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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11일 10시 24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12일 14시 12분 KST

느림보가 되어버린 골목대장

내 뒤를 쫓아다니던 녀석들은 입학선물로 만년필과 금일봉을 하사 받고 어느 틈엔가는 운전이라는 범접할 수 없는 새로운 기술까지 익혀서 나타났다. 남자라면 형이라면 가장 우쭐해지는 장면 중 하나인 군대이야기조차 해 줄 수 없는 초라한 전 골목대장은 이젠 그 힘든 2년의 군생활마저 부러워하고 있었다. 몇 년이 또 지나고 그 녀석들은 시집장가를 가고 하나 둘 아이를 안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한 녀석이 결혼식을 올렸다.

Gettyimage/이매진스

어릴 적 나는 골목대장이었다.

한 동네에 모여 살던 사촌동생들만 해도 한 무리를 이룰 정도가 되었는데 동생들의 동네 친구들까지 합세하여 내 뒤에는 늘 1개 사단 정도의 꼬마부대가 있었다.

조금 먼 옆동네에 개구리를 잡으러 갈 때에도 가까운 놀이터에 갈 때에도 어른들은 나에게 대장의 책임감을 일깨워주시고 부대를 잘 챙기라는 의미로 백원 정도의 용돈을 특별하사하곤 하셨다.

대장에 대한 어른들의 신임과 동생들의 존경 어린 시선에 부응하기 위해 과자 값을 더하는 난해한 계산들과 폭죽에 불을 붙이는 위험천만한 일은 모두 앞장서 있는 나의 몫이었다.

동생들을 괴롭히던 녀석들을 혼내주고 새로운 조직원들까지 영입되면서 리더로서의 나의 위상은 날로 높아만 갔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한 번에 무너져버리는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나의 실명이었다.

신망과 존경을 받던 대장은 어느새부터인가 보살핌과 걱정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치료를 받던 몇 년 동안 학년마저 역전되어버리고 무엇보다 치명적이었던건 용돈의 서열이 뒤집혔다는 것이었다.

늘 백원이나 더 받던 내가 동생들보다 몇 만원 적은 용돈을 받게 되었다는 건 실로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형을 보살피게 된 새로운 대장에겐 그것이 당연한 보너스였을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것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 뒤를 쫓아다니던 녀석들은 입학선물로 만년필과 금일봉을 하사 받고 어느 틈엔가는 운전이라는 범접할 수 없는 새로운 기술까지 익혀서 나타났다.

남자라면 형이라면 가장 우쭐해지는 장면 중 하나인 군대이야기조차 해 줄 수 없는 초라한 전 골목대장은 이젠 그 힘든 2년의 군생활마저 부러워하고 있었다.

몇 년이 또 지나고 그 녀석들은 시집장가를 가고 하나 둘 아이를 안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젠 또 한 녀석이 결혼식을 올렸다.

여느 때처럼 어른들의 관심과 걱정은 또 나를 향하고 있었다.

어느새부터인가 느림보가 되어버린 나이기에 어떤 누구신가는 내가 형인것조차 거꾸로 기억하기도 하셨다.

무엇보다 기쁜 날이었지만 또 한 번 부럽고 또 한 발자국 더디감을 확인하는 날이기도 했다.

약간의 울적함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처음 지위가 역전되던 그날의 치욕스러움이나 분함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동생들보다 조금씩 늦게 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것들은 나에게도 기회를 허락해 주었다.

만년필은 아니었지만 나도 점필을 쥐고 중학교에 입학하고 학사모를 쓰고 취업도 했다.

운전이나 군생활은 지금도 이뤄내지 못한 과제이지만 그런것은 지금 나에게 큰 의미를 차지하지도 않는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있었던 건 경쟁을 의식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길을 묵묵히 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혹여 거북이는 이기지 못했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에 의미를 두었을지도 모른다.

결혼도, 육아도, 난 앞으로 더 느려지고 더러는 이뤄내지 못할 것들도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혹은 어떤 부분에서는 훨씬 앞서갈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생은 속도전은 아니라는 것이다.

묵묵히 나의 길을 가는 것! 그러면서 자연스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 그게 사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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