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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솔직서

Q. 입사 후 10년 동안 회사생활의 시나리오와 그것을 추구하는 이유를 기술하시오. A. OECD기준 대한민국 직장인의 평균 근속년수는 6.4년입니다. 30대 대기업의 근속년수가 9.7년, 중소·중견기업의 평균 근속년수는 2.4년입니다. 자소서 100개 써서 10개 정도 면접 얻어걸리면, 겨우겨우 1개 들어가는 마당에, 10년은 무슨 10년이겠습니까. 굳이 제 직장생활 시나리오를 꼽자면 '다이하드' 정도를 추구하겠습니다.

  • 이진호
  • 입력 2016.03.11 09:38
  • 수정 2017.03.12 14:12
ⓒGettyimage/이매진스

상반기 취업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자소서 쓰다가 스트레스 받으실 때 보시라고 작년에 썼던 슈퍼 하이 스트레스성 빡돈소개서들을 공유합니다...

[자기 솔직서 #1] 

Q. A기업에 지원한 동기와 B직무에 본인이 적합한 이유를 100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

 

'동기'란 '어떤 일이나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계기' 입니다.

 

수많은 지원자들이 기업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고, 일을 선망하다 못해 평생을 바쳐 꿈꿔왔다고 하겠지만 전 아닙니다. 솔직히 A기업에 별로 관심 없었고, B 직무가 저한테 잘 맞을 지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누가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단 한가지 제 인생을 걸고 보장드릴 수 있는 것은 '남들 하는 만큼'은 다 했고 '시키는 건' 다 했다는 것입니다.

 

공부 하라길래 그저 공부만 해서 남들 가는 만큼 대학에 갔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대학에서 '자유'는 부자집 아들로 태어나는 게 '진리'라는 걸 배웠습니다. 남들 하는 만큼 학점 땄고, 해외연수에 토익, 토스 남들 하는 건 다했습니다. 없는 살림에 아주 뼈가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글로벌 비전에, 복지며 인재개발. 전 상관없습니다. 시키면 다 합니다. 제 인생이 그래왔고 이제껏 잘 따라왔는데 앞으로는 시키는 대로 하면 돈까지 준다니 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여태껏 A기업 전혀 관심 없었지만 월급만 주시면 사랑하다 못해 종교로 삼겠습니다. 안 그래도 교회는 다니다가 돈만 받지 주는 게 없어서 그만뒀습니다.

 

만약 A기업에서 B직무를 맡게 된다면, C직무로 배치하셔도 D직무로 쫓아내셔도 상관 없습니다. 그만 두라면 그만 두겠습니다. 솔직히 A같은 대기업에서 일개 사원의 역량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복사만 시키셔도 되고 커피만 타도 됩니다. 그 어떤 직무든 신입사원으로서 가장 적합한 인재는 '까라면 까는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습니다. 단 한번도 대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자기 솔직서 #2]

 

Q.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이며 그 일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서술하시오.

 

'힘들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아무리 절대적으로 힘들었다 해도 개발도상국을 강국으로 일구신 구국의 산업화세대와 민주화를 이끄신 역동의 운동세대에 어떻게 비견할 수 있겠습니까? 힘들다는 단어 앞에 '가장'을 붙이기엔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집안의 가장들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솔직히 지금 이 순간도 힘들기는 하지만 어떤 '힘듦'이던 '극복'을 추구하려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만을 바라보고 책상에 앉아 어린 시절을 죄다 보냈으나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앉아있을 의자라도 있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4000만원이 들긴 했지만 대학 교육의 혜택을 받은 100명 중 90명 안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인생입니다. 그 남은 10명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하긴 합니다. 취업만을 바라보고 학점, 인턴, 연수, 토익. 대학이 다른 말로 취업사관학교인 것을 알게 되어 지나가는 애들이 죄다 경쟁자로 보이지만 힘들지 않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유명한 말처럼 제 인생이 영원토록 청춘일 것 같아 가슴이 뜨겁습니다.

 

요새는 헌혈증도 스펙이라 하여 2주마다 헌혈을 하는데, 혈액순환이 잘되니까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진정한 '달관세대'입니다. 저는 혈관까지 달관했습니다. '취업 이후가 더 걱정이다' 얘기하는 이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40대 되면 명퇴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20년 뼈 빠지게 일해서 남은 30년 연명하는 게 세대의 숙명이라 생각합니다. "요새 20대들 어려운 줄 모른다"는 '20대 개새끼론'에 제가 대표로 사과 드립니다. 불러만 주신다면 A기업의 개가 되어 그야말로 개처럼 일하겠습니다.

 

[자기 솔직서 #3]

 

Q. 살면서 가장 도전적이었던 경험과 이를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을 서술하시오.

 

'도전'은 곧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라 익히 들어왔으나, 제 인생이 위험한 도전의 연속임을 깨달은 건 얼마 전이었습니다.

 

코 흘리던 시절부터 10년을 책상에 틀어박혀 진리와 자유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학문을 엿듣고 영어를 익힘에 괴로우면서도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 투자된 억겁의 비용이, 취업 못하면 몽땅 빚더미인 도박판의 '올인'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도전'은 곧 '도박'이라는 깨달음도 함께 얻었습니다.

