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보물같은 장소: 익선동 놀러가기

  • 김병철
  • 입력 2016.03.19 12:47
  • 수정 2016.03.19 12:49
ⓒ한겨레

낙원상가에 밤이 찾아오면 불빛이 화려하게 빛난다. 사진 박미향 기자

요즘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를 순대골목과 아귀찜식당들로 둘러싸인 낡은 악기상가로만 여긴다면 오산이다. 1967년 완공된 낙원상가는 지금 도시의 차가운 소음을 음악 소리로 바꾸려는 젊은이들의 열기로 뜨겁다. 낙원상가에서 걸어서 2분 거리인 익선동 한옥마을의 최근 변신도 낙원상가에 불어닥친 새바람이다.

지난 13일 낙원상가와 익선동 한옥마을 일대를 찾은 원화빈(25)씨와 동갑내기 친구 박유진씨는 서울 이태원동 경리단길이나 홍익대 거리, 가로수길을 더는 찾지 않는다. 원씨는 “음식 값도 너무 올랐고, 예전에 좋아했던 특색 있는 분위기가 다 사라지고 똑같아진 탓에 싫어졌다”며 “대신 요즘 이곳을 부쩍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봄기운이 완연한 3월, 지도 한장 들고 낙원상가의 새옷을 걸쳐보고, 1930년대 형성된 한옥마을인 익선동까지 보너스로 여행해보자.

20대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익선동 한옥 골목. 사진 박미향 기자

낙원상가의 어제

낙원상가 1층 정문 옆에는 마치 박물관처럼 유리로 보호해놓은 벽이 있다. 1967년 완공 당시의 벽돌벽이다. 벽에는 ‘낙원삘딍’이라고 적은 현판이 걸려 있다. 50년 가까이 됐는데도 보존 상태가 좋다. 4·5층 전용 엘리베이터는 독특하다. 독일 쉰들러사가 제조한 것으로, 천장에 환풍구가 설치돼 있다. 현업 건축가들도 찾아와 보는 엘리베이터라고 한다. 필로티 공법으로 만든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인 낙원상가는 한강의 모래와 자갈을 건축 자재로 써 안전성은 지금도 문제가 없다는 진단이다.

낙원상가 아파트. 사진 박미향 기자

2층 계단을 오르자 “삐빅~” 악기가 내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2~3층 악기상가는 커다란 피아노부터 작은 우쿨렐레까지 온갖 악기를 파는 300여개 업체들이 입점해 있다. 그중 ‘중앙악기’는 다루는 악기 종류가 무척 많아 악기 문외한이나 초보자가 구경하기에 좋다.

낙원상가에서 유일한 악기가방가게인 ‘태희사’를 운영하는 임현(68)씨는 “본래 가구점, 토산품점, 양품점들이 있던 상가에 70년대 중반부터 악기상들이 하나 둘 들어오더니 80년대 중반 이후 악기상가로 완전히 탈바꿈했다”고 전했다. 70년대 통기타 붐이 일고, 나이트클럽, 카바레 등에 종사하는 악사들까지 상가를 찾아오면서 호황을 누렸다.

90년대 당시 국내 수입되는 전체 외제악기의 65%가량이 거래되던 이곳에선 하나에 3억~4억 하는 고가 악기도 턱턱 팔리곤 했다. 가격이 시중보다 20%가량 싸 탬버린을 사려는 초등학생들도 찾았다. 오후 4시면 300여명의 악사들이 낙원상가 4층에 모여들기 시작해 악사 인력시장이 열렸다.

이들이 뿜어내는 뿌연 담배연기로 앞이 안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70년대 충무로 왕성당구장에서 악사 10여명이 시작한 악사 인력시장은 낙원상가로 옮겨오면서 더 큰 호황을 누렸다. 방송에서나 보는 유명가수를 보는 일도 다반사였다.

2000년대 들어 전자악기와 노래방이 대중화되고 카바레 등을 중심으로 하는 유흥문화가 사라지면서 악사들이 일자리를 잃어가자 이곳도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낙원상가 안에 있었던 ‘123카바레’는 한때 “장안에서 최고로 물이 좋다”는 소리를 듣던 곳이었다.

