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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진호가 2등의 기쁨과 고통을 말하다

  • 원성윤
  • 입력 2016.03.15 18:19
  • 수정 2016.03.15 18:20

스포츠는 가치의 무대가 아니다. 스포츠의 목적은 오로지 승부를 가르는 데 있다. 모든 건 승리로 입증된다. ‘1등보다 아름다운 2등’이라는 말은 승부의 결과를 애써 낭만의 영역으로 강등하는 미학적 논리일 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승부의 세계에서 2등에 만족했던 이는 없었다. 간단하다.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도, 이유가 무엇이건 패배는 아픈 것이다. 패배는 끝내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줄곧 견뎌야 하는 것이고, 다 잊었다고 생각했을 때, 불쑥 고개를 쳐들어 서러운 것이다. 그 서러움을 삭이고 또 삭여 내 안에 고이 접어두는 방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는 것뿐이다.

오후 2시22분의 데이트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오로지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온 사내. 그리고 그에게 남은 낙인 같은 훈장 아닌 굴레 같은 ‘2’라는 기록. 이기는 것만이 전부인 게임에서, 늘 2등이었던 플레이어. 도저히 지면 안 되는 승부에서도 종종 어처구니없이 졌던 패배자. 프로게이머 홍진호다.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구성하는 한 요소인 그는 늘 화려했지만, 결정적 순간 늘 그림자로 존재하던 이름이었다. 스타의 전성기가 끝나갈 무렵, 그는 그 팬덤에서 비난의 대명사였다. 그의 별명 ‘콩’에 빗대 ‘콩까지마’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을 정도로 그의 모든 것이 부정당했다. 그 광경은 흡사 한 장르가 몰락하는 책임을 그 장르의 누군가가 대신 짊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연예인’이 되어 돌아왔을 때, 희한하게도 그를 비난했던 코드는 세상을 유희하는 기호가 됐다. 그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사이 세상은 한참 변해버렸다. 늘 그만 지는 것 같았는데 생각해보니 우리 모두 지고 있었다. 그에게만 강렬하게 드리운 것 같던 그림자가 실상은 우리 모두를 덮고 있었다.

그렇게 영광에서 비껴나 있었던 2의 아이콘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으며, 하위문화의 어떤 감수성을 주류화했다. 늘 그보다 빛나는 이름이던 임요환은 결코 이룰 수 없는 지평이었다. 창간 22주년을 맞아 <한겨레21>이 그를 만났다. <월간 잉여> 편집장이자 <수저게임>을 개발한 최서윤씨가 함께한 인터뷰는 정확히 오후 2시22분에 시작했다.

오후 2시에 만나자는 요청이 아직도 많을 것 같다.

지금은 좀 덜하다.

은퇴식 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2등으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람도 기억된다’는 취지였다.

5~6년 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승자만 기억되고 2등은 기억되기 힘들다고 하지만 2등도 많이 하면 기억된다’고 말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연예인이 된 뒤 2로 대표되는 이미지 말고 다른 키워드로 상징되고 있기도 하다.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 시즌1 우승을 하면서 영광스럽고 과분하게도 ‘지니어스’가 됐다. 지금은 좀 애매하지만 모든 수식어가 다 나라고 생각하고 좋게 이해한다. 개인적으로는 ‘다재다능’ ‘만능’ 이런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다. 살면서 제일 탁월했던 게 게임이었는데, 그 분야에서조차 2등이었다. 다른 건 2등은커녕 더 저조했다. 다른 분야도 잘하더라, 이런 소리 듣는 게 목표다.

일도양단의 승부사 마초

홍진호를 치면 ‘딕션’이 연관 검색어로 뜰 정도로 그의 발음은 자주 회자됐다. 하지만 인터뷰 초반 그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발음은 물론 유려한 화술을 선보였다. 그 시절 ‘폭풍 저그’ 홍진호는 맵 전체를 전장으로 만들다시피 하며 몰아치던 스타일이었다. 게이머 홍진호는 후반부의 ‘가난’을 담보로 초반에 모든 자원을 병력화해 일도양단의 승부를 강요하던 마초였다. 게이머 시절 그의 화려한 손놀림에 견줘 다소 어눌하게 들렸던 화법 역시 ‘말의 경연장’이라고 할 방송에 적응해가며 그 게임 스타일을 닮아가는 듯 보였다.

<한겨레21>은 시사주간지의 대명사지만, 지금 시장에서 2등이다. 알고 있었나. 그전에 <한겨레21>을 본 적 있나.

