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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5주년 - 후쿠시마 원전의 여성 운영자는 지금도 그곳에 있다 "그때 배 속에는 아기가 있었어요."

  • 和田千才
  • 입력 2016.03.11 12:37
  • 수정 2016.03.11 13:43
ⓒTaichiro Yoshino

동일본 대지진이 2016년 3월 11일로 5주년을 맞이했다.

당시 사고가 난 도쿄 전력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는 여성 직원의 근무를 금지했다가, 2014년 6월부터 일부 지역에 한해 여성 직원을 받아들였다. 2016년 3월 현재 후쿠시마 제1 원전에서 일하는 6500명 중 40명이 여성이다.

33세의 이데 애리씨도 그중 한 명이다. 원자로 운영자로서 그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10년 가까이 일한 경력자이고, 4살과 1살의 두 아이를 둔 엄마이기도 하다.

5년 전, 그날에 발령된 '원자력 긴급 사태 선언'은 아직 해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데 애리씨는 계속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지난 2월 하순, 후쿠시마 제1 원전을 찾아가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제 배 속에는 아기가 있었습니다."

이데씨가 도쿄 전력에 입사한 건, 2001년이었다. 이후 후쿠시마 제1 원전 5, 6호기의 운전원으로 일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이데씨는 5, 6호기 중앙 제어실과 같은 층에 위치한 집무실에 있었다. 건물이 흔들렸다. 여진이 올때마다 그는 슬로프 난간에 매달렸다. 그렇게 여진과 싸우면서 그는 중앙 제어실로 들어갔고, 시스템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이데씨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쓰나미가 왔다는 걸 알려준 건, 사내전화를 걸어온 남편이었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5, 6호기의 경비로 근무 중이었다. 지진이 일어난 뒤, 주변 언덕의 건물로 피신했던 그는 그곳에서 해일을 봤다고 한다.

"그때 남편은 그전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로 외쳤어요. 쓰나미가 왔다고요. 그때 들은 이야기를 제가 다른 직원들에게 전했었죠."

후쿠시마 제1 원전을 덮친 쓰나미(2011년 3월 11일 도쿄전력 촬영)

그때의 지진으로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전은 모든 외부 전원을 상실했다. 1호기부터 6호기 지하에 있던 비상용 디젤 발전기와 냉각 해수 펌프도 쓰나미에 의한 침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정기 점검 중이었던 5, 6호기는 핵연료가 원자로에 충전된 상태였다. 물을 흘려보내 냉각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6호기는 1대의 비상 디젤 발전기가 작동한 상태였다. 이 발전기로 6호기를 냉각하고, 다시 5호기에 연결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때 이데씨는 집에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데씨의 동료는 "배 속에 아이가 있으니 먼저 나가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데씨는 자신이 해야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빛도 없는 암흑 속에서 혼자 떠나는 것도 불안했다. 하지만 이건 위험한 일이었다. 임산부의 피폭 선량 기준 한도는 일반 방사선 업무 종사자의 50분의 1에 해당하는 2밀리시버트(mSv)로 정해져 있었다. 이데씨는 다음 날 아침 구조대에 이끌려 사무동 본관으로 몸을 옮겼다.

당시 건물 밖에서 본 풍경에 대해 이데씨는 이렇게 말했다.

"발 디딜 틈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쭉 이어졌던 도로도 꾸불꾸불 해졌죠. 그전에 보던 풍경이 아니었어요.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다음 날인 3월 12일 오후, 1호기가 폭발했다. 긴급 차량 배치와 유도 등을 위해 남아있던 여성 직원들은 모두 대피하라는 명령이 떨였다. 그리고 2011년 3월 23일 이후, 후쿠시마 제1 원전에서 여성의 취업은 일시적으로 금지됐다.

