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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16일 12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16일 14시 12분 KST

테레사 수녀는 성인이 아니었다

ASSOCIATED PRESS

올해 9월 4일이면 테레사 수녀는 성인으로 추대된다. 놀랄 일은 아니다. 2003년에 '복자'로 추대되었는데, 그건 성인 추대로 가는 일방통행 도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니다. 테레사 수녀는 성인이 아니었다.

테레사 수녀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은 문제가 많았던 그녀의 활동을 덮어 버리는 결과가 된다. 강요에 의한 개종, 독재자들과의 미심쩍은 관계, 크게 잘못된 일 처리, 그리고 사실은 상당히 나빴던 의료 관리 등이 있었다. 가장 나쁜 것은, 테레사 수녀는 제 3세계에서 자선 활동을 펼쳤던 전형적 백인이라는 점이다. 테레사 수녀의 대중적 이미지는 여기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식민지 시기 이후의 인도와 재외 인도인들의 정서에 헤아릴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오타와 대학교의 2013년 연구는 테레사 수녀를 둘러싼 '이타주의와 너그러움의 신화'를 타파했으며, 신성시되는 테레사 수녀의 이미지는 사실 관계와 맞지 않으며, 약화되어 가는 가톨릭 측의 강력한 미디어 캠페인의 결과였다고 결론내렸다.

테레사 수녀가 죽기 전까지 100개국에 517번 전도를 나갔으나, 이 연구에 의하면 의료 서비스를 찾아간 사람이 치료를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의사들이 관찰한 결과 현장 조건은 비위생적이며 '심지어 부적절했으며,' 식량은 부족하고 진통제는 없었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했던 테레사 수녀의 단체에 자금이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연구자들은 테레사 수녀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독특한 이해' 때문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열정처럼 고통을 받는 것에는 무언가 아름다운 것이 있다. 세상은 그들의 고통에서 많은 것을 얻는다." 테레사 수녀는 크리스토퍼 히친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히친스는 동의하지 않았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는 기독교적 생각의 테두리 안이라 쳐도, 이러한 사고의 밑에는 어떤 비뚤어진 생각이 깔려 있을까?

답은 놀랍지 않다. 테레사 수녀가 활동했던 지역을 생각해 볼 때, 인종 차별적 식민주의다. 100개국을 방문했다고는 하지만, 테레사 수녀는 인도에서 활동했고 인도가 '캘커타의 복녀' 테레사를 낳았다. 그리고 인도에서 테레사 수녀는 역사가 비제이 프라카시가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을 그들의 유혹과 실패에서 구해주려 노력하는 식민지 백인 여성의 전형적인 이미지'라 부른 것이 되었다.

테레사 수녀의 이미지는 식민지의 논리에 완전히 갇혀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갈색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는 백인 구세주의 이미지다.

테레사 수녀는 순교자였다. 인도와 남반구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순교자가 아닌, 백인 부르주아 죄책감의 순교자였다. (프라카시의 말처럼, '빈곤을 생산하고 유지시키는 힘에 대한 진정한 도전'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갈색 사람들을 테레사 수녀는 어떻게 도왔는가? 과연 돕기는 했는지 의심스럽다. 테레사 수녀는 인도의 가장 취약하고 병든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는 '숨은 의도'를 끈질기게 가졌다고 인도 정부 공무원이 작년에 말했다. 테레사 수녀와 다른 수녀들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하려 한 사례도 여러 번 있었다.

테레사 수녀와 그녀가 이끈 단체의 이런 비열함은 가톨릭계가 테레사 수녀를 대단한 존재로 포장하려고 무진 애를 쓰지 않았더라면 하찮은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이러한 캠페인은 테레사 수녀가 살아있을 때 시작되었다. 낙태에 반대하는 영국 언론인 맬컴 머거리지는 테레사 수녀의 대중적 이미지를 자신이 짊어질 십자가로 삼고 1969년에 처음으로 칭찬 일색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1971년에는 책을 냈다. 그는 테레사 수녀를 역사보다는 '신화의 영역'에 놓기 위한 대중의 의지를 불러 일으켰다.

테레사 수녀 사망 후의 복자 추대는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이 갖는 것과 같은 열성에 의해 이루어졌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사망 후 5년을 기다리는 관례를 무시하고 사망한 다음 해에 바로 복자 추대 절차를 시작했다.

이 정도로 대단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라면 정말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겠거니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는 생전에 아이티의 장-클로드 뒤발리에(1981년에 테레사 수녀에게 레지옹 드뇌르를 수여했다)나 알바니아의 엔버 호자 등의 악명높은 폭군들과 친하게 지냈다.

이 중 새로 밝혀진 사실은 없다. 이 대부분이 테레사 수녀가 복자로 추대되었던 2003년에 보도되었고,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격렬한 비판, 터릭 알리의 다큐멘터리 '헬'스 앤젤'에서 밝힌 바 있다. 이것은 고인을 욕보이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가 곧 성인이 된다는 것은 새로이 화를 치밀게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이미지에 따라 신을 만들고 우리를 닮은 것에서 성스러움을 본다. 테레사 수녀의 이미지는 백인 서구 우월주의의 유물이다. 테레사 수녀를 미화하는 것은 인도의 정서를, 나의 인도의 정서를 해친다. 10억 명의 인도인들과 재외 인도인들에게 백인들의 도움을 받으면 좋다는 생각을 강제로 주입하는 일이다. 인도인들은 강제 개종이 허용된다는 걸 배웠다. 노벨 상을 받은 '인도인' 5명 중 1명이 아픈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둔 여성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빈곤은 아름답지 않다. 끔찍하다. 테레사 수녀는 갈색 인간의 수호성인이 아닌, 갭 이어를 맞은 백인들의 수호성인이 될 것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Mother Teresa Was No Saint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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