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현미가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독약이라고? 2편

통곡물이 가진 화학물질 배출 능력은 우리 조상이 살던 그 시절에는 의미 없는 일이었다는 점입니다. 아니 오히려 이 능력 때문에 통곡물을 멀리했을 겁니다. 사람들은 현미 안의 피틴산만 가지고 필수미네랄의 흡수를 방해한다고 걱정하지만 리그닌도 똑같이 흡수를 방해합니다. 아니 방해하는 정도로만 보자면 리그닌이 피틴산보다 훨씬 더 강적이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화학물질에 오염이 된 상태로 살 수밖에 없는 현 시점에서는 통곡물이 가진 바로 그 능력 때문에 통곡물이 우리의 건강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고 현미가 사람을 서서히 살리는 이유가 됩니다.

  • 이덕희
  • 입력 2016.03.14 07:26
  • 수정 2017.03.15 14:12
ⓒOkea

* 이 글은 <현미가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독약이라고? 1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첫 번째 글의 댓글들을 보니 데뷔전을 아주 화끈하게 치른 듯한 느낌이네요^^. 제 생계와 관련된 급한 일들 좀 처리하고 다음 주쯤이나 두 번째 글을 올려볼까 했었는데 댓글들을 쭉 보고 있자니 이 글을 빨리 마무리하는 편이 저의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글도 첫 번째 글만큼 긴 글이 될 것이기 때문에 긴 글 그리 즐기시지 않은 분들은 살포시~ 그냥 지나가 주세요^^.

제가 지난 글에서 현미에는 우리를 진정으로 병들게 하는, 몸 밖으로 잘 빠져나가기 힘든 다양한 화학물질들을 흡착하여 배출하는데 효과적인 특별한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고 적었는데요, 오늘은 이어서 현미, 아니 좀 더 넓게 통곡물의 어떤 성분이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인지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드리도록 할게요.

먼저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노출되는 유해화학물질의 종류는 수백 가지, 아니 수천 가지는 족히 넘을 건데요.. 먹는 것, 마시는 것, 숨쉬는 것, 바르는 것, 온갖 것들로부터 수많은 극미량의 화학물질들이 끊임없이 우리 인체 내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 대부분이 20세기 이후 인간들이 실험실에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낸 것들이죠. 이러한 man-made chemicals들은 식물성 식품 안에 다량 포함되어 있는 파이토케미칼들, 즉 자연이 만들어낸 화학물질들과는 달리 동물과 식물의 상호진화과정 중에 경험할 수 없었던 완전히 낯선 종류라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보통은 백 개가 있든, 천 개가 있든 허용기준 이하 라면 안전하지 않나? 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허용기준 이라는 것은 화학물질이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매우 비현실적인 조건하에서, 용량이 높으면 높을수록 반드시 더 해롭다는 대전제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인데요, 첫 번째 조건의 어이없음이야 제가 굳이 설명 드리지 않아도 될 것이고 두 번째 대전제를 뒤흔드는 연구 결과들이 최근 많이 나오고 있죠. 즉, 현재의 화학물질 허용기준이 우리의 건강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랬으면 참 좋겠다는 우리의 순진한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인간을 비롯하여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진화과정 증 획득하게 된 핵심적인 생명현상 중 하나로 외부이물질(xenobiotics)의 배출능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몸에서 만들지 않은 외부이물질들이 들어오면 가능한 한 빨리 몸 밖으로 내보기 위한 여러 가지 대사 반응들이 줄지어 일어나게 되죠. 처리가 순조롭지 못한 것들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전한 신체 장기에 보관을 해 두고요.

배출의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 우리가 노출되는 화학물질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주로 신장에서 만들어지는 소변을 통하여 밖으로 내보내어지는 놈들이 있고 주로 간에서 만들어지는 담즙을 이용하여 대변을 통하여 밖으로 내보내어지는 놈들이 있죠. 숫자로만 본다면 소변을 통하여 배출되는 종류들이 더 많지만 문제는 대변을 통하여 나가는 종류들에서 주로 발생합니다.

대변에 비한다면 소변으로 배출되는 놈들은 정말 거저 먹기예요. 일단 신장에서 걸러지면 그대로 방광으로 직선코스로 흘러가고, 기다리고 있다가 찼다는 신호가 왔을 때 힘만 한 번 주면 바로 상황 종료 잖아요. 전립선비대증 같은 지병만 없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쏟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변으로 배출되는 놈들은 달라요. 움직이기 싫어하고 거친 음식을 꺼리는 현대인들이 가진 생활습관상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이 놈들이 내 몸을 떠나는 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가 없어요.

