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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세돌 "울면 안 되니까 안 운 거다. 울고 싶지 진짜."

  • 김병철
  • 입력 2016.03.16 17:44
  • 수정 2016.03.16 17:46

알파고와 대국을 마친 이세돌 9단은 16일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일주일 전보다 많이 야윈 것 같다.

아무래도 좀 그럴 것이다.

어제 어떤 마음으로 밤을 보냈나.

형(이상훈 9단), 지인과 같이 있었다. 아쉬웠다. 이기고 싶기도 했고,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초반에 나쁘지도 않았다.

(팬들이 그를 둘러쌌다.) 영웅이 됐다.

제가요? 졌는데요 뭘.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많다.

기자회견에서 '저의 부족함이 드러났다'고 말했는데.

실력은 어쩔 수 없지만, 심리적인 부분(마인드 컨트롤)에서 부족했다.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 5국을 돌아보면, 분명히 '이렇게 두면 좋겠다'는 느낌이 있는데도,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자꾸 다르게 두고 있더라. '알파고가 이렇게 두지 않을까' 의식했다. 바둑을 떠나 수에 대한 인간적인 부분이 부족하지 않았나 한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가.

처음은 아니다. 이번에 극단적으로 나왔다.

이번 대국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것이라는 평이 많다.

제 한계는 나왔다. 인간이라고 특정할 수는 없다. 알파고가 점점 발전하면 인간이 넘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전 세계적인 주목이 부담되지는 않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3연패 뒤 4국에서 거둔 1승의 의미가 크다.

알파고는 완벽하지 않다. 처음에 제가 불리하게 출발한 건 맞는 것 같다. 그다음부터는 제가 부족했다. 알파고는 계속 발전한다. 그러나 알파고가 지금 상태로 멈춰있고 우리가 어느 정도 연구한다면, 알파고가 우리 프로기사들에게 상대가 안 될 것이다. 지금은 알파고의 (인간과 너무 다른) 스타일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당한 것이다. 물론 (인간이 아닌) 제가 당한 거다.

5번기 중 마음에 드는 대국이 있었나.

(딸 혜림 양이 대답했다.) 4국이요. 왜냐하면, 아빠가 다른 날은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그랬는데, 4국에서는 안 그랬어요. (이세돌과 김현진씨는 "다 듣고 있었구나"라며 딸을 다독여줬다.)

알파고가 뜻밖의 수를 둘 때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중계되기도 했다. 알파고가 둔 1국의 102수, 2국의 37수 등이 많이 회자됐다. 결정적인 수였다고 한다.

스타일이 특이해서 놀랐다. 사람이 두기 힘든 수이기도 하다. 그 수들이 결정적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인간이 봐도 2국의 37수는 괜찮아 보인다. 이런 것도 컴퓨터가 둘 수 있구나 생각해서 놀랐다. 미학적인 수였다.

알파고와 재대결을 한다면 어떨까.

구글은 지금 그럴 생각이 없을 것이다. 알파고가 멈춰있어야 재대결을 하든지 할 텐데, 그렇지 않다. 또 솔직히 저보다는 다른 기사가 붙어야 한다. 이번 대국도 정환이(한국랭킹 1위 박정환 9단)가 했으면 이기지 않았을까. 제가 많이 부족했다.

왜 박정환인가.

가장 잘 두는 한국의 대표적인 기사니까. 그러나 알파고가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붙어보라고 조언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다섯 차례 붙으면서 알파고의 공략법에 대해 내린 결론이 있다면.

일단 초반에 붙으면 안 되더라. 싸움을 할 필요도 없고, 하면 안 된다. 국지전으로 가면 거의 안 된다고 봐야 한다. 바둑판이 초반에는 넓다. 경우의 수를 따지지 못하게 돌을 널찍하게 벌려 놓으면 알파고가 당황하더라.

5국은 너무 아깝다는 반응이다. (김현진 씨는 "이세돌 9단이 돌을 거두려고 손을 사석으로 가져갈 때 친한 프로기사가 '울컥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상대가 고수라면 인정하고 들어가지만, 그 건 아니었다. 내가 울컥했다. 울면 안 되니까 안 운 거다. 울고 싶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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