‘춤바람’, ‘제비족’ 같은 당시로서는 신조어를 달고 산 123카바레는 손님이 줄자 한때 콜라텍으로 변신하기도 했지만 2007년 끝내 문을 닫았다. 123카바레 주인이었던 임동수씨는 지금 인근에서 호프집 ‘먹고갈래 지고갈래’를 운영한다. 이곳은 라이브 공연까지 열리는 노인들의 천국이다. 노인들의 즉석미팅도 벌어져 종로 일대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높은 빌딩이 없던 70년대, 서울에서 손에 꼽히는 고층빌딩이었던 낙원상가에서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낙원상가 대표를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로 끌고 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유는 누군가 아파트 고층에서 청와대를 향해 총을 겨눴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막대기로 밝혀지면서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 대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80년대 말 종로 거리에는 민주화운동 등으로 최루탄 가루가 가득했다. 묵묵히 격변의 세월을 견뎌낸 낙원상가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으나, 최근 옛 도심지가 색다른 도시 여행지로 각광받으면서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악기 전문상가라는 특징을 100% 살려 부활을 꿈꾸고 있다.

낙원상가의 오늘

지난 15일 저녁 7시30분 낙원상가 4층에 있는 ‘더 사운즈 스튜디오’에서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시그널>에 등장했던 ‘나는 너를’이 울려퍼졌다. 사업가 안태민(54)씨가 동호회 회원들과 드럼을 치면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드럼을 쳤으나 사업이 바빠지면서 그만뒀다. “요즘 재미있는 일이 없다”던 그는 드럼을 다시 시작하고부터 조금씩 삶의 활력을 찾았다. 그는 악기 구경차 상가를 찾았다가 덜컥 연습실을 대여했다고 한다.

밤이 더 깊어지자 고운 자태의 청년이 기타를 메고 나타났다. 23살 권혁찬씨다. 부친의 가업을 잇고 있는 그는 “인생을 살면서 악기 한가지는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에겐 기타가 ‘반려악기’다. “낙원상가는 음악의 메카이고 강습료도 20대에게 부담없는 금액이다. 개인 실력에 맞춰 자세하게 가르쳐주는 것도 내가 이곳을 찾는 이유”라고 그는 말했다. 권씨처럼 반려악기를 가지려는 인근의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을 활용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악기연습실이자 강습소인 ‘더 사운즈 스튜디오’의 이정욱 매니저는 “지난해보다 고객이 늘었다. 주로 20~30대다”라고 전했다. 현재 이곳에서 보컬이나 기타를 배우는 이들은 모두 11명. 연습실을 대여하는 이들은 한달 평균 100팀 정도라고 한다. 대여비는 1시간에 1만5000원. 평일 낮은 5000원 더 싸다.

낙원상가의 ‘실버영화관’엔 단체관람객이 많다. 사진 박미향 기자

직장인들이 무료로 기타나 보컬을 배울 수 있는 ‘미생 응원 이벤트’가 연말까지 펼쳐진다. 낙원상가 공식 페이스북과 블로그에는 재밌는 이벤트 정보가 가득하다. 오는 26일 상가 4층 복합문화공간 ‘멋진 하늘’에서는 ‘낙원, 기지개를 켜다’ 콘서트가 열린다.

20대들에게 인기있는 ‘윤딴딴’, ‘동네빵집’, ‘로켓트아가씨’ 등이 출연한다. 복합문화공간 앞에는 ‘실버영화관’이 있다. 마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같은 추억의 여배우 사진과 <땡볕> 등 영화 포스터는 마치 예술작품 같다. 삼삼오오 데이트에 나선 노인들이 영화관에 많다. 노인들의 관람료는 2000원이다.

낙원상가 여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상가 지하로 향하는 어둑한 계단을 내려가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띈다. 밥맛 좋다고 소문난 ‘일미식당’이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 맛집으로 소개된 뒤로 문전성시다. 상가 지하 재래시장에서 일미식당만 경험하고 가면 진짜 보물을 놓치는 꼴이 된다.

