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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17일 12시 3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18일 14시 12분 KST

성폭력 피해 결과인 출산경력의 미고지가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하는가

혼전 성관계의 의미를 내포하는 출산경력의 미고지가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혼전 성관계의 유무가 혼인을 결정함에 있어서 중대한 사유인 혼인의 본질적인 사항에 해당하는지 검토가 필요합니다. 기존 판례에서 법원은 동 시대의 법률, 도덕, 관습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2013년 서울시의 청소년성문화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고등학생 10명 중 1명 이상이 성관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통계청의 2013년 청소년 통계에 의하면 청소년의 58.4%가 동거에 대해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1. 사건의 개요

한국인 남성(원고)은 국제결혼중개업자의 소개로 베트남 국적의 여성(피고)을 만나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2012. 4. 9. 혼인신고를 마쳤습니다. 피고는 원고와 혼인하기 전에 베트남에서 아이를 출산한 적이 있으나, 원고는 혼인 당시 피고에게 출산 경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피고는 2012. 7. 28.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원고 및 시부모와 함께 생활하던 중, 시부가 피고를 강간하고 강제 추행한 사실로 기소되어 징역 7년의 유죄판결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판결은 항소와 상고가 모두 기각되어 그대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원고는 위 형사사건 항소심 계속 중이던 2013. 8.경 피고가 원고와 혼인하기 전에 베트남에서 자녀를 출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원고는 2013. 8. 28. 사기에 의한 혼인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피고는 만 13세 무렵 베트남에서 소수민족인 타이족 남성에 의해 납치‧강간을 당하고 임신을 하게 된 것이며, 그 후 음주와 폭행을 일삼는 남성을 피해 부모님 집으로 도주해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낳자마자 남성이 아이를 데리고 가 그 후 관계가 단절되었다고 주장하며 혼인취소의 부당함을 다투었습니다.

2. 재판의 경과

1심은 원고의 혼인취소 청구에 대하여 사실혼 전력과 출산 전력은 혼인의사를 결정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원고가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면 피고와 혼인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되므로 민법 제816조 제3호 소정의 혼인취소 사유인 '사기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에 해당된다고 보았습니다. 그 결과 원고의 혼인취소 청구를 인용하고 나아가 원고에게 8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항소심은 혼인의사를 결정함에 있어서 출산경력이 차지하는 중대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 피고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미성년자로서의 납치, 강간을 당하여 출산을 하게 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혼인 상대방인 원고에게 출산경력을 고지할 의무를 면한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아 1심의 판결을 유지했습니다.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전북여성단체연합 등 전국이주여성단체는 2014년 11월 17일 전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성폭력 피해 이주여성에 대한 혼인취소 판결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 한겨레

3. 상고심의 쟁점 정리

상고심의 첫 번째 쟁점은 피고가 아동기 성폭력 피해로 인한 출산경력을 혼인 당시 원고에게 고지하지 않은 것이 '기망'에 해당하는지, 기망에 해당한다면 이를 위법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입니다. 두 번째 쟁점은 일반적인 '출산경력' 자체에 대한 불고지를 혼인취소 사유로 삼는 것은 남녀차별의 위헌적 소지가 있는지 여부입니다.

