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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위해 일주일에 전화 한 통

우울증과 인지저하가 없는 우리나라 노인 만 삼천 명을 3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주1회 전화통화와 월1회 방문왕래를 하면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서 3년 뒤 우울증 발생이 36%나 감소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주1회 전화통화가 월1회 방문왕래보다 우울증 예방효과가 높다는 점입니다. 정 바쁘면 전화라도 자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주 연락드리다보면 가래로 막을 일을 호미로도 막을 수 있습니다.

  • 비온뒤
  • 입력 2016.03.14 10:50
  • 수정 2017.03.15 14:12
ⓒGettyimage/이매진스

글 | 홍창형(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엄마, 난 커서 어른이 되면 엄마랑 꼭 결혼할래요!"

초등학생 둘째 아들이 애교를 부리며 아내에게 하는 말입니다.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허무맹랑한 말이지만 아내는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악의 없는 공수표에 아내의 하루가 행복해졌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도 어릴 적에 어머니께 똑같은 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라면서 착한 아들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세상 모든 자식 마음이 똑같겠지요. 그런데 결혼해서 분가하고 자식이 하나 둘 생기고 밤늦도록 직장 다니면서 바쁘게 살다보니 마음 씀씀이가 달라집니다. '내리사랑',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속담을 핑계로 부모님 소식이 덜 궁금해집니다. 머릿속으로는 부모님 연세가 해마다 많아지지만, 마음속으로는 젊은 시절 건강하고 활기찬 부모님 모습으로만 남아있습니다. 어쩌면 부모님이 노쇠해지거나 병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인구 100명 중 5명은 화병, 10명은 치매, 30명은 우울증, 50명은 수면장애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노인자살률도 10만 명 당 55명으로 OECD 가입국가 중 최고입니다. 우리네 부모님들이 그동안 말씀을 안 하셔서 그렇지 크고 작은 정신건강문제를 속으로만 삭히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15년 뒤 2030년에는 우리나라 인구 4명 중 1명이 노인이 되고, 25년 뒤 2040년에는 3명 중 1명이 노인이 됩니다. 나중에 허둥지둥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차근차근 해결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정부도 노인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겠지만 개인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얼마 전에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40대 후반 남성이 70대 남성과 함께 진료실을 찾아왔습니다. 자기가 보기에는 멀쩡한데 이웃들이 치매 검사 좀 받아보라고 재촉해서 시골에 계신 아버지를 모시고 왔다는 겁니다. 면담을 해보니 벌써 치매가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단계였습니다.

그동안 어머니 말씀대로 정말 잘 지내는 줄 알았다고 한숨만 내쉽니다. 치매약은 살아있는 뇌신경세포에만 작용하니까 중기나 말기단계보다 초기단계에서 치료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치매 치료도 골든타임이 있다는 뜻이지요. 오죽하면 2014년 BBC에서 초기단계의 치매환자를 발굴하여 치료하면 영국 정부가 의사에게 55파운드(한화 9만 5천원)를 포상금으로 준다는 뉴스를 방송할까요.

국가의료제도를 표방하는 영국정부 입장에서는 의사에게 지급되는 비용보다 치매를 조기에 진단해서 초기단계부터 치료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더 큰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지역사회에는 치매말고도 치료를 늦추다 결국 더 큰 손해를 보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손발이 저리고 마비가 와도 자식들 걱정시키기 싫다고 꾹 참고 견디다 덜컥 반신불수가 되어서야 치료를 시작하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뇌졸중 치료제로 쓰이는 아스피린은 불과 100원도 안 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많이 남습니다. 반신불수가 되기 전에 미리 약을 드셨더라면 돌아가실 때까지 거동하시는 데 불편함이 없었을 텐데요.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뇌졸중을 예방한다고 불필요하게 함부로 아스피린을 오남용해서 뇌출혈의 위험이 높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두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다가 벌어진 일들입니다.