전기가 사라진 후쿠시마 원전 5호기 중앙 제어실(2011년 3월 11일 도쿄 전력)

"하지만 그만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약 6개월 후인 2011년 9월, 이데씨는 첫 아들을 낳았다. 예정일이 임박해 오는 동안 그는 이 아기를 낳아도 되는 것인지 불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아기는 무사히 태어났고, 지금도 잘 자라는 중이다.

이데씨의 출산휴가는 2012년 10월이 되어서야 끝났다. 후쿠시마 제1 원전에는 아직 여성의 근무가 허용되지 않았다. 이데씨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12km가량 떨어진 또 다른 원전에 배치됐다.

이 원전도 사고 당시 쓰나미에 휩쓸렸지만, 발전기와 전원이 연결된 덕분에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원전이 있는 나라 하마치는 피난 지시 해제 준비 구역으로 지정되어 사람의 거주가 허용되지 않은 곳이었다.

당시 그만두는 직원들이 여러 명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데씨는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제가 10년 넘게 일해온 곳이었으니까요. 이곳이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를 제 눈으로 보고 싶었어요. 어떻게든 복귀해서 함께 일하고 싶었어요."

오후 7시경, J빌리지 부근의 정체 현장(2016년 2월 26일)

그렇게 출근을 시작했지만, 고충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고, 무엇보다 두 번째 원전에서 일을 하려면 출퇴근 문제를 겪어야 했다.

사고 이후 제1 원전에서 반경 20km내에는 출입이 제한됐다.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은 제1원전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J 빌리지'를 전진 기지로 정했다. 이곳을 거쳐야 원전으로 출입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이데씨는 원래 제1 원전이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지만, 이와키시로 떠나야 했다. 이와키시에서 'J 빌리지'로 향하는 길에는 언제나 차량으로 가득했다. 이데씨는 회사에 단시간 근무를 신청했지만, 보육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데에만 1시간이 걸렸다. 회사에 있는 동안 보육원에서 오라고 하면 어떻게 할지, 그것도 불안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2호기 주변. 안쪽으로 보이는 것이 3호기(2016년 2월 25일)

이데씨가 제1원전으로 돌아온 건, 2015년 4월이었다. 그때 그녀는 둘째 아이의 출산 휴가를 끝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1 원전에서 일하는 중이다. 그녀가 일하는 건물은 1~6호기에서 약 1km 정도 떨어진 산에 새로 지은 사무동이다. 이 건물 부근의 방사선 량은 2015년 4월 당시 시간당 1.085 마이크로시버트를 기록했다.

현장에 복귀한 지 2개월 후, 이데씨는 과거 자신이 일했던 장소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예전에 보던 풍경과는 너무 달랐어요. 1, 2호기의 중앙제어실도 완전 달라졌었죠."

4호기는 2014년 12월 남아있던 연료를 모두 배출시켰다. 하지만 붕괴가 있었던 1~3호기는 지금도 안에 연료가 남아있다. 완전한 제거를 위해서는 아직 긴 공정이 필요하다.

이데씨는 한 달에 3번 정도 방호복을 착용하고 5,6호기의 보존 작업에 참여했다. 5, 6호기는 냉온 정지 상태를 유지하면서 1~3호기에 남은 연료를 꺼내기 위한 시설로 사용될 예정이다.

이데씨는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간다고 말했다.

한때 후쿠시마 원전의 '벚꽃 거리'로 불린 거리 양쪽에도 오염된 물 탱크가 늘어서 있다. (2016 년 2 월 25 일)

"사람들은 이곳에 방사선량이 높아 피폭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선량 측정 장치에 측정되지온 않을 만큼 방사선 수치가 낮은 곳도 있어요. 그렇게 완전히 망가진 제1 원전이 이제 정리되어 가는구나 실감하는 중입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여러분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불안한 요소를 없애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이데씨의 배 속에는 세 번째 아기가 있다. 출산 휴가까지는 계속 사무동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허핑턴포스트JP의 「あのとき、おなかに子供がいました」福島第一原発の女性オペレーターは、5年後も現場にいた。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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