아, 뭐라고 해야 하나. (웃음) 한겨레라는 매체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었고, 부정이든 긍정이든 이미지 자체가 없었다. 인터뷰에 오면서 어떤 매체, 이미지인가를 알아야겠다 싶어 <한겨레21>을 검색해봤다. (일동 웃음) 너무 솔직한가.

프로게이머 시절부터 얘기해보자. 프로게이머로서 ‘이젠 좀 힘들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언제였나. 한 게임팬은 ‘2006년 온게임넷 준결승에서 한동욱에게 졌을 때’를 꼽더라.

굉장히 날카롭다. 그 시기쯤 우승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한동욱 선수랑 붙은 4강에서 3:1로 졌을 텐데, 은퇴를 생각했다. 그때 공군에 게임단이 생기면서 그래도 좀더 해보자, 군대 가서 프로게이머의 연장선을 그어보자 하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공군 시절에도 ‘팀전’을 잘해서 헌신의 이미지를 갖긴 했지만 성적이 썩 좋진 않았다.

공군 시절엔 많이 이기진 못했지만, 임팩트 있는 승리는 많이 했다. 제대하면서는 막 올라오고 있는 뛰어난 신인들을 초월해 다시 올라가기는 힘들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장이 된 거였다. 감독 입장에서, 미래가 있고 가능성 있는 친구가 죽도록 노력하는데 굳이 나를 내보낼 이유가 없지 않겠나. 개인적으로 팬들에게 희망고문을 하는 것도 싫었다. 선수로서의 자존심을 지킨 채 은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홍진호가 평가하는, 진짜 잘하는 것 같은 선수는 누구였나.

게임 좋아하면 다 알겠지만 이영호 선수다. 그 앞에는 이윤열 선수가 그랬다. 게이머 중에도 유형이 있다. 천재형과 노력형. 나는 복합적인 선수였다. 노력도 했지만 노력형에 비해선 덜 시간을 쏟았고, 센스가 없진 않았지만 천재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영호와 이윤열은 정말 천재였다.

이영호, 이윤열 그리고 임요환

3월8일 오후 2시22분, 서울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폭풍 같던 2등에서 돌아와 ‘지니어스’가 된 홍진호를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는 ’페이스북 라이브 중계’로 실시간 방송됐다.

일생의 라이벌 임요환 선수는 어떤 유형인가.

임요환 선수는 철저한 노력형이다. 요환 형은 같은 팀일 때도 있었지만, 정상에 있을 때도 늘 나보다 2~3시간씩 더 연습하던 선수였다. 나는 그렇게 연습하는 걸 비효율적이라고 합리화하곤 했는데, 요환 형은 연습에 모든 걸 투자했다. <더 지니어스>에서 요환 형의 게임하는 센스가 좀 답답하다 이런 말들도 있었는데, 스타일이 그렇다. 나는 즉흥적인 게임을 좋아하지만, 요환 형은 준비 기간이 길수록 게임을 잘하는 스타일이다. 준비 기간이 짧을수록 평범해진다. (웃음) <더 지니어스>는 즉흥적으로 판단해 게임을 해야 했는데 그러다보니 평범한 바보가 됐다.

게이머 홍진호가 굉장히 소모적이고 저돌적인 경기를 했다면, <더 지니어스>의 홍진호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팀전에서 장동민팀에 발목을 잡히기도 했다. 이 장면에서 어떤 올드 게임팬은 굉장한 치욕감을 느꼈다고도 했다.

그때 굉장히 굴욕이었다. 패자의 변명을 조금 해보자면, 우선 장동민씨가 게임을 정말 잘한다. 그리고 오히려 게이머로서의 경험이 문제였다. 요환 형과 1:1 대결을 주로 해오던 상황에서 팀을 이뤄 하려다보니까 상대가 한두 번 실수를 하면 못 믿게 되더라. <더 지니어스>는 서로 갈등하는 게 남한테 노출되면 전략이 간파되는 구조인데, 요환 형과 팀전에서는 자멸을 했던 것 같다.

게이머 시절 홍진호는 변칙을 능란하게 활용하지 않는 플레이어였다. 하늘은 왜 ‘임요환을 낳고 또 홍진호를 낳았는가’의 질문은 결국 이 지점 어딘가에 답이 있을지 모른다. 그의 게이머 경력 후반부에 쌓인 많은 패배 역시 그렇다. 그의 게임은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전투’로 끌고 가고, 지면 깨끗하게 인정하고 물러나는 것이다. <더 지니어스>에서도 그의 스타일은 그대로였다.

