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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14일 06시 45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15일 14시 12분 KST

우리는 제2의 산업혁명기를 맞이하고 있다

19세기 초 영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등장한 방적기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수공업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기계를 부수고 공장 소유주 집에 불을 지르는 폭동이 일어났었다. 실제로 그 시기에 육체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자본론에도 소개된 바 있는 이 사건은 일시적 해프닝으로 끝났다. 산업혁명으로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새로운 일자리들이 대거 생겨났기 때문이다. 21세기 인공지능의 등장은 제2의 산업혁명을 예고하고 있으며, 200년 전 기계가 육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듯이 오늘날 주된 산업 직종인 지식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인공지능이 대치할 것이란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연합뉴스

글 | 맹성렬 (우석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최근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관련으로 여러 언론 매체들과 인터뷰를 했다. 이세돌의 낙승을 공언했지만 현재까지 상황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세돌이 3연패 끝에 한판을 이겼지만 대세는 인공지능에게 있다고 보인다. 이번 이벤트는 처음부터 구글의 인공지능에 대한 자신감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시연장으로 기획되었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아직까진 인공지능보다 인간의 직관이나 판단이 우월하다고 주장했던 나와 관련 학자들은 아연실색이다. 이세돌이 연거푸 알파고에게 패하면서 인간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19세기 초 영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등장한 방적기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수공업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기계를 부수고 공장 소유주 집에 불을 지르는 폭동이 일어났었다. 실제로 그 시기에 육체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자본론에도 소개된 바 있는 이 사건은 일시적 해프닝으로 끝났다. 산업혁명으로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새로운 일자리들이 대거 생겨났기 때문이다. 21세기 인공지능의 등장은 제2의 산업혁명을 예고하고 있으며, 200년 전 기계가 육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듯이 오늘날 주된 산업 직종인 지식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인공지능이 대치할 것이란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세계경제포럼의 전망에 의하면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때문에 향후 5년간 700만여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반면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고작 200만 개뿐이라고 한다. 낙관론자들은 2세기 전 영국에서 있었던 폭동을 예로 들면서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오늘날의 신산업화 물결도 새로운 일자리를 대거 확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인공지능과 첨단로봇의 등장이 미치는 영향력의 범위가 과거처럼 블루칼라 노동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화이트칼라 노동자와 약사, 변호사, 회계사, 심지어는 의사 등과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까지 미칠 것이라는 데 있다. 그럼에도 낙관론자들은 여전히 주장한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더 이상의 새로운 제품이나 새로운 욕구가 생길 여지가 없는, 그야말로 더 바랄 것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조건이 충족돼야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수없이 많은 새로운 것들을 욕구하고 있고, 새로운 서비스가 충족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맞는 얘기처럼 들린다. 그런데 여기엔 중요한 대전제, 즉 미래의 욕구들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분출되고 정의로운 시스템에서 제어될 수 있다는 견해가 빠져 있다. 마냥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것은 새로운 기술들이 신자유주의 물결과 결합하여 삐뚤어진 권력과 탐욕스러운 대자본의 제어할 수 없는 욕망 충족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런 제2의 산업혁명에서 요구되는 인재상을 제대로 정립하고 이를 위한 교육에 제대로 투자하고 있느냐는 사실이다. 선진국들이 어떤 대응방안을 마련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현실만을 놓고 본다면 아주 암담하기 그지없다. 인공지능을 개발하여 응용하거나 이를 활용한 신산업에서 종사하려면 인공지능이 미쳐 따라올 수 없는 인간 특유의 창의성과 통찰력이 요구된다. 이런 능력의 확보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언감생심이다. 학교에서는 더 이상 학생들이 앞으로 살아갈 사회에서 거의 불필요해보이는 지식들을 주입하고 이를 제대로 암기하고 있는지 여부로 그들의 등급을 매기는 바보 같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교과서 국정화 사태에서도 보듯이 오늘의 한국사회는 미래를 적극 대비하기 위한 교육에 대한 고민보다는 유신이나 일제 강점기 시대에나 어울릴 것 같은 박제된 지식의 세뇌화에 올인하는 과거지향으로 가고 있다.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그 승부를 떠나서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적인 대결을 기점으로 한국 교육의 미래에 대해 모두 머리를 맞대고 숙고해봐야 한다.

글 | 맹성렬

현재 우석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중.

영국 Cambridge University 공학박사.

경실련 과학기술위원회 정책위원, 중앙위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기술인문융합창작소 연구위원.

저서: 『아담의 문명을 찾아서』, 『과학은 없다』, 『UFO 신드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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