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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 인터뷰] 경제학 교수 리 배지트는 "동성결혼 법제화는 국가 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동성결혼 이슈와 관련해, 우리는 이런 주장들을 자주 듣곤 한다.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면 피땀 흘려 세운 나라가 무너진다

사회가 문란해지고, 파멸로 치달을 것이다

마치 한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사뭇 비장한 내용들이다.

정말 그럴까?

'성 소수자와 경제' 문제를 연구한 첫 번째 학자로 꼽히는 리 배지트(Lee Badgett)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미국,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스웨덴 등 동성결혼을 허용한 앞선 국가를 연구한 결과를 담은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민음사, 책 정보 보러 가기)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동성결혼을 허용한다고 해도, 한 사회의 근간은 흔들리지는 않는다. 동성결혼을 인정하면 '이성 커플의 결혼 욕구를 감소시키고, 자녀 양육에 대한 부모의 헌신과 관심을 감퇴시킨다'반대론자들의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배지트 교수는 동성결혼과 관련해 '실증적 증거'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동성결혼을 허용한 앞선 나라들을 보면, 오히려..

1980년대 초 최저 결혼율을 기록한 덴마크는 파트너십 등록제를 시행하기 시작한 1989년, 결혼 상승세를 경험하며 지난 30년 중 가장 높은 결혼율을 기록했으며

노르웨이와 스웨덴 역시 동일한 패턴을 보여, 동성 결혼권 발표 후부터 결혼율이 완만하게 상승

했다.

그리고 동성결혼을 한 부부를 두고 '출산'을 하지 않는다며 비난하지만

미국의 경우, 레즈비언 커플의 약 3분의 1, 게이 커플의 약 5분의 1이 '새로운 양육계층'으로 등장

한 것으로 분석됐다

결론적으로, 동성결혼 법제화로 인해 '누군가가 경제적 혜택을 볼지언정 아무도 경제적 손해를 입지 않는다'는 게 리 배지트 교수의 주장이다. 배지트 교수는 2005년 엘리자베스 실버와 결혼을 한 레즈비언이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14일 리 배지트 교수를 만나 추가로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통역: 임유경)

- '동성결혼 법제화'가 사회에 '경제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는데,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설명해 달라.

예를 들어, 결혼식 비용을 들 수 있다. 결혼식은 동성 커플에게도 이성 커플과 마찬가지로 아주 특별한 행사이기 때문에, 기꺼이 수천 달러 이상의 비용을 쓰게 된다. 평균적으로 (커플 당) 2만8000달러 정도이며, 이를 미국 전역으로 확대해 계산해 보면, 매년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 꽃, 웨딩장식, 케이크, 호텔 등등... 이들의 지출이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지 않겠나. 이는 동성결혼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그동안 다국적기업들은 미국 대법원에 자신들의 '기업활동'을 위해서라도 '동성결혼의 법적 인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왜 그랬겠나? 직원들의 생산성이 향상되면 기업활동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 파나소닉, 일본 IBM 등 몇몇 일본 회사가 동성커플을 인정하는 사내규정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런 정책을 통해서 기업들이 얻는 현실적인 효과는 상당하다.

그리고 동성결혼이라는 법적 제도가 새로 도입됨에 따라 동성 커플 당사자는 물론이고 동성 커플 가족들은 좀 더 나은 경제적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는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자신이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통합감, 소속감은 동성애자의 정신 건강을 증진시키고, 경제적 생산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 거꾸로 '성 소수자 차별이 경제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치적인 근거가 있는지?

