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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이식이 만들어 줄 현실기보 | 알파고 대국 후 단상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와 충격에 대하여, 누군가는 "알파고가 승리하더라도 이는 우샤인 볼트보다 더 빨리 달리는 자전거나 자동차를 만든 것과 같을 뿐이다"라고 달래며 이야기한다. 글쎄다. 그런데 위로하는 그 말이 실은 더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다. "우샤인 볼트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자전거나 자동차를 만든 것"때문에, 더 이상 사람들은 우샤인 볼트처럼/만큼 빨리 달릴 필요를 못 느끼게 되었고 노력도 하지 않게 되었지 않은가. 또 누군가는 말한다. 인공지능이 아니라 '바둑'이라는 게임을 잘 하는 프로그램에 불과하다고.

  • 김상순
  • 입력 2016.03.16 06:24
  • 수정 2017.03.17 14:12
ⓒ연합뉴스

1.

이종이식(異種移植, xenotransplantation)이란 동물로부터 얻어진 세포, 조직, 장기 등을 치료 목적으로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원숭이의 심장이나 골수, 돼지의 판막 등을 인간에게 이식 수술을 하는 것이다. 수술 받은 인간은 처음에는 이식된 장기를 외부물질로 인식하여 면역거부 반응을 일으키는데, 이러한 면역거부반응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면역억제제는 신체의 저항력을 떨어뜨려 쉽게 감염되기도 한다. 또한 동물장기이식의 결과로 인수(人獸) 공통 감염병이 일반대중에게 전파될 위험성도 있다.

그간 인간의 바둑은 삼라만상과 희노애락을 가로 세로 19줄의 공간에 담은 현기(玄機)어린 경기였다. 알파고(AlphaGo)라는 종(種)의 바둑이 인간 종의 바둑 속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모두 신수(新手)에 거부반응을 보였으나, 결국 알파고의 승리결과에 감염되었다. '인공지능의 도전'은 '인공지능에의 도전'으로 끝났다. 1주일 동안 많은 사람들은 충격 속에서도 앞으로의 새로운 변화를 수용할 마음의 준비를 했고 한편으로 새로운 종(種)의 접근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꼈다.

실수와 실착의 기준은 시종(始終) 인간이었다. 실수(失手)로 여겼던 알파고의 한 수가 승리 이후에는 묘수(妙手)로 분석되듯 말이다. '지금 스스로 뒷맛을 없애는 수를 두고 있습니다'라는 해설자 말 속의 '맛'이라는 단어가 예전에는 바둑의 낭만으로 들렸는데, 지금은 알파고 만큼의 정확한 수읽기가 안 되기 때문에 판단이 곤란한 상황을 회피하려는 단어로 들린다. 알파고(AlphaGo)라는 종(種)의 바둑은 우리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이제 '맛이 나쁘다, 좋다'는 표현은 사라질 것 같다. '있다, 없다'의 정확한 표현만 남는다. 바둑의 맛은 바뀌었다. 애매모호(曖昧模糊)함은 여지(餘地)가 아니라 무지(無知)가 되었다.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와 충격에 대하여, 누군가는 "알파고가 승리하더라도 이는 우샤인 볼트보다 더 빨리 달리는 자전거나 자동차를 만든 것과 같을 뿐이다"라고 달래며 이야기한다. 글쎄다. 그런데 위로하는 그 말이 실은 더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다. "우샤인 볼트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자전거나 자동차를 만든 것"때문에, 더 이상 사람들은 우샤인 볼트처럼/만큼 빨리 달릴 필요를 못 느끼게 되었고 노력도 하지 않게 되었지 않은가. 또 누군가는 말한다. 인공지능이 아니라 '바둑'이라는 게임을 잘 하는 프로그램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역시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이 범용(凡用)이 될 수 있어서 더 무섭다. 알파고는 삼라만상을 담을 수 있는 바둑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세상을 분석해낼 수 있겠다고 나는 느꼈다.

2.

