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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와 그가 남긴 글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시인 윤동주의 현실인식이다. 그는 당대의 지식인이다. 자신이 세상을 바꾼다고도 믿을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의 평생의 벗 송몽규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고작 자기 안에서 타오르는 시를 적었다.

  • 남궁인
  • 입력 2016.03.14 07:56
  • 수정 2017.03.15 14:12

1.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는 약간의 실망스러움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너무 기대하는 바가 컸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그리던 완벽한 윤동주의 모습을 찾고자 이 영화를 보았다. 완벽한 서사와 폭발하는 감정의 분출을 보길 원했으며, 윤동주의 시구대로 '저희가 영원히 슬프'*려고 했다. 슬픔을 각오한 사람을 울리는 것은 쉽다. 윤동주와 그의 시구를 영화에 차용한 것만으로 반은 내가 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 했다. 내가 진짜 윤동주를 보았다고 생각했다면, 영화 처음부터 울기만 했을 것이다. 나는 평생 실존하는 그를 그리며 글을 썼다. 몇 천 번 읊어댔던 시를 낭송하는 진중한 목소리와, 고독한 표정을 나는 그려 왔다. 하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영화 속 그에게 이입이 부족했다. 영화적인 장치와, 연기에서 몇 가지를 찾을 수 있을 테지만, 낱낱이 분석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영화 안에서 실존하는 인물이 그 이름을 처음 어색한 목소리로 발음했을 때부터 이입의 부조화는 시작된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눈언저리에만 눈물이 고인 채, 그것이 바깥으로 흐르지는 않은 상태로 영화관 밖을 나섰다.

2.

나는 당연히 윤동주를 사랑했다. 문학을 막 접한 아이에게 윤동주의 깊이는 충격적이었다. 이 사진에서의 시집은, 내 인생의 기억 속에서 의지를 가지고 맨 처음으로 산 책이다. 93년 발행이 찍혀 있으니, 11살 때다. 몇 번을 되풀이해 읽었는지 모른다. 나는 반 이상의 시를 외워버렸다. 그 무렵 적은 일기장에는, 의도적으로 '얼굴'을 '얼골'로, '내린'을 '나린'으로, '위에'는 '우에'로 표기하는 부분이 있다. 문장의 말미가 '게외다'로 끝나기도 한다. 더불어, 그 기록에서 나는 '홀로 침전하'**거나, '곱게 풍화작용'***하기도 했다. 철 지난 단어의 아름다움과, 윤동주의 깊이를 미약하게 동경하던 초등학생이었던 것이다. 이 시구를 뒤섞어 글을 적는 습관은 상당히 오래 기록에 남아 있다. 나는 그렇게 윤동주를 사랑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시인과 술을 마시다가, 술자리에서 갑자기 윤동주의 시를 낭송하기로 했다. 그는 <자화상>을 골랐고, 나는 주저 없이 <별 헤는 밤>을 골랐다. 이 시를 중학교 1학년 때, 직접 월광 소나타를 연주해 녹음한 테이프를 들고 가서 틀어놓고 암송한 기억이 있다. 그 전문이다.

별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하나에 추억과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과

별하나에 동경과

별하나에 시와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짬,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어느 영화 평론가의 말처럼, 별을 볼 수 없는 시대라서 나는 그를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술기운이 완연한 상태에서 이 시구를 낭송해가자, 처음 이 시를 보았을 때의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연약한 시세계의 부끄러운 아이가, 느낄 수 있었던 최대한의 감정이 바로 이 시였고, 이것은 부끄러움 그 자체였다. 인간의 부끄러움은 이렇게 커다랗고, 찬란하고, 아름다울 수가 있다.

