인간처럼 이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첫 대국을 하루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세돌 9단은 이 말로 승리를 자신했다. 그가 옳다. 알파고는 바둑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자 고안된 물건이 아니다. 정교한 계산력과 빅데이터에 기반한 빠른 판단력, 스스로 익히고 진화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상비군으로 투입되기 위해 탄생한 알고리즘이다.

현실은 이미 성큼 앞서나가고 있다. 딥블루의 후예, IBM '왓슨'은 지난해 암 전문병원 엠디앤더슨센터에서 암 진단 '수련의'로 투입됐다. 미국 벤처기업 엔리틱(Enlitic)도 이미지 정보를 딥러닝 기법으로 분석해 질병을 진단하는 시스템을 공개했다. 방대한 양의 방사선 사진이나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 이미지 등을 기계가 학습한 뒤 미래 발병률이나 생존율을 예측하는 식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14년 전 '이매진컵'이란 글로벌경진대회를 출범시켰다. 그는 전세계 대학생들이 낸 창의적 아이디어가 인류의 해묵은 숙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선한 기술'로 전환되길 바랐다. 이매진컵은 2009년 7회 대회부터 노선을 선명히 밝혔다. '기술이 우리가 직면한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라.'

알파고도 마찬가지다. 수담의 경지를 넘어 기아와 전쟁, 질병과 테러 위협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영특한 기계로 재탄생할 때 비로소 인공지능의 본질적 가치에 접근하게 된다. 세기의 대국을 앞두고 방한한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이번 대결은 인류의 승리"라고 말했다. 알파고의 행마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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