대변을 통하여 나가는 종류 중 대표적인 것으로 잔류성유기오염물질(Persistent Organic Pollutants, 지금부터POPs라고 줄여 부를께요)이라고 불리는 화학물질들이 있습니다. POPs는 한 두 가지 특정 화학물질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요, 환경 내에서 잘 분해되지 않으면서 강력한 지용성을 가지고 생명체의 지방조직에 축적되고 먹이사슬의 윗 단계로 갈수록 농축되는 그런 특성을 가진 수많은 화학물질의 통칭입니다. 일단 인체 내로 들어오면 대사가 잘 되지 않고 반감기가 무지하게 길어요. 몇 년에서 몇 십 년까지 이르는 종류들도 있거든요 (사람들이 몸에 축적된다고 두려워하는 중금속 같은 것들, 반감기 기껏해야 몇 주에서 몇 개월 정도입니다). 최근 "아주 낮은 농도의 POPs"에 대한 "장기적 노출"은 매우 다양한 질병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많은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고 있죠. 그리고 POPs뿐만이 아니에요. 중금속들 중에서도 특히 인체에 해로운 종류들이 주로 대변으로 배출됩니다. 예를 들면 생선에 많아서 임산부들이 많이 먹으면 태아의 뇌 발달에 영향을 준다는 유기수은 같은 것이죠. 유기수은도 역시 지용성이구요. 즉, 우리의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대변으로 나가주어야 하는 놈들이 상대적으로 더 나쁜 놈들이 훨씬 많다는 거죠.

해부학적으로 담즙이 나오는 장소가 항문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었더라면 대변으로 나온다는 그 놈들도 처리하기가 그나마 좋았을 텐데요, 아쉽게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체에서 담즙이 나오는 장소는 항문에서 정말 멀리 떨어져 있는, 바로 소장이 시작되는 그 언저리 지점이거든요. 담즙이 나오는 가장 큰 목적이 화학물질 처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그 안에 있는 지방성분의 소화를 도와주기 위하여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죠.

혹시 사람의 장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소장길이가 평균 7미터예요. 대장길이는 평균 1.5미터이구요. 즉, 담즙을 통하여 화학물질들이 일단 나갔다 하더라도 최종 산물인 대변으로 빠져 나오기까지 이 놈들이 거쳐가야 할 길이 천만리 만만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소장과 대장이 어디 고속도로처럼 아래로 일사천리로 쭉쭉 뻗어있나요? 수많은 지점에서 꺾이고 돌리고 뭉치고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고.. 그리 그리 거쳐 마지막으로 대변에 무사히 섞여 변기 내로 투하되어야만 드디어 담즙으로 나온 화학물질들이 우리 몸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겁니다.

그 긴 과정을 거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설상가상으로 그 중간에 아주 골치 아픈 복병이 하나 도사리고 있어요. 담즙으로 분비되는 이 놈들을 장내에서 누군가가 확실히 붙잡아놓고 있지 않으면 소장 끝에 가서 그만 다시 몸 안으로 재흡수가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 좁고 힘든 7미터를 간신히 내려와 이제 널널한 대장 1.5미터만 무사히 통과하면 대망의 항문이 기다리고 있는데 소장 끝에서 몸 속으로 다시 흡수되어 버린다면 정말 허탈하지 않겠어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담즙이 흘러나오는 그 시점, 바로 우리의 장내에는 우리가 먹는 음식물과 같이 섞여서 들어오는 정말 수많은 합성화학물질들이 함께 존재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가공식품 안의 식품첨가물이나 MSG 같은 것만 상상하실지도 모르겠는데요 이런 것들은 문제의 일부 중 일부일 뿐이에요. 가공식품이 아닌 자연식품에도 수많은 화학물질들이 포함되어 있거든요 (현미안의 중금속과 농약도 그 예 중 하나일 뿐이죠). 현대 사회가 환경, 즉 물, 공기, 토양으로 쏟아내는 화학물질의 종류는 정말 상상불가로 많은데요 그런 종류들 중 특별히 해로운 놈들이 혼합체의 형태로 먹이사슬을 통하여 농축되고 이들은 우리가 먹는 식품들을 통하여 항상 우리 장내로 들어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먹는 음식과 함께 들어온 이들도 누군가가 장관 내에서 붙잡고 있지 않으면 쉽게 인체 내로 흡수가 되어버려요.

즉, 장내에 존재하는 화학물질들을 인체에 흡수되지 않게 붙잡고 대변으로 쉽게 빠져 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그 누군가의 존재가 정말 중요하다는 점, 이제 실감이 나시죠?