부정적인 효과의 경우, 양적으로 측정하기 좀 어려운 점이 있긴 하다. 다만, 예전에 뉴욕타임스가 수십 년 동안 관계를 유지해온 동성 커플을 분석해 보니, 동성결혼이 인정되지 않는 탓에 커플마다 5만 달러에서 10만 달러 정도를 불필요하게 지출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동성파트너는 피부양자로 인정되지 않아 의료보험 비용을 두 배로 내야 한다든가 그런 문제 때문에 말이다. 만약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면, 그 비용을 집 사는 데 보탠다든가, 다른 생산적 활동에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유별난 동성애 반대

- 한국은 보수 기독교를 중심으로 동성애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동성결혼의 법제화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질서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피땀 흘려 세운 나라가 동성애로 무너진다" "동성애자는 음란하고 더럽다" 등등 이들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분들에게는 '주장의 구체적인 근거가 무엇이냐?' 고 묻고 싶다. 동성 커플을 법으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이성 커플의 행태가 변하지는 않는다. (앞선 나라를 살펴볼 때) 동성 커플을 인정한다고 해서, 갑자기 이성 커플이 애를 낳지 않는다든가 하지 않는다. 동성 커플 역시 '결혼'에 대해서 (이성커플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무너진다'든가 하는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된다.

- 동성애 반대론자들에게 어떻게 대항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는지?

그분들의 혐오활동, 발언에 대해 대응하는 가장 강력한 방식 중 하나는 '성 소수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 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 소수자의 이야기가 불편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인류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이 하는 이야기는 뭐 특별한 게 아니다. 가족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 이야기, 직장 이야기,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등등의 이야기들. 다만 이성애자와 차이 나는 부분이 있다면, '사회로부터 받는 차별에 따른 고통'과 관련한 이야기들일 것이다.

- 보수적인 환경 속에 놓인 한국의 성 소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웃음) 인생을 살다 보면, 때로는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게 있다. '커밍아웃'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벽장 속에 머무는 것'(성 정체성을 숨기는 것)이 그렇게 잘 사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벽장 속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정신적으로/신체적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받는다.

커밍아웃한 이후에는 여러 가지 변화를 겪을 것이다. 더 자유로움을 느끼고, '사람들이 내가 성 소수자임을 알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을 덜 느끼게 되고. 요약하자면 '좀 더 열린 곳으로 가는 길'이다. 물론, 여러 가지 두려움이 있으실 것이다. 하지만 커밍아웃을 했을 때 얻게 될 '좋은 효과'에 집중하셨으면 한다.

배지트 교수의 일상

- 지금부터는 사적인 질문들을 좀 하고 싶다. 부인과 결혼은 언제 하셨고, 결혼식은 어땠는지 등등이 궁금하다.

하하하하... 저랑 제 부인이 둘 다 동의하는 것은 '결혼하길 참 잘했다'는 것이다.

우리 결혼식은 2005년 몹시 더운 날, 집 뒷마당에서 치러졌다. 가족들 모두를 초대했지만, 그들 중 일부가 왔고,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들이 왔다. 정말, 굉장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저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미국 남부에서 자라, 친척 중에서도 종교적 성향이 강한 분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우리의 결혼식을 지지해 주었다. 그중 1,2명 정도는 결혼식을 불편해했지만,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된 제 부인 엘리자베스는 잘 받아들여 주셨다.

그리고 저희에게는 '국가로부터 우리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게 매우 큰 의미였다. '아, 공식적으로도 완전히 평등을 이뤄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리 배지트 교수(왼쪽)와 엘리자베스 실버(오른쪽) 부부. 두 사람은 서로를 'wife'라고 칭한다.

- 부인 엘리자베스의 매력이 무엇인지 자랑해 주신다면..?

(큰 웃음) 대답을 잘해야겠다. (웃음) 엘리자베스는 아름답고, 매우 현명하다. '정의'에 대한 열정이 굉장히 강해, 많이 존경한다. 저희 둘은 정말 신나게, 잘살고 있는 것 같다. 여행도 많이 가고. 저희는 오랫동안 함께 해오면서, 힘든 시기도 많이 겪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만약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내 삶이 어땠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 커밍아웃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커밍아웃은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과정'이다. 제 커밍아웃은 대학교에 있을 때 처음 시작됐고, 대학원에서도 계속됐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왔을 때는 '아, 가족들에게도 알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가족들에게도 커밍아웃하지 않으면 '전적으로 솔직한 가족'으로 함께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가 처음에 알렸을 때, 부모님은 사실 좀 싫어하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덜 싫어하게 되셨고, 결국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시게 됐다. 특히 제가 엘리자베스와 동반자가 되면서 더 잘 받아들여 주신 것 같다. 저희 결혼식에 아버지도 참석해 축하해 주셨고. 어머니는 그 전에 돌아가셔서 오시지 못했지만 말이다. 저희 형제 자매는 저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제 부인 엘리자베스를 사랑하는 것 같다.(웃음)

