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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18일 10시 4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3월 18일 10시 50분 KST

술취한 코끼리가 열차에 치여 죽었다: 영화와는 달랐던 코끼리 '덤보'의 실화

영화 '덤보'

[토요판] 생명: 코끼리 ‘점보’와 내셔널리즘

커다란 귀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기 코끼리 ‘덤보’(점보). 월트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이 코끼리는 19세기 대서양 양안에서 추앙받는 동물 스타 ‘점보’에서 따왔습니다. 사냥꾼에 의해 어미를 잃고 고아가 되어 런던동물원에 실려온 아프리카코끼리. 영국 어린이들의 반대 속에 미국에서 서커스 생활을 시작합니다. 영화에서처럼 점보가 날아다녔으면 어땠을까요. 그의 슬픈 이야기를 전합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 런던의 가장 큰 볼거리는 템스강 북쪽 리젠트 파크에 있는 런던동물원이었다. 세계 최초의 동물 스타가 거기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뒤뚱뒤뚱 걸어가면 타워브리지도 무너질 것 같은 덩치 큰 아프리카코끼리, ‘점보’였다. ‘점보 여객기’, ‘점보 버거’ 등 영어사전에 형용사를 등재한 수코끼리였다.

최초의 동물스타

점보가 19세기 영국의 상징으로 남은 이유는 ‘체험형 동물원’의 개척자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1865년 인도코끼리밖에 없었던 런던동물원에 아프리카코끼리가 입성한다는 소식은 런던 시민을 흥분케 했다. 아프리카코끼리는 인도코끼리에 비해 몸집이 컸다. 영국은 아프리카를 종단하며 식민지 경영에 박차를 가하던 시점이었고, 점보는 영국인 내면의 정치적 욕망을 상징하게 되었다.

런던동물원에서 점보는 케이지에 갇혀 전시되지 않았다. 이것은 관람객에게 동물과의 ‘교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관람객은 2펜스에 롤빵이나 비스킷을 사서 점보의 코에 쥐여줄 수 있었다.(‘코끼리 비스킷’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가장 큰 즐길거리는 점보의 두꺼운 등가죽에 올라타보는 것이었다. 빅토리아 왕족부터 노동자의 아들딸까지 점보를 타는 게 꿈이었다. 어린이 윈스턴 처칠이 점보의 등에 올랐다.

점보는 금세 동물 스타로 떠올랐지만, 그의 사생활은 감추어져 있었다. 불쌍한 코끼리는 밤마다 고개를 처박고 이상행동을 했다. <점보: 허가받지 않은 빅토리아 시대의 환호의 일대기>를 쓴 영국의 역사학자 존 서덜랜드는 2014년 캐나다 일간지 <토론토 스타> 인터뷰에서 “밤이 되면 불안에 빠진 점보는 상아를 땅에 대고 긁어댔다. 사실 점보는 동물원이라는 감옥에 갇힌 코끼리였다”고 말했다.

1860년 북동부 아프리카 에리트레아에서 사냥꾼에게 잡혔을 때, 점보는 1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코끼리였다. 서덜랜드는 ‘아기 코끼리 점보’가 엄마의 몸이 토막 나는 걸 봤을 거라고 추정한다. 코끼리 연구자 이언 더글러스해밀턴이 말한 ‘사냥 트라우마’를 겪었을 것이다. 사냥 과정을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① 아기 코끼리가 도태 과정에서 어미와 가족의 죽음을 목격한다.

② (사냥꾼이) 겁에 질린 아기 코끼리를 가족의 사체에 묶어놓는다.

③ 죽은 코끼리 가족의 사체에서 상아, 고기 및 다른 부분을 떼어낸 뒤 고아 코끼리들을 트럭에 태워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감금한다.(G.A. 브래드쇼, <코끼리는 아프다>에서 재인용)

코끼리 사냥은 어미를 살해하고 상아를 채취하는 동안 어쩔 줄 몰라 하는 새끼를 산 채로 포획해 동물원에 넘김으로써 끝난다. 운송상 이점과 조련의 편리 때문에 동물원은 새끼 코끼리를 선호한다.

이렇게 옮겨진 점보는 런던의 어린이들과 함께 커갔다. 코끼리는 20대 때 ‘머스트’(musth)라고 불리는 특유의 성 성숙기가 찾아온다. 테스토스테론이 평소의 60배 이상 분비되면서, 인간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포악한 사춘기를 보낸다. 보수적 문화의 영국인들은 안전을 택하는 편이다. 가죽 채찍과 못이 달린 갈고리로 때려도 다루기 힘들자, 런던동물원은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점보의 매각을 추진한다. 미국의 최대 동물서커스단 ‘바넘 앤 베일리’를 운영하는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이 1만파운드를 주고 사기로 한다.

영국 전역에서 점보 매각 반대운동이 벌어진다. 런던동물원에는 점보에게 과일, 케이크, 굴은 물론 다양한 술까지 ‘이별 선물’을 주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10만명의 아이들이 빅토리아 여왕에게 점보를 지켜 달라고 편지를 썼다. 신흥 근대국가인 미국이 힘을 키우며 영국을 쫓아오던 시절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동물사(動物史)를 연구한 해리엇 리트보는 점보에 투사된 영국인들의 열광적인 내셔널리즘을 묘사한다.