노년기 우울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울증이 치매의 위험을 2배 높이고, 사망률 2배 높여도 '늙으면 다 그래, 누구나 다 무기력하고 울적하게 지내지 뭐'라고 생각하며 치료를 받지 않습니다. 노인이라도 밝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것이 정상입니다.

침울하고 무기력하게 사는 것은 우울증 때문이지 늙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가 우울증을 치료한 후부터 저렇게 밝고 활기차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불효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고 얘기하는 자식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정신건강의학과 약물치료에 대한 무지와 불신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울증 약은 내성이 생기지도 않고, 중독이 되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항우울제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때문에 국민 1인당 항우울제 소비량이 OECD 국가 평균의 1/3 수준으로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한국전쟁 이후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OECD 자료에 의하면 2011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의 33%만 중졸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학인 경우가 30%나 되니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올바른 의학정보나 지식을 찾고 배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질병에 대한 무지나 무관심보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자식들에 대한 지나친 배려입니다. 자식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해서 조금 아프면 참고, 더 아프면 더 참다가,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연락을 하게 되지요. 부모라면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믿는 분들이 많은 겁니다. 문제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되는 일들이 많아진다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효'사상을 이용하면 어떨까요? 우리는 서양의 어떤 선진국보다 훌륭한 정신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효는 영어로 filial piety라고 번역되지만, 정작 서양인은 '효'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짠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런 느낌을 말이지요. 다만, 고전적 의미의 '효'는 현대적 상황에 잘 맞지 않는 면이 많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느 누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것처럼 손가락을 잘라 부모의 병을 고치거나, 넓적다리 살을 베어 흉년 때 부모를 봉양하는 행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시묘살이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식의 기준이라면 누구나 불효자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효'가 자식된 도리이지만 실천하기가 어렵다면 누구나 고개 숙이고 죄책감에 살아가야 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거지요. 그래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효자, 효녀의 표상과 기준을 조금만 낮추자는 겁니다. '부모에 대한 공경을 바탕으로 한 자녀의 행위', '자식으로서 마땅히 부모에게 해야 할 도리'라는 '효'사상에서 외형적 거품을 빼자는 겁니다.

고전적 의미의 '효'사상을 현대적 의미의 '효'사상으로 재해석하면 어떨까요?

공자님이 이르길 부모에 대한 신체적 봉양을 뜻하는 양구체(養口體)의 효보다 부모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정신적 봉양을 뜻하는 양지(養志)의 효가 더 중요하다고 설파했습니다. 삼국사기에 지은이란 효녀가 스스로 부잣집에 종으로 팔려가면서 홀어머니에게 쌀밥을 해드리자, 어머니가 '전에는 밥이 거칠어도 달았는데, 요즘에는 밥이 좋은데도 칼로 마음을 찌르는 듯하니 무슨 일이냐?'며 통곡하며 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누구나 쉽게 따라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과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수원시 노인정신건강센터의 <111 플러스운동>을 소개해 드립니다. 1주일에 한 번 이상 부모님께 전화하기. 1달에 한 번 이상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기. 1년에 한 번 이상 부모님과 함께 소풍가기. 여기서 플러스란 결혼한 사람은 양가 부모님께 각자 실천하기란 의미입니다.

물론 이런 내용은 '효'에 대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크게 돈이 드는 내용이 아니라서 마음만 있으면 자신에게 딱 맞는 내용으로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습니다.

전화와 방문은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우울증과 인지저하가 없는 우리나라 노인 만 삼천 명을 3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주1회 전화통화와 월1회 방문왕래를 하면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서 3년 뒤 우울증 발생이 36%나 감소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주1회 전화통화가 월1회 방문왕래보다 우울증 예방효과가 높다는 점입니다. 정 바쁘면 전화라도 자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주 연락드리다보면 가래로 막을 일을 호미로도 막을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자녀가 "엄마 난 커서 어른이 되면 엄마랑 결혼할래요!"라고 공수표를 던진다면, "결혼하고 난 뒤에 전화나 자주 하고 가끔씩 집에 놀러오겠다고 약속이나 하렴"이라고 얘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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