1000원짜리 수입과자 등 각종 과자류를 파는 ‘상신상회’, 이쑤시개부터 목욕타월, 장화, 파리채까지 없는 게 없는 ‘우리상회’, 오만가지 그릇을 파는 그릇가게까지, 둘러볼수록 재미있는 시장이다. 한 단골이 지나가면서 툭 말을 던진다. “처녀 불알만 없고 다 있는 시장이라고!”

진한 화장이 세월을 그대로 드러내는 할머니들이 파는 국숫집들은 정겹다. 국숫집은 다섯군데 있는데 값이 2000원 정도다. 안줏거리로 파전, 돼지머리고기 등도 판다. 시장 안쪽에는 푸짐한 닭칼국수를 파는 ‘오뚜기식당’이 있다. 후미진 곳에 있지만 손님이 많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쪽에서 바라본 낙원악기상가 밤 풍경. 사진 박미향 기자

20대들의 낙원 익선동

낙원상가 옆 익선동을 무너져내린 벽과 벗겨진 페인트, 하늘을 조각조각 내버린 전선줄이 가득한 지저분한 한옥 동네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세련된 20대 트렌드세터들이 찾는 ‘핫 플레이스’로 변신하고 있다.

익선동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열두달’이 눈에 띈다. 한 공간에 7개의 브랜드가 공생하는 독특한 구조의 가게다. 말마햄(수제햄), 제이제이(수제잼), 루트(뿌리채소), 자주(전통주), 스팀45(수제맥주), 수청(효소청 등), 그레인스(곡물빵) 등이 있는데, 주인이 다 다르다. 취향 따라 조합이 가능하다.

예컨대 루트에서 ‘말린 연근이 들어간 크림파스타’를 골라 스팀45의 밀맥주와 같이 먹는 식이다. 전체 운영자는 박한아·박지현씨. 30대 초반인 이들은 지난해 우연히 찾은 익선동의 매력에 빠져 ‘익선다다’라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열두달과 함께 ‘익동다방’, ‘경양식 1920’을 이 골목에 열었다. 한옥에 들어선 라운지바 같은 익동다방, 돈가스와 햄버그스테이크를 주메뉴로 하는 1920년대 풍의 경양식 1920은 30여분은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인기다.

익선동에 있는 ‘열두달’. 사진 박미향 기자

골목 가운데에는 ‘거북이슈퍼’와 ‘프루스트’가 마주보고 있다. 슈퍼 겸 가맥(가게 맥주)집인 거북이슈퍼에선 연탄불에 먹태, 오징어, 쥐포 등을 구워준다. 20대들 눈에는 신기하다. 3개월 전 문을 연 프루스트는 홍차카페 겸 향수공방이다. 독도의 자연을 모티브 삼아 만든 독도 향수 등을 판다.

향기에 취할 즈음 ‘식물’이 눈에 들어온다. 2014년 10월 문 연 식물은 세련된 음악이 흐르는 바 겸 카페로 패션사진가 루이스 박이 열었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익힌 세련된 감각으로 한옥 3채를 뚫어 펼쳐보였다. 식물이 문 열 당시만 해도 익선동은 그저 조용한 동네였다.

식물

식물이 재밌는 공간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는 요즘 사진작업보다는 낡은 구도심지의 인쇄소 같은 건물을 새로운 공간으로 바꾸는 공간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식물 앞에 있는 ‘빈티지보니’와 ‘수집’도 놓치면 안 될 명소다. 빈티지보니는 1940~1980년대 빈티지풍의 옷과 그릇 등을 판다. 10년 동안 영업했던 홍익대 근처를 벗어나 두달 전 이곳으로 이사했다. 수집에선 작가들이 수제로 만든 그릇, 가방, 액세서리 등을 판다.

한참을 눈요기를 하고 나면 배가 고프다. ‘익선동 121’은 도마뱀출판사 등을 운영하는 조동욱(44)씨가 운영하는 건강 밥집이다. 8년째 익선동에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그가 단골 막걸리집이 문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 공간을 인수해 열었다. 곤드레비빔밥, 카레 등이 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종로 #익선동 #낙원상가 #데이트 #한옥 #한옥마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