“점보를 타본 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은 점보를 미국에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대중적인 공분이 이어졌다. (점보의 매각은) ‘동물을 사랑하는 영국인들의 수치’라는 항의 편지가 쇄도했고,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10만파운드를 주고 계약을 해지하자는 여론을 조성하고 있었다.” - 1987년 <동물 자산>

미국에서 제작된 포스터. 점보를 ‘영국의 자존심’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생명권보다 내셔널리즘

1882년 3월 점보는 대서양을 건넜다. 조련사들은 빵과 과자를 위스키에 적셔 주었고, 일등석 승객들이 내려와 샴페인을 주고 갔다. 보름 남짓의 항해 끝 4월9일 뉴욕항에 입항했을 때, 미국은 이미 ‘런던 최대의 애완동물’이 온다며 들썩이고 있었다. 거구를 내리는 하역작업은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더 많은 위스키와 와인을 먹였다. 나무 컨테이너 속에 갇힌 점보는 특수제작된 마차에 실렸다. 16마리의 말이 세계적인 동물 스타를 끌고 ‘바넘 앤 베일리’ 서커스단 본부가 있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으로 향했다.

마술과 곡예, 동물 공연으로 이어지는 미국 최대의 서커스 ‘지상 최대의 쇼’에서도 점보는 으뜸가는 어트랙션(공연물·명물·구경거리)이었다. 서커스단의 대표 바넘은 근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개척한 뛰어난 사업가였지만,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동물 착취자이기도 했다. 영국에서부터 점보는 하루 4ℓ 안팎의 위스키를 마셨다. 바넘은 청교도주의자였지만 못 달린 갈고리 말고도 알코올을 코끼리를 잠재우는 데 이용했다.

미국에 온 이듬해, 점보는 원인불명의 질환을 앓았다. 힘이 떨어지고 시름시름 앓았다. 점보가 죽어도 돈이 될 것이라고 바넘은 직감했다. 박제로 만들면 전시 가치가 10만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친구에게 편지를 쓴 그는 곧바로 박제 제작 계약을 체결한다. 그의 느낌대로 죽음은 일찍 찾아왔다. 1885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세인트토머스에서 쇼를 마치고 철로로 건너가는 가운데 화물열차가 들이닥친다. 서덜랜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점보의 열차사고는 여러모로 미스터리다. 코끼리들은 (철도) 울타리를 가로질러 건너고 있었는데,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때 예정에 없던 화물열차가 다가왔다. 나는 점보가 매우 취한 상태이지 않았을까 의심한다.”"

코끼리 ‘점보’는 1885년 9월15일 캐나다 세인트토머스에서 서커스를 마치고 철길을 건너다가 화물열차에 치여 숨진다. 점보의 죽음 뒤에 사람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점보 나이 스물네살 때였다.

점보가 죽자마자 바넘은 박제 제작업체에 전보를 친다. “바로 가서 가죽과 골격을 수습하시오. 당신이 박제 제작을 훌륭하게 마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또 점보의 몸집을 실제보다 크게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방향으로 (박제의) 이점을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점보를 산처럼 보여주는 겁니다.” (점보의 몸집은 실제 크기보다 과장되어 있었다는 논란이 있었고, 바넘은 이에 대해 얼버무리곤 했다.)

바넘은 점보를 두 개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하나는 골격으로 만들어져 공룡처럼 전시됐고, 다른 하나는 가죽으로 만들어져 박제로 전시됐다. ‘죽은 점보’는 서커스단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나중에는 보스턴 터프츠대학교 박물관과 뉴욕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됐다. 1941년 월트디즈니의 만화영화 <덤보>로 재탄생했고, 지금까지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아기 코끼리 덤보(점보)’로 추앙받고 있다.

인간의 정치는 동물의 몸에 교차된다. 담론이 만들어지고 운동이 벌어지며 감동적 이야기로 재구성되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동물의 몸과 정신, 생명의 권리는 곧잘 무시된다. 해리엇 리트보는 “인도주의는 항상 애국주의 밑에 있었다. 영국인들에겐 서커스 텐트에서 고통을 받는 것보다 미국이 점보를 가져가는 게 문제였다”고 일갈한다.

그러나 타국에서 열차에 치여 죽지 않았더라도 점보는 곧 죽었을지 모른다. 그 비극은 런던동물원에서 점보와 함께 있던 인도코끼리 ‘추니’(Chunee)가 대신했다. 영국 시인 바이런이 “내 집사로 삼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얌전했던 추니는 런던 거리를 행진하다가 함께 걷던 조련사를 죽였다. ‘천벌’을 받을 짓을 한 대가로 주어진 독약을 추니는 거부했고 152발의 총탄을 맞고서도 저항하다가 결국 작살에 찔려 생을 마감했다. 추니에 비하면 점보는 행복하게 죽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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