4. 쟁점별 검토

(1) 성폭력 피해로 인한 출산경력의 미고지를 혼인취소 사유로 삼을 수 있는지 여부

피고는 원고를 적극적으로 기망하지 않았습니다. 고지하지 않은 소극적인 기망행위가 불법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피고에게 출산경력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존재해야 합니다. 피고에게 출산 경력을 고지할 의무를 부과한다면, 이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지할 것을 강제하는 결과를 야기하여 헌법상 보장된 인격권,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현격하게 침해할 것입니다. 따라서 피고에게 성폭력 피해로 인한 출산경력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출산경력을 고지하지 않은 경우에 일률적으로 고지의무를 인정하고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해서는 안 되고, "출산의 경위와 출산한 자녀의 생존 여부 및 그에 대한 양육책임이나 부양책임의 존부, 실제 양육이나 교류가 이루어졌는지 여부와 그 시기 및 정도, 법률상 또는 사실상으로 양육자가 변경될 가능성이 있는지, 출산 경력을 고지하지 않은 것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소극적인 것에 불과하였는지" 등을 면밀하게 살펴서 당사자 일방의 명예 또는 사생활 비밀의 보장과 상대방 당사자의 혼인 의사결정의 자유 사이에 균형과 조화를 도모하여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본 사안과 같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아동성폭력범죄의 피해로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었고, 그 후 자녀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상당한 기간 동안 양육이나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러한 출산의 경력은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당사자의 명예 또는 사생활 비밀의 본질적인 부분에 해당하므로,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2) 출산경력을 혼인취소 사유로 삼는 것이 헌법상 남녀평등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

출산경력이란 과거 아이를 낳은 적이 있는지 여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혼인 및 이혼경력, 사실혼 및 동거여부, 혼전 자녀의 유무, 나아가 그 아이에 대한 실질적‧법률적 양육책임의 여부와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또한 출산경력은 불임, 부부간 성관계 장애와도 무관합니다. 그렇다면 출산경위, 혼전 자녀의 유무, 자녀에 대한 양육책임, 생식능력의 유무와 같이 출산으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문제를 분리해내고 나면 '출산경력'의 유무 자체가 혼인관계에서 갖는 의미란 결국 '혼전 성관계'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혼전 성관계의 의미를 내포하는 출산경력의 미고지가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혼전 성관계의 유무가 혼인을 결정함에 있어서 중대한 사유인 혼인의 본질적인 사항에 해당하는지 검토가 필요합니다. 기존 판례에서 법원은 동 시대의 법률, 도덕, 관습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2013년 서울시의 청소년성문화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고등학생 10명 중 1명 이상이 성관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통계청의 2013년 청소년 통계에 의하면 청소년의 58.4%가 동거에 대해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남녀 대학생 213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혼전 동거에 대해 상관없다거나 찬성한다고 답변한 비율이 65.7%에 달합니다.

이러한 우리사회의 변화하고 있는 개방적인 성인식, 도덕, 성풍속도에 비추어 보았을 때 혼전 성관계의 문제를 혼인의 본질적인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전 성관계를 내포한 출산경력의 존재를 혼인취소 사유로 삼는다면, 이는 생물학적으로 임신과 출산의 부담을 전유하는 여성에게 불리한 법 적용으로서 헌법과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이 보장하는 혼인생활에 있어서의 남녀평등의 원칙을 위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았습니다. 출산경력의 미고지가 기본적으로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한다는 전제하에 본 사안과 같이 출산 경위의 특수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혼인취소 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5. 판결의 의미

만약 대법원에서도 혼인취소 판결을 내렸다면,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인 피고는 더 이상 한국에서 살지 못하고 강제퇴거 됐을 것입니다. 현재 여성이 소지하고 있는 결혼이민(F-6)비자는 한국인과 결혼했기 때문에 부여된 것으로, 혼인취소 판결이 확정돼 혼인관계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체류자격이 부여된 근거가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시부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고 혼인이 파탄에 이른 피고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결과입니다. 반면 혼인취소가 아니라 이혼으로 혼인이 해소된다면 피고는 시부에 의한 강간으로 인해 혼인이 파탄났다는 점을 인정받아 체류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고, 귀화 신청 자격도 얻게 됩니다.

그동안 하급심 판례에서는 혼인경력 및 출산경력의 미고지를 혼인취소 사유로 인정한 사례도, 부정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번 판결을 통해 대법원이 혼인취소의 판단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일반인에게는 혼인취소의 예측가능성을 부여하고 판례의 통일성을 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출산경력 고지 의무를 인정하는 근저에 존재하는 혼전 성관계 문제를 혼인취소사유로 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분석과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아쉽습니다.

글_소라미 변호사

* 이 글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블로그에도 게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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