 

도박 중에서도 상도박이었던 제 인생으로 배우고 느낀 점. 다른 무엇을 논하는게 무의미할 정도로 명확합니다. 이미 질러놓은 판돈이 웬만한 집 한 채, 부모님 노후자금 급인데다, 젊음과 청춘을 전부 걸은 상황에서 '까딱하면 파산이라는 것'. 취업만 시켜준다면 영혼이라도 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무의 1지망과 2지망을 묻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방을 원하는지 서울을 원하는지도 물으실 필요 없습니다. 지옥행 열차에 티켓이라도 팔겠습니다. 판단이나 선택은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A 기업이 추구해야 하는 도전이자 도박정신은 '인건비는 싸게 후려치고' '물건은 비싸게 팔아먹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그맣게 시작했던 A기업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도박판의 큰손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연애, 결혼, 양육, 내 집 마련,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일단 파산만 면하게 절 취업시켜 주신다면, 남은 삶과 건강과 행복 모두를 담보로 이미 꼴아박은 투자금 회수만으로도 감사하며 일하겠습니다. 제가 바로 A기업과 이 시대가 원하는 준비된 노예입니다.

 

[자기 솔직서 #4]

 

Q.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표를 이뤄낸 경험을 서술하시오.

 

아이디어가 '창의적'이라 평가받는 시점은 목표를 이뤄낸 이후라고 생각합니다. 목표의 '달성' 없이는 아이디어 자체가 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이폰이 잘 팔리지 않았다면, 잡스의 혁신적인 UI/UX 아이디어는 제대로 된 평가의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고, 스마트폰은 커녕 초콜릿폰 이후로 바나나폰 딸기폰이 대세였을지 모릅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목표'를 이뤄 '성공'한다는 것. 그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명확하고 명쾌하게 '돈이 되느냐'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인생은 나름 창의적인 시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동전 따먹기를 위해 오른쪽 엄지 아래 굳은살들을 방바닥 내리쳐가며 설계/디자인 했고,

 

오락실에선 부러뜨린 우산으로 유래 없던 만능키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시도들을 창의적이었다 자평할 수 있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돈이 됐기' 때문입니다.

 

돈 안됐으면 그냥 '개똥'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돈 따라 창의를 발현해온 인생에서, '창의' 그 자체인 아이디어 뱅크들을 발견한 건 취업을 준비한 이후였습니다.

 

시험 하나 만들어놓고 수조원을 땡기는 ETS를 보며 현대판 봉이 김선달은 '물'이 아니라 '영어'를 판다는 것을 깨달았고, 뒷구멍으로 대대적인 로비를 받는다는 A기업을 포함한 국내 대기업들을 보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를 실감했습니다.

 

특히 지난 상반기 토익800 토스 6 겨우 맞춘 이후, A건설에 엄마,아빠,누나 이름까지 죄다 넣고 지원하자, 합격통보 대신 온 가족에게 울려대는 A보험의 창의적 개인정보 마케팅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습니다. 창의로 돈돈 뭉친 A기업에서 제 인생에도 돈을 피워내고 싶습니다.

 

[자기파괴서]

Q. 왜 꼭 A기업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서술하시오.

O형이신 아버지와 AB형인 어머니 사이에서 RH+A"형으로 태어났습니다. 한 마디로 날 때부터 A기업에 들어갈 운명이었음을 혈통이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A라는 이름만 듣고도 소름이 돋는 희열을 느껴왔고 A사가 출시한 전자제품을 쓸 때마다 10분만에 뿜어내는 열기를 가슴에 갖다댄 채로 제 자신과 A기업 사이의 뜨거운 애정을 유지해왔습니다.

 

A형이라서 소심하다는 세상의 편견은 착각입니다. 비록 공부하느라 바빠 누구와 다퉈본 적 없는 삶이었지만,경쟁사인 B기업의 사과 같은 마크를 볼 때마다 믹서기에 갈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왔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B빠들을 만날 때마다 저들을 처단하지 않고 이 나라 법이 왜 존재하는가를 고민했습니다.

 

A기업에 들어가서 이직이나 퇴직을 고민하는 것은 명백한 배신이라 생각합니다. 전 A기업만이 제 삶의 동반자임을 입사 이후에도 증명해 나가기 위해 A기업의 늘 푸른 마크를 오른쪽 어깨에 문신으로 새길 예정이며, A가 새겨진 사원증 바코드를 이마에 이식하여,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퇴사하는 그날까지 출근 할 때마다 정문을 통과하며 회사에 대한 감사의 절을 90도로 올릴 것입니다.

 

단언코, 결단컨대 A기업 이외에는 그 어떤 기업에도 지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이미 두 차례나 떨어졌지만 삼고초려를 행하던 유비의 마음처럼,3고 4고가 서른 마흔 오십고가 되더라도, 부모님의 노후자금에 빌붙어 연명하더라도 A기업만이 제가 지원하는 유일무이한 기업일 것입니다.

 

만약 죽는 그날까지 저를 뽑아주시지 않으신다면 스마트한 기능성에 수려한 디자인까지 더한 A기업의 냉장고에 들어가, 부족한 제 자신에 대한 냉철한 반성과 함께 다음 생의 기회를 도모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향하고 사람을 위하는 A기업이 인류평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라도 절 꼭 뽑아주셔야 합니다.

 

[자기 솔직서 #5]

 

Q. 입사 후 10년 동안 회사생활의 시나리오와 그것을 추구하는 이유를 기술하시오.

 

OECD기준 대한민국 직장인의 평균 근속년수는 6.4년입니다. 30대 대기업의 근속년수가 9.7년, 중소·중견기업의 평균 근속년수는 2.4년입니다.

 

자소서 100개 써서 10개 정도 면접 얻어걸리면, 겨우겨우 1개 들어가는 마당에, 10년은 무슨 10년이겠습니까.

 

굳이 제 직장생활 시나리오를 꼽자면 '다이하드' 정도를 추구하겠습니다. 살아만 남는다면야 6개월에 한 번씩 이직한들 뭔 상관이 있나 싶습니다.

 

[자기솔직서 #6]

 

Q. 본인이 채용되어야 하는 이유를 서술하시오.

 

너네가

 

지금

 

뽑고 있자나

 

XX

베껴서 쓰시는 건 자유지만 백타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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