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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18일 06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19일 14시 12분 KST

남들과 다르게 살려는 병

나는 그녀와 가까운 사이지만 커밍아웃을 하면 안 되겠다 생각하고 계속 미뤄왔는데 결국 나의 레즈비언 인증 사진들을 보게 되었으니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그녀는 심하게 놀랐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진정한 후에 나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그럼 누가 남자 역할이에요?"였다. 나는 웃으며 그런 건 없다고 했다. 내가 이로 인해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내가 얼마나 이런 활동을 함으로써 더 성장해나가는지 말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기무상은) 남과 다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 그게 너무 심해. 너무 극단적이야. 그런 병에 걸린 거 같아."

나는 레즈비언이다.

나는 이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말했고 다들 각각 다른 반응들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 반응들은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었으며 결론은 언제나 훈훈한 응원의 메시지였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커밍아웃을 계속 미뤘던 가까운 한 지인에게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최근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든 그녀는 나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알게 되었고 (연락처 연동!) 내가 올린 연애사진 등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그녀는 나와 가까운 사이지만 내가 커밍아웃을 계속 미뤄온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그녀는 진화론과 빅뱅이론을 믿지 않는다. 종교관 때문이다. 내 생각엔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는 건 인간이라는 고귀한 영역에 감히 다른 동물을 들일 수 없다는 것이고, 결국 정해진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것에 대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빅뱅을 믿지 않는 것은 이 우주는 조물주가 만든 것이고 인간은 그 조물주에 의해 정해진 성(性)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주의 섭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어느 날, 그녀와 내가 함께 길에서 우연히 레즈비언 커플을 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녀는 그 커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가까운 사이지만 커밍아웃을 하면 안 되겠다 생각하고 계속 미뤄왔는데 결국 나의 레즈비언 인증 사진들을 보게 되었으니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그녀는 심하게 놀랐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진정한 후에 나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그럼 누가 남자 역할이에요?"였다. 나는 웃으며 그런 건 없다고 했다.

이왕 이렇게 밝혀진 김에 그녀가 가지고 있는 레즈비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꿔보기 위해, 나는 내가 하는 활동들, 그 활동에 대한 반응들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우리나라에 정말 수많은 레즈비언들이 있고 그녀들이 나의 팟캐스트, 유튜브, 블로그 등으로 큰 위로를 받고 있다고. 하지만 그녀는 계속 "그건 아닌데...", "그건 아니야.",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그게 아니라는 걸.."이라 말하며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나도 계속 나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내가 이로 인해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내가 얼마나 이런 활동을 함으로써 더 성장해나가는지 말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기무상은) 남과 다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 그게 너무 심해. 너무 극단적이야. 그런 병에 걸린 거 같아."

정말 황당했다.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예상했던 반응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그녀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무렇지 않게 지내고 있다. 커밍아웃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꺼내지 않고 있다.

나는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 하는 게 사람이 살면서 가장 하면 안 되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규칙을 어기고 반대 방향으로만 가자는 건 아니다. 현대사회를 사는 인간이라면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모범적인 사례를 배우고 위대한 선구자들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들이 30대에 결혼하니까 나도 그렇게 해야지. 남들이 이런 직업을 가지니까 나도 그 직업을 가져야지. 남들이 입는 옷이니까, 남들이 좋아하니까, 남들이 싫어하니까.

그 "남들"이란 도대체 누구이며 왜 그 정해진 틀안에 그렇게까지 들어가려 하는가?

그녀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어느 정도 인생을 더 산 선배의 입장에서, 괜히 험한 꼴 당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평범하게 살라는 이야기인 것 같다. 하지만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조용히 살다 조용히 가고 싶지 않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삶을 살고 싶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우리는 딱 한 번만 산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 소중한 시간을 남들 따라 하는 데에 쓰지 않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인용구로 글을 마친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너의 시간은 제한되어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무지개빛 일루미네이션, 기무상 인스타그램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