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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더민주 청년비례 공천 | 원칙은 없고 모욕만 남은

정작 다른 후보들은 선거법 때문에 후보자 토론회도 열 수 없었다. 정치인을 뽑는 자리에 정책 토론이나 정견 발표를 위한 연설조차 없었다. 그리고 서류로 컷오프 되었다. 나는 컷오프 사실을 '문자'나 '전화 통보'가 아닌 '뉴스'를 통해 접했다. 13일 중앙당의 앞선 행태에 보다 못한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이 주최한 청년비례대표 후보자 토론회에 참석하려고 하던 찰나 뉴스를 보고 알았던 것이다. 처음 주어진 기회였다. 그런데 의미조차 없었다. 이미 나는 후보자 자격을 박탈당했던 것이다. 단, 한 마디도 못 한 채...

  • 임형찬
  • 입력 2016.03.18 12:25
  • 수정 2017.03.19 14:12
ⓒ연합뉴스

나는 더불어민주당 청년비례대표 신청자이다. 그리고 서류에서 컷 오프되었다. 나는 증명서로 입증할 수 있는 정당 경력은 국회 근무 경력이 전부였다. 야권의 험지인 부산에서 태어나 지역 활동은 입증 가능한 직함도 그 무엇도 건질 수 없었다. 14년 동안 정당 생활을 하며 당을 지켜온 것으로 자부심을 가져왔는데, 서류 심사만으로 컷 오프 되었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섭섭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컷 오프 결과보다 더 참담한 것은 그 과정들이었다. 지난 3월 4일 비례대표 후보 신청자 접수가 끝나고, 신청자 대부분은 어떤 통보도 받지 못 했다. 향후 일정이나 선출 세칙에 대한 공지 등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같은 경쟁자였던 영입인사 출신 김빈 후보와 최근 사퇴한 최유진 후보는 당내 행사에 지속적으로 참가하며, 선거운동을 지원하는 듯한 묘한 상황이 벌어지니 점점 불길한 예감이 들었었다.

흔히 청년들이 기업에 입사하며, 내정자를 깨닫는 순간과 유사한 것이다. 특정 후보군에 대한 불공정한 진행과 괴리된 후보군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 향후 일정에 대한 정보조차 없이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 그러한 불쾌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정작 다른 후보들은 선거법 때문에 후보자 토론회도 열 수 없었다. 정치인을 뽑는 자리에 정책 토론이나 정견 발표를 위한 연설조차 없었다. 그리고 서류로 컷오프 되었다. 나는 컷오프 사실을 '문자'나 '전화 통보'가 아닌 '뉴스'를 통해 접했다. 13일 중앙당의 앞선 행태에 보다 못한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이 주최한 청년비례대표 후보자 토론회에 참석하려고 하던 찰나 뉴스를 보고 알았던 것이다. 처음 주어진 기회였다. 그런데 의미조차 없었다. 이미 나는 후보자 자격을 박탈당했던 것이다. 단, 한 마디도 못 한 채...

14일 월요일 서류 심사를 통과한 후보자들이 면접을 볼 시간 내게 문자 통보가 왔다. 서류 심사 탈락을 통보하는 문자였다. 12일 저녁에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컷오프는 이틀이 지나 내게 전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김빈 후보의 컷오프 소식이 언론에 불거져 나오면서 사건이 커졌다. 면접 3시간 만에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녹취록 사건이 나온 것도 그쯤이었다. 다음날 탈락 후보들이 서로 수소문해서 회동을 가졌다. 여기서도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누가 출마했는지 서로 몰랐기 때문이다. 22명이 지원했지만 서류에서 탈락한 13명의 신상을 알지도 못 했고, 중앙당은 공지조차 하지 않았기에 사람을 모으는 것조차 힘들었다. 어쨌건 11명의 후보자들을 모아 기자회견이라는 것을 했다. 그리고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과의 부적절한 의혹 (한겨레 "청년비례 '깜깜이 심사' 논란...김규완 후보 교체" 링크)이 있었던 김규완 후보와 당직자의 서류 첨삭 녹취록(jTBC "[단독] 더민주 '청년 비례' 논란...자소서 첨삭 도움 의혹" 링크)의 당사자인 최유진 후보가 사퇴했다. 또한 최종 4명의 경선 후보에게 진행되었어야 할 ARS 여론 조사 절차도 중단되었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불공정한 심사를 한 공천관리위원들의 교체와 부적절한 의혹을 가진 홍창선 위원장의 사퇴가 핵심이었다. (데일리안 "더민주 당원들 "청년비례 밀실 공천, 홍창선 사퇴해야"" 링크) 사실 이 기자회견도 겨우 열 수 있었다. 본래 국회 정론관에서 하기로 했던 기자회견이지만 압력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후보 중 서울특별시 시의회 의원인 이신혜 후보의 도움을 받아 시의회에서 간신히 기자회견을 할 수 있었다.