- 커밍아웃 전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오히려 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커밍아웃 때문에 해코지나 안 좋은 일을 당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사라졌다. 커밍아웃하고 나자, '나를 좀 더 오픈하고 솔직하게 있어도 되는 공간이 더 많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 커밍아웃하던 시점과 지금, 성 소수자에 대한 미국 사회의 시선이 많이 달라졌음을 체감하는가?

그렇다. 정말 엄청나게 변했다. (웃음) 25년 전과 비교하면. 이런 변화는 여론조사 결과로 확인되고, 제가 개인적으로 경험한 바에서도 그렇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더는 '성 소수자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는다. 예전에는 커밍아웃하면 몸을 움찔하거나 놀라는 그런 반응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제는 자신이 성 소수자를 잘 포용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주려고 애를 쓴다. '우리 오빠도 게이야' '내 여동생도 여자랑 결혼했어' '베스트 프렌드가 레즈비언이야'라는 식의 말을 더하면서 말이다. 굉장한 변화다.

- 그런데, '성 소수자와 경제' 문제를 집중 연구하기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그렇다. 굉장히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다. 1990년대 초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을 읽는데 '동성애자들은 꿈의 시장'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동성애자들이 소득도 높고, 좋은 차를 끌고, 휴가도 좋은 데로 다니고 그래서 동성애자들이 새로운 꿈의 시장으로 떠올랐다는 논조였다. 저는 그 기사를 읽고 굉장히 놀랐다.

성차별을 한번 생각해 보라. 차별을 당하는 주체인 여성은 경제적으로 남성에 비해 상황이 안 좋지 않나. 그런데, 동성애자들은 차별을 받는데, 경제적으로는 잘 산다고? 의아했다. 그때부터 '성 소수자와 경제' 문제를 연구해 보고 싶었고, 이후 이 부분을 연구해 봤더니 기사와는 다른 결과를 얻었다. 동성애자 남성들이 이성애자 남성에 비해 훨씬 소득이 낮다는 사실 말이다.

- 이 연구를 하면서 가장 크게 보람을 느꼈던 때는 언제인가?

성 소수자들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제 연구 결과를 일반 대중/정책 입안자 등 학계 바깥의 사람들에게 알릴 때 가장 보람 있다.

- 성 소수자 운동이 현재 어느 정도의 위치에 와있다고 평가하고, 향후 앞날은 어떻게 예상하는지 궁금하다.

사회마다 변화의 경로는 굉장히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다양한 모습이 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각자의 위치에서 저희가 서로의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예를 들어, 한 국가에서 동성결혼의 법적 지위가 인정됐다고 해서 다른 나라에 같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우리도 저 방향으로 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과 참조 사항을 얻을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많은 국가들에서 젊은 세대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앞선 세대보다 훨씬 열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이끌어나가는 세상이 되면, 성 소수자가 훨씬 더 지지받고, 평등권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리 배지트 교수는?

: 주된 연구 분야는 '성 소수자의 경제적 불평등'이다. △동성애자들이 부자라는 편견을 허무는 연구 △미국-유럽에서의 동성결혼 효과에 관한 연구 △성소수자 배제, 호모포비아/트랜스포비아로 인한 경제적 손실에 관한 연구 등이 대표적인 연구로 꼽힌다. 동성결혼 논쟁 과정에서 미국 의회, 여러 주의 입법기관, 캘리포니아주 법원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 여러 차례 증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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