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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성곽국가

나는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의 한국도 일종의 성곽국가 또는 성곽사회라고 생각한다. 성곽을 견고하게 쌓아 외적을 막아야 한다는 사고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의식 속에 뿌리내렸고, 그러한 망탈리테가 다시 우리 안에 수많은 성곽을 쌓아왔던 것이 아닐까. 성곽국가적인 사고는 한국 사회를 폐쇄적으로 만드는 데 한몫했음이 분명하다. 그런 속에서도 소수의 지배층은 암문(暗門)을 통해 서로 교통하며 이익을 교환하고 있고, 민중들은 저주받은 성곽 안에 갇힌 채 어쩔 수 없이 방수(防守)하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지금 우리 사회의 풍경 아닌가.

  • 최범
  • 입력 2016.03.14 08:21
  • 수정 2017.03.15 14:12
ⓒ연합뉴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성곽국가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성곽과 그 흔적만 하더라도 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한국의 성곽은 도성, 읍성, 산성 등 다양하다. 도성과 읍성이 주로 정치적인 목적과 일차적인 방어 기능을 가진다면, 산성은 장기적인 농성을 목적으로 하는 본격적인 전투용 성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강역이 한반도로 한정된 이후, 최대의 과제는 외적으로부터의 방어였고 그리하여 자연히 성곽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런만큼 성곽 그 자체가 이 땅에 최적화된 무기(Warfare)이자 방어체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병기도 칼이나 창과 같은 단병접전용보다는 활이나 화포 같은 원거리 투사병기가 발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임진왜란시 조선군은 근접전에서는 왜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농성전이나 해전과 같은 원격전에서는 우위를 보였다.

그런만큼 이 땅의 전투는 개활지에서의 회전(會戰)보다는 성을 둘러싼 공성전과 농성전 위주로 전개된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고구려의 안시성 전투, 임진왜란시의 동래산성 전투, 진주성 전투, 평양성 전투, 행주산성 전투, 울산성 전투...병자호란시의 남한산성 농성전 등, 과거 우리나라의 전사(戰史) 대부분이 성곽을 중심으로 쓰여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성곽국가화가 가져온 내부적 효과에 있다. 그러니까 성곽은 외적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 달리는 우리 자신을 성안으로 가두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북방의 오랑캐를 막고 중화문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자신이 설정한 문명과 야만의 경계 안에 스스로가 갇혀버리고 마는 역설을 낳기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한국의 성곽도 오랑캐를 막기 위해 쌓은 것이지만, 오히려 우리 자신을 오랑캐로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빚고 만 것은 아닐지.

지금도 제법 많이 남아 있는 한국의 성곽들은 과거 우리 현실에 최적화된 군사시설이자 우리 지형과도 조화로운 아름다운 문화유산임에 분명하다. 나는 한양도성을 비롯하여 한국의 성곽이 만들어내는 경관을 매우 사랑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는 성곽이 우리 사회를 폐쇄적으로 만드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만리장성의 예와 마찬가지로 성곽은 외적을 막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우리 자신을 가두는 감옥의 역할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적 의미에서든 비유적 의미에서든 말이다.

일본의 경우 에도 말기의 병법가인 하야시 시헤이는 '산국(山國)'과 '해국(海國)'을 구분하고, 해국인 일본은 산국과는 전혀 다른 병법을 구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인 해국임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에서 조선 수군에게 궤멸당한 일본이 19세기 서구 해양세력의 도전하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발견함으로써, 외세를 막아내고 주체적인 근대화를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는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의 한국도 일종의 성곽국가 또는 성곽사회라고 생각한다. 성곽을 견고하게 쌓아 외적을 막아야 한다는 사고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의식 속에 뿌리내렸고, 그러한 망탈리테가 다시 우리 안에 수많은 성곽을 쌓아왔던 것이 아닐까. 성곽국가적인 사고는 한국 사회를 폐쇄적으로 만드는 데 한몫했음이 분명하다.

근대화라는 것이 대륙문명으로부터 해양문명으로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제 성곽사회의 한계는 명백하다. 성곽사회는 자폐적인 사회의 다른 이름이며 민족주의의 카스바일 뿐이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폐쇄적인 성곽사회는 사실상 감옥사회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 속에서도 소수의 지배층은 암문(暗門)을 통해 서로 교통하며 이익을 교환하고 있고, 민중들은 저주받은 성곽 안에 갇힌 채 어쩔 수 없이 방수(防守)하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지금 우리 사회의 풍경 아닌가.

나는 모든 부문에 걸쳐 전통적인 성곽사회의 망탈리테를 벗어나는 것만이 한국 사회를 문명화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이상 성곽이 지켜주는 고유한 문명이나 가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있지도 않으며, 그런 생각 자체가 우리 자신을 가두는 감옥일 뿐이다. 모름지기 우리 안의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릴지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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