책임자 사퇴 및 징계, 재심사만 하면 잘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지만 지금은 또 다른 문제와 사투를 벌여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바로 의혹의 당사자였던 홍창선 위원장이 청년비례대표의 자질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중단된 선발 절차를 완전히 무산시키고, 다른 일반비례대표 후보자를 청년비례로 넣기 위한 절차도 시작되었다.

그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탈락자들에 대한 모욕이었다. 그는 1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 홍창선> 그 말도 일리가 있고. 그러나 아무튼 이 청년제도라는 게 뭐가 좀 19대 때 도입했다는데 취지와 달리 좀 이상해요. 인터뷰를 해 봤더니 아직 준비가 너무 안 된...

◇ 김현정> 청년들이.

◆ 홍창선> 그런 걸 발견하고 모든 의원들이 '이거는 아니다' 이런 의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날 무슨 SNS로 뭘 녹취를 하고 기성 정치인 뺨치는 행태를 보이고 어떻게 이런 것부터 배우고. 무슨 자기의 능력을 어디 직장이라도 사회 경험을 쌓고 그러고 들어와야지, 여기가 청년 일자리 하나 구해 주는 게 국회 일자리는 아니다.

◇ 김현정> 여기가 청년 일자리 하나 구해 주는 데냐. 아니, 그런데 4년 전에 청년비례대표로 뽑힌 김광진, 장하나 의원. 장하나 의원은 어제 밤에 컷오프가 됐습니다마는 이분들은 "청년비례가 지난 4년 동안 무능했다는 얘기냐. 젊어서 의정활동을 못한다는 얘기냐" 하면서 "잘못은 오히려 직무를 유기하고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공관위에 있다. 사과하라". 이런 요구를 공개적으로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홍창선> 그러니까 수준이 그거밖에 안 되는 겁니다.

◇ 김현정> 그게 무슨...

◆ 홍창선> 그게 지금 그분들을 평가해서 이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지금 지원한 사람들의 수준이 아직 아니다, 그런 말씀을 드리고. 이 제도 자체에 문제가 좀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기 때문에 모두. 그래서 재검토를 하겠다 그런 거고요.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음성 및 인터뷰 전문 링크

마치 지원자들의 수준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도를 재검토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 또한 민간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며, 국회 보좌진으로 근무도 했다. 정당 생활만 14년이었다. 다른 후보의 경우에는 현직 시의원이 있으며, 지방의회 의원도 있었다. 또한 민간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으며, 다들 각자의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었다.

사실상 명예훼손이자 모욕에 가까운 말을 '언론'에서 한 셈이었다. 그것도 상대 정당도 아닌 자신의 정당의 권리 당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홍창선 위원장의 면접 경험도 후보자들의 말과 달랐다. 서지완 후보는 아버지 직업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다른 여성 후보들조차도 '정치적 견해'를 묻는 것이 아니라 신변 질문에 대한 것이 주를 이뤘다는 증언이 속속 나왔다.

게다가 홍창선 위원장은 명백한 거짓말까지 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의원실 비서로 일했던 김규완 후보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17대 국회 이후 연락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그는 2013년 2월경 의원실 직원들과 회동을 했다. 2012년에도 회동을 했으며,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왔음을 의심할만한 정황도 발견되었다.

사실 인생에서 20대 후반과 30대에 얻을 수 있는 사회 경력이란 어느 정도일까?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30대 초반이라도 세 줄을 넘기기가 어렵다. 대학 졸업과 직장생활, 이직을 자주해서 생기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고, 사회적 직함은 거의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창선 위원장이 사회 경험을 운운한 것은 스펙으로 이력서를 평가하는 우리 사회상의 축소판 같았다.

우리나라 법에는 만 25세 이상에게는 피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누군가는 사회에서 성공한 인물이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우리 이웃 중에 일용직 근로자가 되든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든 대학생이든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국민의 대표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성 여부는 국민이 판단하며, 그들의 자질은 국민들이 판단해야 한다고 믿는다.

때로는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이 최고일 때가 있다

사회는 청년에게 패기있게 도전하라고 한다. 그러나 패기로 도전을 하니 돌아오는 것은 모욕과 경멸이다. 스펙보다 창의성과 실력을 강조하더니 정작 대중에게 연설할 기회조차 없었다. 스펙에 따라 누군가의 인생을 폄훼 당한다면 우리의 삶은 벌 받기 위한 삶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청년들이 만들어가고자 하는 세상에서는 도전하는 그 누구도 그런 비난을 받지 않는 사회이다.

김빈 후보는 페이스북에서 밝힌 바처럼 당에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나나 다른 후보들이 더불어민주당에 당적을 가지고 지키는 것은 이념 때문이지 사람의 명령에 충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이것은 불복이 아니라 부당한 것에 대응하는 당연한 저항권인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청년비례대표를 전면 백지화할 방침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청년에 대한 진정한 본심이 아닐까 싶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고 하지만 나는 당을 떠날 생각은 없다. 노원 병에 출마한 이동학 후보의 한 마디 때문이다.

"착한 당신이 떠나면, 여긴 정말 나쁜 놈만 남아 있는 정당이 될 겁니다."

우리가 떠날 이유는 없다. 우리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 임형찬 페이스북 방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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