이 시는 윤동주의 남겨진 시 중에 가장 길다. 이 긴 과정에서의 기승전결은 완벽하다. 별을 헤던 청년은 세 번째 연에서 자기의 내면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시작되는 감정의 고조. 동일한 시구의 반복과 평서문의 나열로 시의 구조를 파괴하는 서술. 이러한 기법의 문학적이고, 미적임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긴 서술에도 시에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패, 경, 옥, 강아지, 토끼, 노새... 평범한 단어 하나하나가 영원히도 슬프다. 시인은 그 와중 허튼 음소 하나조차 발음하지 않는다. 시를 노래하는 그와, 시 안에서 무엇인가를 불러보는 그가 대비된다. 그 간극에서 그의 말소리가 분명히 들려온다.

그리고 결말에선 그의 부끄러움이 시작된다. 지극히 부끄럽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직접적으로 노래하지 못한다. '흙으로 덮어 버린 이름자' 나,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나, '자랑처럼 무성한 풀'에서야 그의 부끄러움을 표현할 수 있다. 비교하는 대상이, 그가 자신을 느낀 만큼 미천하다. 숨기지만 그래서 더욱 크나큰 부끄러움. 어린 나와 현실의 나는 동시에 울먹였다.

나는 그 뒤의 술자리에서는 울음을 참고, 그간 외웠던 윤동주의 시구를 머릿속에서 뒤적거릴 뿐이었다.

3.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시인 윤동주의 현실인식이다. 그는 당대의 지식인이다. 자신이 세상을 바꾼다고도 믿을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의 평생의 벗 송몽규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고작 자기 안에서 타오르는 시를 적었다.

그래서 일본군 간수가 시구를 해석해서 들이밀 때 그의 난감한 표정을 나는 엿보았다. 그는 써야 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들끓는 글귀를 꼭 받아 적어야 했다. 하지만, 쓰면 죽는다. 이런 일이 닥쳐와 내 목에 칼을 들이댈 것이다. 그래도 쓴다. 어차피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이었다. *****잃어버렸던, 내 의지로 탄생한 가장 아름다운 부끄러움을 적어야 한다.

그는 결국 그 글을 종이로 옮겨 적었고, 그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되려 그것이 '쉽게 씌여지는 것에 부끄러'**워 하며 죽었다. (<쉽게 씌여진 시>는 그의 마지막 유작이다.) 영화는 그것을 의도한다. 마지막에 죽음을 직감한 그는 이런 방식으로 말한다. '그렇소. 나는 그림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 허나 나는 그것을 스스로 적었소. 무엇이든 나는 부끄러우니 기꺼이 죽겠소. 하지만 이것은 나의 의지로 행해진 것이니, 당신들의 의지대로 여기 씌여진 것을 인정하지 않겠소. 다만, 나는 죽겠소.'

4.

나는 어두운 집에 돌아왔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 피로한 일이라 어두운 채로 두었다. 밝은 방은 낮의 연장이었기에. 곧, 홀로 침전하던 공기가 답답해졌다.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했다.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았다.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었다.******

나는 급히 서재를 뒤져 시집을 꺼내 펼쳤다. 그리고, 온 집에 미약한 불 하나만 밝히고, 게걸스럽게 처음부터 낭송해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을 바깥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꼬 나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어 나서면 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나리리라.' *******울먹이며 발음되는 그의 시구가 어둠의 허공 사이로 뱉어졌다. 방 안이 소슬해졌고, 그것이 꼭 남의 나라의 육첩방 같았고, 별은 바람에 스치우기 시작했다.******** 그렇다. 어떠한 감동도 문학 그 자체를 뛰어넘는 것은 없었다. 내 이입의 얕음은 거기 있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남긴 시를 직접 맞닥뜨리는 일에서만,

우리는 온전히 한 생명을 바친 아름다움을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 : 윤동주, 팔복

** :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 : 윤동주, 또 다른 고향

**** : 윤동주, 별헤는 밤, 전문

***** : 윤동주, 길

****** : 윤동주, 돌아와 보는 밤

******* : 윤동주, 눈 오는 지도

******** : 윤동주,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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