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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답지 않은 한국의 보수 정치

여권 내에서 공천과 관련해서 벌어지는 최근의 행태는 퇴행의 극치를 보여준다. 박근혜대통령의 충복을 자처한 윤상현의원이 당의 대표를 겨냥하여 공천서 "그런 XX부터 솎아내라"고 발언하는 데 따른 오만함은 유신정권 말기 차지철 경호실장의 그것을 연상시킬 정도다. 민주주의 시대에 아직 독재의 망령이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 국민의제
  • 입력 2016.03.17 06:54
  • 수정 2017.03.18 14:12
ⓒ연합뉴스

글 | 한면희(성균관대 초빙교수, 공동선정책연구소 대표)

건강한 사회의 정당은 국민에게 정책을 제시하고 평가에 따라 선거에서 신임을 받거나 표를 얻음으로써 정치 활동을 수행한다. 선진국이 이런 범주에 속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여기에 미치지 못한 상태이다. 우리의 경우, 각 당과 정파가 좋은 정책을 놓고 경합하는 것이 아니라 늘 권력 그 자체를 놓고 아귀다툼이다.

여권 내에서 공천과 관련해서 벌어지는 최근의 행태는 퇴행의 극치를 보여준다. 박근혜대통령의 충복을 자처한 윤상현의원이 당의 대표를 겨냥하여 공천서 "그런 XX부터 솎아내라"고 발언하는 데 따른 오만함은 유신정권 말기 차지철 경호실장의 그것을 연상시킬 정도다. 민주주의 시대에 아직 독재의 망령이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다른 양상이지만 패권 다툼에 따라 분열로 치달은 야권도 국민에게 곱지 않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과거 보수와 진보 세력은 각각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는 데 큰 기여를 함으로써 세계적으로 민족의 자긍심을 북돋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그런데, 왜 오늘의 현실 정치권은 그런 흐름을 이어가기는커녕 발전의 장애로 작용하고 있는가? 한 마디로 각 정당이 정책과 그 원리인 정치이념에 근거하여 활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당은 정당다워야 한다. 보수든 진보든 또는 중도든 고유한 정치색깔을 바르게 가질 때 나라를 조화롭게 이끌 소지가 커진다. 우리의 보수 정치는 무엇이 문제인가? 그래서 향후 어떤 정치이념을 가져야 하는가?

한국의 보수 정치권은 세 가지 색조를 지닌 새, 삼색조로 비유된다. 첫째는 돈과 권력이고, 둘째는 보수적 관행이며, 셋째는 자유주의이다. 이 셋은 서로 얽히기 쉬운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첫째와 둘째 속성이 강해질수록 최상위 계급의 부패로 인해 사회가 혼탁해지기 쉬운 반면, 셋째 속성이 강할수록 선진화로 나가게 된다. 이것은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대혁명 이전의 봉건제 사회는 계급적 신분제라는 보수적 관습을 유지하면서 돈과 권력의 독점을 허용하고 있었던 데 반해, 근대사회는 인간이면 누구나 신분이나 성별, 인종에 관계없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구현하는 자유주의 사상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근대화 이전의 보수는 첫째와 둘째 속성을 가졌다면, 그 이후에는 셋째를 최고의 가치로 분별하고 있다.

보수 정치세력은 자유주의를 핵심으로 삼아야 비교적 건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1차로 자유주의 사상가 존 로크가 밝혔듯이 사회 구성원 누구나 언론과 출판, 집회, 결사, 양심 등의 자유를 행하는 데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론 경제가 중시되는 만큼 시장이 자유롭게 작동되도록 꾀할 것이다. 2차로 자유 존중의 선상에서 전통의 관습을 유지하되, 그렇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개선을 도모하는 데 개방적이어야 한다. 3차로 권력은 국민에게 위임받은 한에서, 즉 헌법이 허용하는 선으로 국한되어야 하고, 돈에 관한 한은 권력의 부정부패로 이어지지 않도록 아메리카를 개척한 청교도의 검소함을 본받아야 한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 우리 보수의 민낯 몇 가지만 살펴보자. 작년 연말에 자행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결정적으로 혼돈을 부추기는 사례다. 서유럽 보수정당의 특징인 자유주의 사상은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적극 허용하고 있고 또 그 선택도 자유롭게 맡기고 있다. 물론 보수적 자유주의라고 하더라도 후세의 교훈이 될 역사적 경험에 대해서는 단호한 편이어서 나치즘의 독재와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죄악이라고 못 박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보수는 이런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 기여에 대해서는 온당하게 평가받도록 해야 하지만, 그 독재에 대해서는 누가 뭐래도 독재라고 규정해야 한다. 이승만의 건국 기여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되어야 하지만, 그 독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자유주의 정신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독재와 쿠데타마저 감언이설로 미화하는 것이라면, 일본의 아베정권이 한국의 국권침탈에 대해 결과적 산업화를 촉진시켰다고 강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박근혜대통령의 공약 불이행은 큰 문제라고 할 것이다. 대선의 최대 공약으로 경제민주화와 사회복지 정책을 내세워서 당선되었다면, 이를 실현하는 데 적극 노력해야 한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야 국민이 납득할 것이다. 그러나 당선 이후 입을 싹 씻는 듯이 보이는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김종인위원장을 나 몰라라 외면하고,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주장한 같은 당 원내대표 유승민의원을 배신의 정치라고 몰아세워 쫓아낸 것은 치명적 과오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왜 대통령이 되고자 했으며, 왜 그런 공약을 핵심으로 주창했느냐고? 최고 권력을 잡아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 오직 그것뿐이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보수 정치세력은 근대화 이전의 단계로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일대 전환을 통해 건국 기여와 산업화의 성취에 뒤이어 목표한 바의 선진사회로 나아가도록 정치적 이정표를 바르게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자유주의를 핵심 기조로 천명하면서 청렴을 미덕으로 삼고 전통의 관습조차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바람직하게 재조정을 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물론 보수적 자유주의 정치가 갖는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바로 잡는 데 기여할 진보정치의 역할을 솔직하게 수용하며 양자 간에 서로 경합적인 조화를 이룸으로써 나라가 한층 성숙해지는 데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이것은 각 정당이 고유의 정치적 이념을 온전하게 구현하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글 | 한면희

현재 성균관대 초빙교수와 공동선정책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과거 생태철학자로서 대안적인 녹색대학의 대표(교수)와 한국환경철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초록문명론>과 <미래세대와 생태윤리> 등의 저서를 출간했고, 환경정의연구소 소장으로 아토피 자녀의 어머니들과 교류하면서 갖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생태의학의 지평을 여는 데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치철학자로서 <제3정치 콘서트>를 출간하는 등 공동선과 사랑의 정치를 본원적으로 실현하는 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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