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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시 해경은 선원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었다

  • 박세회
  • 입력 2016.03.18 07:45
  • 수정 2016.03.18 07:46

세월호 선박에서 해경의 가장 큰 오판 중 하나는 지금까지 4시간이 지나서야 선장의 소재를 파악한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선박의 구조를 잘 아는 사람, 즉 선장과 선원을 현장에 급파하는 게 수색구조의 제1원칙이기 때문이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김춘진 의원 역시 이를 지적했다.

조난선박의 신속한 구조를 위해서는 선장·선원의 도움이 결정적인데도 해양경찰은 경비정 첫 도착 후 4시간이 지나서야 뒤늦게 선장 소재 파악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18일 새정치민주연합 김춘진 의원이 공개한 사고 초기 해경 교신 녹취록을 보면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달 16일 오후 1시 31분이 돼서야 이준석 선장의 소재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연합뉴스(2014년 5월 18일)

그러나 한겨레 21은 지난 2014년 4월 15일 세월호가 침몰하는 현장에 도착한 해경 경비정 123정이 세월호 조타실로 접근하기 직전 해경 지휘부의 지시를 처음으로 공개하며 해경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선장과 선원의 소재 파악에 나섰다고 밝혔다.

한겨레 21에 따르면 작성 주체(해경 본청·서해해경청·목포해경)와 제출 기관(검찰·감사원·국회)에 따라 해경은 서로 다른 녹취록을 5개나 만들었으며 이번에 공개된 교신 내용은 해경이 작성한 녹취록에는 누락되어있었다고 한다.

이날의 교신 내용에 따르면 그날 해경은 분명히 선장을 찾았다고 한다.

09:11 해경 본청 상황실-목포해경

해경 본청 선장하고는 교신해봤나요?

목포 해경 예, 아직 못 해봤습니다. 거기 정신이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승객이 신고를 한 것입니다.

해경 본청 선장하고 직접 교신을 해봐요.

09:15 해경 본청 상황실-목포해경

해경 본청 선장하고 통화해봤어요?

목포 해경 통화 지금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하고 있습니다.

해경 본청 아, 선장하고 일단 중요한 게 가장 선장하고 봐 가지고 선장이 봐 가지고 아주 위험한 상화이라 하면은… 어… 어….

목포 해경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한겨레 21(3월 16일)

목포해경서장 김문홍 역시 선장과 선원을 찾았다.

검사 450명이 탑승한 여객선 침몰 현장에 구조를 위해 출동하여 도착했는데, 탈출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을 발견했다면 어떤 조치를 취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요.

김문홍 제가 만약 지휘관이었다면 배를 접안시켜 대원들을 배로 올려보내서 선장이나 선원을 찾아서 빨리 퇴선을 시키도록 조치를 하고 대공 마이크를 이용하여 경비정 도착했으니 조속히 퇴선하라는 안내방송을 했을 것 같습니다. -(2014년 7월 4일 김문혼 진술 조서) via 한겨레 21(3월 16일)

가장 먼저 구조된 것은 세월호 조타실에 있던 선원들이었나 123정은 구조 당시 선장·선원들이 신분을 밝히지 않아 누가 승무원인 줄 몰랐다고 주장한 바 있다.

속옷 차림으로 세월호를 탈출하는 이준석 선장.

그러나 선원 대부분이 선원 작업복을 입고 있었고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조타실에서 구조된 점을 고려하면 123정은 누가 선장·선원인지 간파했어야 했다.

이준석 선장은 결국 오후 5시 40분 지휘함인 3009함에 승선, 선내 구조를 설명했지만 세월호는 이미 침몰한 뒤여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연합뉴스(2014년 5월 18일)

그러나 한겨레 21에 따르면 당시 세월호 기관장 박기호는 '조타실에서 123정의 타를 잡고 운전하는 분'(해경)이 “지금 구조된 사람들 중에 세월호 직원이 있느냐, 책임자 있으면 이 전화 좀 받아보라.”는 말을 듣고 세월호 기관장이라고 밝히고 휴대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휴대전화 통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르겠는데 관청 사람인 거 같았다.”

아래는 박기호의 진술 내용이다.

검사 전화로 상대방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나요.

박기호 세월호 상태가 어떤지, 승객은 어떻게 됐는지 물어봐서 저는 3층 통로에 있다가 구출이 되어서 내부 상황은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을 했습니다. (2014년 6월2일 검찰 박기호 진술조서) via 한겨레 21(3월 16일)

한겨레 21은 당시 상황에서 남은 것은 선장 및 선원들과 함께 세월호에 진입해 승객들을 탈출시키는 일이었다고 밝히며 "그런데 마침내 승객들을 구조하는 단계로 나갈 조건이 마련된 순간, 123정 정장 김경일은 태도를 바꿨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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