“‘동수저’ 정도 되지 않나”

프로게이머와 연예인 생활 중 어떤 것이 더 괴롭고 소모적인가.

프로게이머 쪽이 좀더 힘들었다. 연예계도 힘들다고 하지만 프로게이머는 승부라는 테마가 있다.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바뀌고, 결과에 따라 후회하기도 하고 환호하기도 하며 감정 소모가 심했다. 매 순간 전략을 생각하고, 상대 스타일을 복기하고 내가 뭘 해야 하나를 따지고 경우의 수 속에서 살았다. 연예계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프로게이머는 열광적인 팬덤을 갖고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이 더 ‘셀렙’이다. 레이디 제인과의 계속되는 열애설도 그렇고, 삶은 더 불편해졌을 것 같은데.

불편함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누군가 알아보는 것이 느껴진다. 그럼, 조심해야겠다, 말도 순화시키고 행동도 조심해야겠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는 거 같다.

금욕적으로 자신을 억제하며 사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성취욕보다는 일상적 즐거움을 좇는 스타일처럼 보인다.

어릴 때부터 재밌는 걸 하자는 생각이 강했다. 게이머 할래요, 이럼 바로 뺨 맞는 시대에 게임을 택했다. 그냥 재밌어서. 이후 운이 좋아 여기까지 왔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서 후회하지 않고, 잘못했으면 책임을 져서 좌절을 최소화하자가 삶의 신조다. 그래야 만족스럽다.

재밌어 보여왔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에 여기까지 왔다는 말인가.

아니다. 굉장히 실패를 많이 해봤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프로게이머 홍진호, 방송인 홍진호, 지니어스 홍진호를 기억하는 속에서 실패한 게 기억되지 않을 뿐이다.

2와 관련된 홍진호의 기록은 놀라울 정도다. 둘째아들로 태어났고, 게이머 시절 2등만 22번 했다. 역대 온게임넷 스타리그 다승 2위이며, 최장기간 랭킹 2위였다. 역대 2번째 스타리그 통산 100승,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2번째 선수, 역대 2번째 억대 연봉, 올스타전 최다 득표 2위. 그의 은퇴식은 2시22분에 맞춰 진행됐다.

‘수저계급론’을 아나. 본인이 무슨 수저라고 생각하나.

수저계급론이 요즘 인터넷에서 워낙 유명하니까 안다. 개인적으로 ‘동수저’ 정도 되지 않나 싶다. 일단 가족은 있으니까. 그런데 가족한테 지금껏 원조를 받은 건 없다. 많이 패배해왔지만, 어쨌든 내가 알아서 선택해 즐기면서 왔다는 생각이 강해 자존감은 높은 편이다.

홍진호를 둘러싼 아우라는 패배자들이 감정을 이입하는 문화적 아이콘이다. 즐기면서 왔다는 말은 얼핏 어긋나 보인다. 무엇보다 승부의 세계에서 2등은 괴롭지 않나.

맞다. 괴롭다. 고통스러웠던 기억들도 아직 있다. 힘든 시기도 길었다. 군대 가기 전에 미쳐가지고 매일 술 마시고 그랬다. 그러나 군대에 가서 깨달았다. 어릴 때부터 내가 살아온, 꿈꿔온 이상적인 모습으로 결국 살아왔던 거다. 세상이 1등, 2등을 나누는 거지 내 기준에선 내가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며 뭔가 내려놓게 됐다. 내게 주어진 이미지를 넘어서는 게 아니라 남들 웃을 때 같이 웃자고 생각했다.

‘헬조선’이란 말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성공한 케이스다. 노력이 컸다고 생각하나, 우연이 겹쳤다고 생각하나.

노력한다고 모두가 잘될 순 당연히 없다. 그런데 잘된 사람들은 결국 노력을 한 사람이다. 노력을 빼놓을 수는 없다. 노력은 자신이 아는 느낌이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하는 거다. 잘하고 싶으니까. 2등을 오래 해오며, 매번 우승을 하면 떨어질 날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기대치가 있다, 이런 주문을 걸곤 했다. 패배를 감내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엔딩이 아니라…”

2등이던 프로게이머 시절이 그리운가.

선수였을 때가 즐거웠던 것 같다. 그래도 늘 승부를 안고 살아가던 때가 더 스릴 있었다, 자격지심이나 트라우마의 시기가 있었지만 그때도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연습하고 싸웠던 것 같다.

