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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진짜 능력은 바둑판 너머에 있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마지막 발명품'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로봇과 인공지능이 재편할 직업과 산업 지형의 변화는 '발등의 불'이 됐다.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이나 투자의 효과도 제한적이다. 디지털과 인공지능 환경에서 산업의 변화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빠르고 광범하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나 '빠른 추격' 전략도 효용이 떨어지고 있다. 인공지능에 패했지만, 만회하는 방법은 알파고의 결점을 찾아 묘수를 두거나 더 강력한 바둑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다.

  • 구본권
  • 입력 2016.03.16 08:20
  • 수정 2017.03.17 14:12

이세돌과 알파고 간의 다섯 차례 대국은 한국 사회를 일대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스마트폰 없이는 '정상적 삶'이 불가능한 기계 의존적 생활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컴퓨터의 힘에 모두 놀랐다. 더욱이 바둑이 우리 사회에서 40~50대 이상 남성들의 관심 영역이라는 점과 이들이 "컴퓨터가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 최고수를 이길 수는 없다"고 확신해온 집단이라는 점에서 '알파고 충격'은 컸다. 2차대전 이후 번영과 과학기술 우위를 자부하던 미국이 1957년 소련의 첫 인공위성 발사로 '스푸트니크 쇼크'에 빠진 것과 비슷하다.

15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세리머니에서 이세돌 9단(오른쪽)과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왼쪽)가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사용된 바둑판을 들고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충격의 이유

"넉달 전 판후이와의 기보를 보건대 알파고는 내 상대가 될 수 없다. 5-0으로 이길 것"이라던 이세돌이 3연패하는 모습에 수많은 사람들이 망연자실했다. 4국 승리에 환호했지만, 이세돌의 말대로 "한 판만 져도 컴퓨터의 승리"인 게임이었다. 1997년 카스파로프가 아이비엠(IBM)의 컴퓨터 딥블루에 패한 이후 체스계에서 더이상 사람과 컴퓨터의 대결이 화제가 아닌 것처럼, 승부는 끝났다.

대국 규칙을 둘러싼 불공정 논란이나 리턴매치를 통한 설욕 등이 의미 없는 이유다. 알파고는 인간 바둑계를 평정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간주돼온 영역도 인공지능이 더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다. '알파고의 아버지'인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2월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알파고의 알고리즘을 공개했다. 구글은 이번 대국을 통해 개발자들이 발견하지 못한 알파고의 결점을 찾아내고 기술력을 과시해 인공지능에 대한 지지와 신뢰를 확보하고자 했다.

알파고의 능력은 이미 딥마인드가 지난해 2월 <네이처>에 발표한 '신경망 방식의 심층강화학습(DQN) 개발' 논문에서 예고됐다. 컴퓨터에 사람이 일일이 가르치지 않고 규칙을 알려준 뒤 충분한 데이터만 제공하면 패턴을 보고 스스로 학습해 최고 수준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범용 인공지능' 기술이다. 아타리 게임 49종에 적용한 기술을 단기간에 바둑에 접목해, 세계 최고수를 꺾었다. 인공지능의 진짜 영향력은 바둑판 너머에 있다.

예고된 변화

기계가 접수할 영역은 프로바둑에 그치지 않는다. 산업 일반과 대부분의 직업이 영향을 피할 수 없다. 올해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은 주요 국가에서 앞으로 5년 동안 500만개의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되고, 올해 초등학교 입학생 65%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보스턴컨설팅그룹은 "한국이 산업형 로봇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나라이며, 한국은 2025년 제조업의 40%를 로봇으로 대체하는 세계 최고의 로봇 도입국이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지난해 발표했다.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다르파)이 지난해 주최한 '재난 구조 로봇 올림픽'에서 카이스트의 '휴보'가 우승한 데 이어, 구글의 로봇 개발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사람이나 동물처럼 걷고 뛰는 로봇을 만들어냈다. 자율주행자동차(무인차) 경쟁이 뜨겁고 페퍼와 지보 등 가정용 '감성 로봇'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알파고는 자율주행자동차와 로봇에 학습 기능을 지닌 인공지능 두뇌가 탑재되는 미래가 멀지 않았다고 알려준다.

새로운 과제

인공지능이 '인간의 마지막 발명품'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로봇과 인공지능이 재편할 직업과 산업 지형의 변화는 '발등의 불'이 됐다.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책이나 투자의 효과도 제한적이다. 디지털과 인공지능 환경에서 산업의 변화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빠르고 광범하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나 '빠른 추격' 전략도 효용이 떨어지고 있다.

인공지능에 패했지만, 만회하는 방법은 알파고의 결점을 찾아 묘수를 두거나 더 강력한 바둑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다. 하사비스가 대국 전 "알파고 역시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알파고가 이겨도 인간 창의력의 승리"라고 말한 것처럼, 인공지능 시대의 과제는 효율성 높은 로봇의 개발이라기보다 창의적 인간을 육성할 수 있는 교육과 사회시스템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스푸트니크 쇼크로 1958년 항공우주국(나사)과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을 설립하고 과학과 공학기술 교육에 적극 나섰다.

알파고는 두가지 충격적 소식을 함께 전했다. 먼저 사람만의 일일 것이라고 믿어온 지능 게임의 영역을 빼앗고 앞으로는 기계와 일자리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걸 알려줬다. 또 하나는 그 흐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 사회에 '알파고 쇼크'를 던지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산업과 교육을 아우르는 포괄적 사회시스템을 진지하게 고민할 계기를 제공했다.

이세돌은 기계에 맞서 인간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주었고, 우리 모두는 이세돌과 알파고 덕분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게 됐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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