바둑용어는 신문기사 등에서도 사건이나 상황을 상징하는 의미로 활용되고,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쓰인다. 바둑은 인생과 현실을 투영(透映)한다. 윤태호 작가의 인기 웹툰 미생(未生)은 제목도 바둑 용어일뿐 아니라 매회 차의 시작은 수순을 담은 기보(棋譜)로 시작되었다. 제1회 응창기 배 조훈현 9단 대 섭위평 9단의 결승 제5국의 기보다. 우승 이후 한국 바둑은 일본과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이 되었다. 이 기보는 이러한 맥락을 담고 있다. 즉, 미생의 각 회차마다 수많은 사건과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역(逆)으로 그 내용을 총합하여 요약하면 결승 제5국의 기보가 상징하는 바와 같아지는 것이다. 미분(微分)의 역은 적분이고 적분(積分)의 역은 미분이다.

미국의 인기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나 '웨스트 윙'의 스토리에 등장하는 갈등의 축과 주요 변수들을 바둑으로 치환(置換)하여 볼 수 있다. '법안 통과에 비토(veto)하지 않기', '정적(政敵) 제거 위해 세무조사 하기', '반대파 의원 불륜 스캔들 폭로하기' 등의 현실 정치 세계의 이슈는 '바꿔치기', '어깨 짚기', '치중(置重)하기', '역 끝내기', '사석(捨石) 작전' 등의 바둑판의 상황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생각을 이어서, 정치를 바둑으로 시뮬레이션해서 이를 현실정치에 응용할 수 있다. 이러한 데이터는 굳이 드라마가 아니라도 현실 세계의 옛 정치면 기사들을 모조리 스크랩해서 분석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의원 한 명 한 명을 바둑 돌 하나로 만들어 국회(國會)라는 이름의 한 판의 여야(與野) 바둑을 둘 수 있다. 의원(議員) 한 점의 행마는 각 지역구라는 또 다른 한 판의 바둑에 등장하는 후원회나 지역 민심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된다. 소셜미디어를 포함하여 온라인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수많은 생각의 파편들은, 민심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데이터가 된다. 지역구라는 한 판의 바둑이 의원 한 점(點)을 만들고, 의원 한 점은 다시 국회라는 한 판의 바둑을 만든다.

예를 들어, 지역구라는 이름의 수백개의 각 바둑판은 역시 각 수십만 판의 요약판이고, 국회라는 이름의 바둑판은 역시 수백 국회의원 바둑판의 데이터로부터 추출 구성되는 것이다. 수천 백 개의 은닉계층(hidden layer)들에 관한 연산의 결과로 나오는 출력계층(output layer)의 예측 결과는 다음날 조간신문 정치 1면의 기사와 동일함을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태평양 건너에서는 열심히 '샌더스', '트럼프', '힐러리' 등의 대선후보들이 쟁명(爭鳴)하고 있지만, 몇 년이 더 지나 다음이나 다다음의 미국 대통령 선거 때는 더 발달된 버전의 알파고(AlphaGo)가 더 많은 데이터를 연산하여 간단히 당선자를 맞혀낼 수 있을 것이다. 돈이든 데이터든, 구글(Google)이 가진 자원(資源)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혹은 무섭게도, 실수(失手)로 여겼던 알파고의 한 수가 승리 이후에는 묘수(妙手)로 분석되었듯, 알파고가 그리 될 것이라 예언하였다 한다면, 그때부터는 사람들은 그렇게 되리라 믿을 것이고 쏠림 현상은 가속될 것이다. 믿을 수밖에 없다. 그 정도의 자원과 자료를 스스로 갖추고 있지 않으면 검증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다. 이리하여 현실기보(現實棋譜)가 만들어 진다.

# 알파고 대국 전(前) 단상

이세돌 9단에게 순장(巡將) 바둑을 권하며 - '인간 대 기계' 프레임에 '한류'(韓流)를 더하기

# 알파고 대국 중(中)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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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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