<응답하라 2002>가 제작된다면, 아마 주인공으로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늘 지는 승부에서 버티며, 끝내 성공했고, 그래서 그 세대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이름이 됐다.

많은 사람이 하는 생각이겠지만, 결국 버티면서 기다리는 것 같다. 영화 <마션>에도 나오지만 결국 살아남는 이유는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아 비행선을 탔기 때문이 아닌가. 실패에 대해 본인을 학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번 실패했다고 망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경쟁인 사회, 일찍부터 좌절이 일상화된 사회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기다려야 때가 온다. 여유를 가지면 누구나 전성기는 오는 게 아니겠는가. 중요한 건 엔딩이 아니라 인생 시나리오 자체를 어떻게 만드느냐 아니겠는가. 소소한 것에 행복한 마음을 갖자고 말하고 싶다.

<월간 잉여> 편집장이 본 홍진호

내가 본 ‘2남자’

스타리그에 열광했던 적은 없다. tvN 예능 프로그램 <더 지니어스>를 보기 전까지 그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프로게이머 출신 방송인이라는 정보만 가지고 있었을 뿐.

<더 지니어스>를 보고 그에게 푹 빠졌다. <더 지니어스> 시즌1에서 그는 패거리 문화와 은근한 따돌림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제작진이 숨겨놓은 ‘필승법’을 찾아내 창의적 플레이를 선보이며 우승에 이르렀다(검색엔진에 ‘콩픈패스’나 ‘5대5명제’를 써넣어보라!).

눈치 보며 다수의 편에 속하는 것, 튀거나 찍히지 않는 것, 즉 ‘처세를 잘하는 것’이 최상의 덕목처럼 인식되는 한국 사회의 지배적 분위기에 거리를 두면서도 빛나는 성취를 이룬 개인의 존재. 희귀하다. 게다가 그에게는 덕후를 불러모으는 데 필수로 요구되는 ‘반전 매력’이 있다! 센스 있고 두뇌 회전이 빠른 것은 분명한데, 말하는 걸 보면 어딘지 좀 모자라 보이기도 한다. 발음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실제로 얼굴 보며 얘기하니 못 알아들은 적은 (하필이면) 2번밖에 없었다.

<더 지니어스> 이후 누리꾼들이 홍진호와 2를 어떻게든 엮어서 놀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니어스 2화 전략 윷놀2 2승 2패’라는 표기나 ‘홍진호가 2등만 22번 하고 프로게이머 중에서 2번째로 억대 연봉을 받았다’는 ‘카더라’부터, 그와 관련된 온라인 게시물에 댓글을 두 번씩 달거나 2월22일에 홍진호를 기념하는 놀이문화까지. 애정 섞인 유희라고 느껴서 나도 동참했다. <월간 잉여> 2주년 기념 내지에 홍진호의 얼굴을 직접 그려넣었다.

그래서 놀랐다. 그의 입으로 직접 ‘2등 농담’이 악의와 멸시가 섞인 비아냥거림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니 말이다. 숨만 쉬어도 까이기에 “억울해도 아무 말 보태지 않는” 것을 택하게 됐고, 자신에게 던지는 농담을 편하게 받아들이기까지 심한 내적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

그의 과거는 생각보다 어두웠다. 사기도 심하게 당했다(하지만 2번 이상은 안 당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대전에서 상경, 게임단에 들어가 공동 숙소에서 하루 한 끼 컵라면만 먹는 생활을 2~3년 했다. 게임에서 탄 상금의 6%만 선수에게 돌아가는 불공정 계약도 승낙했다. 그나마 획득한 상금도 회사가 사라지며 받지 못했다. 숙소에서는 하루 한 끼 컵라면만 지급됐고, 타 지역 출신에 내성적 성격이라 은근히 따돌림도 받았다. 우울증에 걸려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해 ‘올인’한 일이기에 패퇴하여 홀어머니 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그 시기를 홀로 견디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느낀 놀라움도 있지만, ‘그런 과거가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이 어쩜 저리 밝지?’라는 충격이 더 컸다. 이제 그는 남들이 놀리면 한술 더 떠 적극적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재치와 여유를 겸비했다. 행복해지는 기술을 터득한 것 같다.

그를 더 좋아하게 됐다. 그가 기본소득제도까지 지지했으면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최서윤 <월간 잉여> 편집장·<수저게임>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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