실제로 이와 같이 담즙을 통해서 나오는 화학물질들 그리고 음식을 통하여 들어오는 화학물질들을 흡착하여 대변으로 빠져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꽤나 있었어요. 숯이니 스쿠알렌이니 클로렐라니 하는 몇몇 항간에 유명한 건강보조식품들이 이러한 범주에 속하죠. 그러나 제가 판단하기에 현실에서 제일 의미 있는 방법은 바로 매 끼니때마다 통곡물 안에 있는 식이섬유를 먹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식이섬유라는 것은 많은 식물성식품에 기본적으로 포함된 성분이고 종류도 아주 많죠. 그런데 왜 하필이면 통곡물 안에 있는 식이섬유냐구요? 바로 통곡물에 들어 있는 식이섬유가 POPs와 같은 지용성 화학물질들과 흡착력이 가장 좋기 때문입니다. 중금속에 대한 흡착력도 당연히 좋고요. 반면, 다른 식물성식품들이 가진 흡착력은 이에 훨씬 더 못 미칩니다. 이러한 통곡물의 흡착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성분이 바로 리그닌(Lignin)이라고 부르는 물질인데요. 리그닌은 보통의 식이섬유와는 성질이 좀 달라요. 많은 식이섬유들은 다당류 탄수화물의 형태이지만 리그닌은 페놀 중합체의 형태이고 그 자체가 지용성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역시 지용성인 유해화학물질들에 대한 흡착력이 다른 식이섬유보다 더 좋을 수밖에 없구요.

그리고 또 매우 중요한 점 하나가 리그닌은 대장 안의 미생물들이 발효를 시킬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다당류 탄수화물인 다른 식이섬유들은 화학물질들을 흡착해서 대장까지 간신히 내려온다 하더라도 대장 안의 미생물들에 의하여 쉽게 발효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그나마 흡착되어 있던 화학물질들이 분리되면서 대변으로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그러나 리그닌은 발효가 되지 않기 때문에 흡착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대변으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리그닌이 사람을 서서히 죽인다는 현미의 속겨 안에 듬뿍 들어 있습니다. 그 글의 마지막에 건강에 가장 좋다고 주장하는 5분도쌀은 바로 이 속겨를 없앤 상태입니다. 저는 속겨를 없앤 현미를 먹는 것이 우리의 현실에서 어떤 대단한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속겨를 없앤 현미 안에 많이 들어 있다는 다양한 영양성분들이야 얼마든지 다른 식품으로 대체 가능하거든요.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 드리고 싶은 점은 통곡물이 가진 이러한 화학물질 배출 능력은 우리 조상이 살던 그 시절에는 의미 없는 일이었다는 점입니다. 아니 오히려 이 능력 때문에 통곡물을 멀리했을 겁니다. 사람들은 현미 안의 피틴산만 가지고 필수미네랄의 흡수를 방해한다고 걱정하지만 리그닌도 똑같이 흡수를 방해합니다. 아니 방해하는 정도로만 보자면 리그닌이 피틴산보다 훨씬 더 강적이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화학물질에 오염이 된 상태로 살 수밖에 없는 현 시점에서는 통곡물이 가진 바로 그 능력 때문에 통곡물이 우리의 건강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고 현미가 사람을 서서히 살리는 이유가 됩니다.

사람들은 어떤 식품이 좋다고 하면 100% 완전무결한 좋은 음식이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식품은 없습니다. 현미도 마찬가지로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는 식품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두고 어디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하는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어떤 식품이 가지는 최종 가치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경우든 현미가 절대선이라고 이야기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현미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꼭꼭 잘 씹어서 드셔야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치아가 부실해서든, 성격이 급해서든 어떠한 이유로든 현미를 잘 씹지 못하는 분들 그리고 아무리 잘 씹어도 소화가 안 된다는 분들 굳이 스트레스 받아 가면서 반드시 현미 드셔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통곡물만큼은 아니겠지만 식이섬유, 특히 물에 잘 녹지 않는 식이섬유가 많이 함유된 다른 식물성 식품들을 넉넉히 드시면 어느 정도는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최종적으로 "현미는 사람을 천천히 죽이는 독약이다"이라는 글을 본 저의 소감을 요약하자면 현재 먹는 것과 관련된 많은 논란이 그렇듯이 이 역시 "Half-truth is often a great lie"라는 말로 결론 내릴 수 있을 듯합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이덕희 #현미 #호메시스 #라이프스타일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